Hayden
이사했다. 하우스메이트들은 전부 인도네시안. 나 혼자 한국인이다. 영어가 아니면 소통이 안되니 강제 영어 사용 환경으로는 최고다. 다들 무슬림이어서 수다를 떨다가도 시간이 되면 의복을 갖춰 입고 기도를 한다.
어제 만난 친구가 시드니에 오래 있는 것은 추천하지 않는다고 했다. 1년 동안 호주에 머무르는 상황에서 시드니에만 있는 것은 아까운 일이라며, 여러 도시를 다녀보라고 했다. 아무 생각 없었는데 덕분에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시드니에 잠시 머무를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여기 있는 동안 해야할 것들이 분명해졌다. 적응하기와 경력 만들기. 근데 왜 TFN 신청은 안되는 걸까.
"친구들이랑 놀러갈 건데 같이 가지 않을래?"
이사를 마치고 앉아 있는데 헤이든에게서 연락이 왔다. 나는 메세지를 받자마자 얼른 나갈 채비를 했다. 헤이든을 처음 만난 곳이 홍콩이라 그가 홍콩 사람인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베트남 사람이었다. 그와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from이 의미가 없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그는 베트남에서 태어났지만 오랫동안 시드니에서 살았고 학교도 시드니에서 나왔다고 했다. IT 일을 하며 여기저기 온 세계를 돌아다니고 탱고를 춘다고 했다. 들으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도 이과를 갔어야 했는데.
시드니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본다. 헤이든처럼 자기 기술을 가지고 여러 국가를 오가면서 일도 하고 놀기도 하는 사람들. 멋지다는 생각이 든다.
헤이든과 친구들은 밥도 먹지 않고 바로 1차로 하버 브릿지 밑에서 화이트 와인을 마셨다. 2차로 펍에 가서 레드와인을 마시고 3차로 보드카를 마셨다. 보드카가 너무너무너무! 맛있었다. 인생 최고의 보드카였다! 친구들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는지 신나보였다.
"이 보드카는 마실수록 건강해지는 것 같아!"
제롬이 외쳤다. 그리고 한 통을 더 주문했다. 나는 끄덕거리며 그의 말에 동감했다. 보드카 뿐 아니라 펍의 분위기도 굉장히 좋았다. 너무 어둡지도 않았고 음악이 고막을 찢을만큼 시끄럽지도 않았다. 절로 춤이 나올만한 분위기랄까. 플로어에서 춤을 추는 사람들의 그루브도 멋있었다. 내가 춤추고 싶어진 것을 눈치 챘는지 헤이든이 물었다.
"탱고 추러 갈래?"
"슈즈 없잖아. 가서 구경만 하고 나올거야?"
나는 궁시렁거렸다. 그러나 거부할 수 없었다. 새로운 탱고바를 가는 것은 늘 설레는 일이니까. 도착하자마자 역시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 간 곳보다 더 작고 오붓한 분위기였다. 더 마음에 들었다. 남자끼리 추는 사람들도 있었고 여자끼리 추는 사람들도 있었다. 자신을 엘살바도르 사람이라고 소개한 남자가 춤을 신청했다. 그의 춤은 따뜻하고, 가볍지 않았다. 편안한 느낌을 주는 춤이었다. 어쩌면 비슷한 정서가 있는 곳일까. 엘살바도르가 어딘지도 모르지만 그와 춤을 추며 엘살바도르를 상상해 보았다.
헤이든 덕분에 신나게 논 하루였다.
"오늘 친구도 소개해주고 좋은 곳들 데려다 준것도 고마워."
인사를 하니 헤이든이 대답했다.
"친구끼리는 고맙다는 말 안하는 거 알지?"
그렇구나. 우리는 친구였어. 마음 속으로 그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며칠 뒤면 헤이든은 다시 홍콩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그는 시드니를 떠나기 전 많은 사람들을 소개해줬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이제 넌 시드니에 아는 사람이 많이 생긴거야."
힘이 났다. 덕분에 내일부터는 일을 구하든 어학원을 다니든 해야지- 하는 의욕도 솟아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