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새봄 Jun 08. 2016

국영수를 잘해서요

공부를 잘하는 것과 일을 잘한다는 것


새봄의 직장생활 생존기-1


 몇 달 전 인기 절정으로 막을 내린 드라마 ‘태양의 후예’를 뒤늦게 몰아보기 하다가 웃음을 터트렸다. 왜 의사가 됐느냐는 질문을 받은 여주인공(송혜교)이 1초의 고민도 없이 한 답이 ‘국영수를 잘해서’ 였기 때문이다. 이 말은 곧 ‘공부를 잘해서’라는 말일 테고, 그 말에 공감이 가서 깔깔대며 웃었다.

그렇지, 정말 국영수를 잘 하던 내 친구들은 의사가 됐다. 물론 모두 의사가 된 건 아니다. 검사도 되고, 변호사도 되고, 변리사도 됐다. 줄줄이 나열을 하려면 한이 없을 테니 이 정도만 하자. 그런 직업을 가지지 않았더라도 일단 대부분은 좋은 대학을 갔다. 왜? 국영수를 잘했으니까.

 


공부를 잘한다는 것과 일을 잘한다는 것

 이렇게 보면 공부를 잘한다는 건 어찌 보면 너무나도 간단하다. 국영수만 잘하면 되니까.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교과서 중심으로 국영수를 집중적으로’ 공부해 시험에서 좋은 점수를 받으면 된다. 1등을 하면 ‘아주 공부를 잘하는 애’가 될 수 있고, 10등 안에 들면 ‘꽤 잘하는 애’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간단하다는 게 쉽다는 뜻은 절대 아니다. 하지만 기준이 확실하기 때문에 적어도 내 위치가 어디쯤인지는 스스로 파악을 할 수 있다.

그런데, 회사에 들어오고 나서는 내 위치가 당최 파악이 되지를 않는다. ‘일을 잘한다는 것’의 기준을 도무지 모르겠다. 신문사에 다니고 있는 나는 다른 회사에 다니는 친구들과 달리(사실 다른 직업을 가져보질 못해서 제대로 비교도 못한다) 연차와 상관없이 모든 기자가 매일 아침 기사를 발제하고 이 중 다음날 실릴 기사를 선택당한다. 매일신문에 이름이 실리니 다른 직업에 비해 업무 평가가 쉬울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학교와는 사뭇 다르다.

 좋은 선배들이 있지만 선생님처럼 항상 내 기사에 점수와 등수를 매겨주진 않는다. 내 업무태도를 평가해 생활기록부를 만들어 주는 것도 아니다. 나는 항상 분주하지만 내가 과연 일을 잘 하고 있는 건지 알 길이 없다. 월요일엔 좋은 기사를 썼다고 칭찬받다가, 화요일에는 왜 이리 취재가 부실하냐며 혼이 나기도 한다. 내 기사만 잘 쓰면 되는지, 선배의 취재를 잘 도와줘야 하는지, 후배를 너그럽게 챙겨주는 것 마저도 일 잘하는 기준과 항목에 들어가는 건지, 기사 외적인 부분에도 힘을 기울여야 하는 건지 복잡한 것 투성이다. 기획 기사를 잘 써야 하는지, 흔히 ‘특종’이라고 말하는 단독 기사를 더 자주 터트려 줘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가장 돋보이는 결과를 내 보이고 이로 인해 주목도 좀 받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게 내 결론이었다. 국영수 중심으로, 교과서 위주로, 예습 복습을 철저히 해 1등 성적표를 받는 게 최고인 초, 중, 고 시절을 보낸 내가 내린 모범 답변이었다.


 
 

가끔 100점을 맞는 사람보다는, 늘 80점을 맞는 사람

 이날도 오랜만에 ‘일 잘하는 기준’으로 고민을 하고 있던 찰나였다.(늘 이런 고민은 일이 잘 안 풀릴 때 시작된다.) 찾아가 고민을 털어놓지도 않았는데 한 선배가 먼저 차를 한 잔 권하면서 이 이야기를 해 주었다.


“많은 사람들은 가끔 100점짜리의 결과를 만들어 오고는 ‘일을 잘 한다’고 착각하곤 하지. 하지만 일을 잘한다는 것은 항상 비슷한 수준의 결과물을 만들어오는 거야. 그게 꼭 100점일 필요는 없단다”


  티를 내지 않으려 애썼지만 속으로는 흠칫 놀랐다. 나름의 장고를 통해 100점은 아니더라도 90점은 가끔씩 맞아줘야 한다고 생각했던 나에게는 다소 생경하게 느껴지기도 한 결론이었다. 선배가 말하는 ‘일 잘하는 사람’의 정의에 무조건 동의할 수는 없지만 새로운 접근에 마음이 갔다.

그는 말을 이어가며 그래서 자신은 가끔 100점을 맞는 사람보다는, 늘 80점을 맞는 후배와 일하고 싶다고 했다. 가끔 맞는 100점은 그 사람의 실력이라고 보기 어렵지만, 늘 80점 이상의 결과를 내는 후배는 적어도 ‘80점 이상’의 실력이 검증된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게 꾸준한 후배의 결과물은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향상된단다. 언젠가는 85점, 그리고 또 언젠가부터는 90점 짜리로.


 어떤 의미에서는 그의 인생 철학과도 같은 이 이야기가 말콤 글래드웰의 ‘아웃라이어’에 나오는 ‘1만 시간의 법칙’과도 궤를 같이 하는 것 같이 보였다. “어떤 분야든 1만 시간을 투자하면 그 분야에 통달한 장인이 된다”는 법칙 말이다. 굳이 법칙을 논할 정도로 거창한 대화는 아니었지만, 충동적이지 않은 꾸준함이 사람을 성장하게 한다는 말이 아주 절절하게 와 닿았다.


 찰나의 대화가 내 마음을 크게 움직일 수 있었던 것은, 내 앞에 있는 그 사람이, 바로 20년을 그렇게 꾸준히 살아온 사람이기 때문이다. 늘 80점을 목표로 살아온 그는 100점짜리 선배가 되어 내 앞에 앉아 웃고 있었다. 지금도 여전히 자신을 '80점짜리'라고 여기며 말이다.


 학교와 사회가 다른 점도 이런 게 아닐까. 공부를 잘하는 친구들의 비결은 한결같지만 일을 잘 하는 사람들의 비결은 제각각이다. 정답이 없기에 각자의 철학이 각자의 삶을 만들어가고 이와 함께 업력도 쌓여간다. 아마도 나는 계속 답을 찾지 못하고 고민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쉽게 끝나지 않을 이 과정을 겪는 동안 적어도 '80점'은 지키려고 노력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어느덧 조금씩은 나아지는 내 모습을 기대하면서.



그림=김시환

덧, 이 글은 신세계 기업 블로그에도 실린 적이 있습니다.(원문) 글 쓰기 좋아하는 동생과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오라버니가(물론 친남매는 아니고요) 각자의 꿈을 응원하며 함께 만든 '작품'이자 프로젝트입니다. 제가 생각을 담아 글을 쓰면, 김시환 씨는 이에 맞춰 그림을 그립니다. 브런치를 시작하기 전(알기도 전이예요), 기사가 아니라 내 일상과 생각을 모아 글을 쓰고, 또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생각해왔는데 이 생각을 실천에 옮긴 첫 결과물이랍니다.   브런치 매거진 속 '직장생활생존기'라는 미니시리즈로, 간간히 소개할 예정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당신이 놓치고 있는 순간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