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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봄 Sep 12. 2016

기존의 틀 깨는 즐거움이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한 힘

"최인아 책방"낸 전 제일기획 부사장의 '옛날'이야기

Intro..

 2009년 나는 입사한 지  만 1년이 꼬맹이 기자였다.

 삼성에서 처음으로 여자 부사장이 나왔다는 소식에도 그저 순진하게 '이제야 삼성에서 여자 부사장이 처음 나온 거라고?'라며 의아해하던, 그게 정말 대단한 '사건'인지도 모르던, 정말 세상 물정 모르는 신입사원이었다.  반면 그녀는 험악한 사회생활을 겪으며 산전수전 공중전을 다 겪은 굴지의 대기업의 첫 여성 부사장이었다.

 당시 최 부사장은 한없이 어리고 무지한 여기자에게 무슨 이야기를 했을까. 그녀의 이미지는 기억 속에 남아있지만 우리가 나누었던 대화는 마치 안갯속에 있는 것처럼 희미하기만 했다. 삶에, 매일 터지는 뉴스에, 개인적인 고민에 치여 살며 굳이 이날을 떠올리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7년이 지난 후에야 나는 최 부사장이 작은 책방을 열었다는 사실을 기사를 통해 접했고, 오랜만에 그때를 되짚었다.

 이제 진정한 '일상'으로 돌아온 그녀의 삶을 응원하며,  기회가 되면 그녀가 연 책방에 찾아가 볼 예정이다. 최 부사장도 나처럼 안갯속 같던 그날을 다시 끄집어내 반갑게 맞아주시려나. '삼성 부사장'이라는 거대한 타이틀을 달고 있는 그녀도 멋있었지만, 과감히 자리를 박차고 나와 '이제는 마음이 시키는 일, 가슴이 뛰는 일, 좋아서 하는 일'을 해야 하지 않을까.라고 말하는 그녀가 지금 나의 눈에는 훨씬 더 멋있어 보인다.

 새로운 시작점에 선 최 부사장을 조금 더 또렷이 기억하기 위해 새내기 적 그 기사를 다시 끄집어 내 보기로 했다. '봉우리'를 넘어서는 그녀의 이야기에, 여기저기 부딪히며 살고 있는 7년 후의 내가 위로를 받는다.




"현장에 모든 것 맡기자"

후배들 진심으로 믿어주니 발견하지 못했던 그들의 실력 나와


하얗게 칠해진 벽과 까만 책상. 역시 까맣고 동그란 티 테이블과 책이 가득한 책장. 제일기획 건물 3층에 위치한 최인아 부사장의 사무실은 '단순함' 그 자체다. 기자가 찾아간 그의 사무실은 광고업계에서 26년을 종사해 온 정통 '광고쟁이'이자 삼성그룹 최초 여성 부사장의 방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평범하다. 이 방의 주인인 최인아 부사장 역시 보통사람들이 생각하는 '광고인'과는 이미지가 많이 다르다. 그는 '발랄함'과 '개성'보다는 '고상함'과 '차분함'의 축에 가깝다.

하지만 크지 않은 체구와 작은 목소리에서 나오는 차분한 울림은 좌중을 압도하는 힘이 있었다. 이번 부사장 승진 소감을 묻자 그는 "경쟁 PT에서 이겼을 때도 그 순간은 기분이 좋지만 다음날부터는 '죽을 것같이' 바쁘게 움직여야 하지요. 승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잠깐 기뻤지만 이제 할 일이 더 많아졌다는 생각이 들더군요."라고 말했다.

최초 제일기획 마스터(master), 최초 삼성 여성 전무, 최초 삼성그룹 여성 부사장 등 그의 이름 앞에는 항상 '최초'와 '여성'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혹시 이 수식어가 그에게 부담으로 느껴진 적은 없었을까. 최 부사장은 "분명 부담이기도 했다"면서도 "이로 인한 즐거움과 메리트가 컸다"라고 말했다. 최 부사장은 "최초라는 타이틀을 위해 기존 것들을 하나하나 깨 나가면서 즐거움을 느꼈고, 이 즐거움이 젊은 시절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이 됐다"라고 설명했다. 특히 그는 여성이기 때문에 느꼈던 벽도 존재했지만 여성이기 때문에 본 득도 분명히 있었다고 솔직히 인정했다. "입사하고 처음 10년은 우리 사회가 여성은 손해 볼 수밖에 없는 사회였고 나도 그렇게 느꼈습니다. 그러나 그 시간이 흐른 후에는 어떤 일을 했을 때 남자보다 못하지 않으면 비슷한 성과를 내도 '여자'라는 이유로 부각되는 경우가 있었지요."

그러나 2002년 월드컵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던 삼성카드 '당신의 힘을 보여주세요' 광고나 엔크린 '빨간 모자 아가씨', 베스띠벨리 '프로는 아름답다', 맥심의 '자꾸자꾸 당신의 향기가 좋아집니다' 등 '여자'라는 메리트만으로 그를 평가하기엔 그의 작품이 보여주는 그의 '능력'이 너무도 걸출했다.

 


이런 최 부사장이지만 벽에 부딪힐 때도 있었다. 사회에서 느끼는 '벽'을 그는 봉우리라고 표현했다. 4년 전, 최 부사장에게 '이제 나는 뭘 해야 하는 건가'란 고민이 생겼다. 그는 "여자라는 봉우리를 넘어서고 나니 이제는 '나이'라는 봉우리 앞에 봉착하게 되더라"라고 말했다. 대한민국 전체가 나이 듦에 대해서 환영하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경험보다는 새로움이 더 가치 있는 자산으로 인정되는 방향으로 사회가 흘러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하지만 그에게는 봉우리를 넘을 수 있게끔 도와주는 선배들이 있었다. " '나 역시 너처럼 헤매던 시절이 있었다'며 이해해 주는 선배들이 큰 힘이 됐습니다. 나도 선배들이 그랬듯 후배들 고민을 들어주고 도와주는 선배가 돼야 한다는 생각을 항상 하지요."

최 부사장이 후배를 챙기는 방식은 '후배를 진심으로 믿어주는 것'이다. 광고 제작 업무를 총괄하는 제작본부장이라는 직책을 맡게 된 지 이제 3년. 첫해는 경쟁사 광고를 직접 챙겨보고 리뷰를 하며 보냈다. 하지만 이듬해부터는 '현장에 모든 걸 맡기자'는 쪽으로 방향을 바꿨다. 실무자들을 믿고 맡기면 그 전에는 발견하지 못했던 그들의 실력이 보인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실제 그가 제작본부장을 맡은 이후 제일기획은 대한민국 광고대상을 연속 3년간 석권했다. 여기에는 오랜 시간을 '팀워크'가 경쟁력인 광고 현장서 몸 담아온 김낙회 제일기획 사장과 최인아 부사장의 '신뢰의 리더십'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제일기획 부수장이 된 그에게 다음 목표란 무엇일까.

"제일기획은 국내에서는 1~2위를 따지는 게 무의미할 만큼 리더 자리에 와 있지요. 하지만 글로벌에서는 아직 비기너(beginner) 예요. 이제 질적인 도약을 위해 노력해야겠지요. 이미 소비자들은 변화하고 있습니다. 이런 트렌드에 맞춰 제일기획도 변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출 겁니다."

After interview...

후기는 '최인아 책방'의 인트로로 갈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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