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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봄 Aug 19. 2016

바지가 터져도 나는 라면이 좋아요

편의점 히트상품 '오모리 김치찌개' 개발한 GS리테일 박성호 과장


매일 오후 4시에서 5시 사이가 되면 서울 역삼동 GS타워 18층에서는 보글보글 맛있는 라면을 끓이는 냄새가 난다. 간식이 당기는 이 시간에 코를 기분 좋게 자극하는 이 냄새는 식당에서 나는 것도, 탕비실에서 나는 것도 아니다. 평범한 사무실 책상 위에 서류 대신 인덕션과 냄비를 올려두고 진지하게 라면을 끓이고 있는 이 남자는 GS리테일 편의점사업부 라면 담당 MD 박성호 과장(40)이다. 그는 "라면 MD가 되고 난 후에는 꼭 하루 한 끼를 라면으로 때운다"고 말하며 웃었다. 


GS리테일 박성호MD(출처=매일경제)


박 MD는 출시 1년 만에 900만개가 판매되는 신기록을 세운 있는 GS25의 자체 브랜드(PB) 컵라면 '오모리김치찌개라면'을 세상에 내놓은 주역이다. 2014년 말 혜성처럼 등장한 오모리김치찌개라면은 바로 다음달인 2015년 1월 편의점 내에서 라면 업계의 독보적인 1위로 군림하고 있는 신라면을 눌렀다. 

라면+김치=환상의 궁합? 사실은 업계 비주류

라면과 김치처럼 합이 잘 맞는 음식도 없는데 그 둘을 합치면 누구나 맛있는 라면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면 오산이다. 오모리김치찌개라면이 탄생하기 한참 전에도 김치찌개라면은 있었지만, 오랫동안 전체 라면 카테고리 점유율의 10%대에 불과한 '비주류' 라면이었다. 

"처음 김치찌개라면을 개발하겠다고 했을 때 내부에서 반대가 많았어요. 이미 시장에서 김치라면이 고전하고 있는데 왜 굳이 그쪽으로 들어가려 하느냐고 하더군요. 그래도 '유명한 김치찌개 맛집'의 김치 원물이 들어가는 액상 스프로 차별화할 수 있다며 계속 설득해 나갔죠." 

박 MD가 확신과 뚝심을 갖고 오모리김치찌개라면 개발을 밀어붙일 수 있었던 데는 10여 년이 훌쩍 넘는 그의 자취 경력이 바탕이됐다. 어렸을 때부터 음식을 맛보고 평가하길 좋아하던 박 MD는 대학에서 요리 계열을 전공하고 싶었지만 부모님 반대로 상경 계열 학과에 진학했다. 그러나 그는 강의실 대신 자취방에서 직접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밥을 해 먹지 않을 때는 맛집 탐방을 즐겼다. 묵은지 김치찌개 맛집인 '오모리 김치찌개'집도 학창 시절 즐겨 찾던 맛집 중 하나다. 

"오모리 김치찌개 사장님께 찾아가 오모리 김치 국물이 들어간 라면을 개발하고 싶다고 하니 너무도 흔쾌히 허락해주셨어요. 시작은 좋았지만 이후부터는 고난의 연속이었죠. 제조사(팔도)에서는 김치 원물이 들어가면 제조 공정이 복잡해진다고 난색을 표하기도 했고요. 즉석식품화하는 과정에서 일반적인 공정으로 하면 맛이 변해 추가 공정을 하나 더 넣기 위해 설득도 해야 했습니다." 

 이름은 '오모리'에서 따왔지만 다른 김치찌개 맛집 노하우도 들어가 있다.         

"김치 개발 기간에 주요 김치찌개 맛집을 다 돌아다녀 봤어요.어떤 집은 깊은 단맛 때문에, 또 다른 집은 칼칼한 매운맛 때문에 인기가 많더군요. 그 맛들을 구현해 내려고 다양한 베이스를 추가했죠." 



매일 라면 먹다보니 바지가 1년에 3번이나 터진 웃지못할 사연도..

 최종적으로 맛을 결정하기 위해 100번이 넘는 테스트를 거치다 보니 몸은 갈수록 무거워졌다. 박 MD는 "새로운 라면을 출시할 때가 되면 몸무게가 6㎏씩 늘어난다"며 "사무실에서 바지가 세 번이나 터져, 그럴 때마다 급히 건물 지하에 내려가 바지를 새로 사 입곤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박 MD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면을 개발하는 게 너무 즐겁다고 했다. 쉬는 날에도 개발하고 싶은 라면이 생각나면 자신만의 '개발노트'에 메모를 해 둔다. "여력만 된다면 1년에 3~4개 정도씩 개발해 시장에 내놓고 싶어요. 오모리김치찌개라면이 너무 히트를 해 한편으로는 부담이 되기도 하지만 머릿속에 있는 '맛'들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선보이고 싶어요." 


After Interview...

 인터뷰를 추진하게 된 계기는 단순했다. '내가 너무 좋아하기 때문'이었다. 어느날 이 라면을 먹고 그야말로 '신세계'를 경험했고, 이후 오모리 김치찌개 라면은 출장이나 해외여행을 갈 때 마다 절대 빼놓지 않고 챙기는 필수품으로 자리잡았다. 도대체 누가 만든거야? 라는 궁금증을 실천에 옮겼다. 

 이러한 취지로 진행한 인터뷰인데, 개발자를 만나니 그 역시 '자기가 너무 좋아해서' 이 라면을 만들었다고 하더라. 어리숙하고 순수한 표정으로 열심히 개발과정을 설명하는 박 MD님 덕에 참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시간이 지나도 이 인터뷰가 기억에 남는 또 하나의 이유는 그가 이 매거진의 이름인 '일상히어로'와 걸맞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미디어에 등장하는 많은 사람들은 그 만큼 '유명한' 사람들이다. 미디어에 자주 등장해서 유명해졌든, 유명해서 미디어에 등장했든 말이다. 

 사실 한 기업에서 한 개의 제품을 개발할 때는 절대 한 사람만의 노력으로 이뤄지는 게 아니다. 아이디어단에서도 많은 사람들의 의견이 취합되고, 수 많은 결재를 거치며 의사결정이 이뤄지고, 이런 과정이 모여 하나의 제품이 탄생된다. 그래서 대부분 이 성과에 대해 공개적인 장소에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기업의 경영자이거나, 최종의사결정자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결과 안에는 많은 '과정'들이 있고, 그 과정에는 박 MD처럼 드러나지 않은 사람들의 노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라면을 개발하다가 바지가 세번 터진 것은 의사결정자가 아니지 않은가? 그들의 노력에도 박수를 쳐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하지만 그런 기회가 많지 많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이러한 기회를 더 많이 만들어 내는 것도, 앞으로 내가 가져가야 할 숙제라고 생각한다.)
 오늘도 자신의 자리에서 바지가 터져가며 최선을 다하는 수 많은 일상 히어로들에게 응원을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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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런치에는 제가 과거 진행했던, 기억에 남는 인터뷰들을 담아내려 합니다. 지면의 한계로 인해 미처 들어가지 못했던 내용을 일부 첨언하고 시점에 맞춰 약간의 수정을 거친 후 인터뷰 후에 느꼈던 단상들도 함께 곁들입니다.  당시 신문에 들어갔던 내용을 확인하시고 싶은 분들은  기사 원문을 클릭해 주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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