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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봄 Jan 16. 2020

한달간 옷 안사보기

가뜩이나 더운 여름, 옷을 찾아 입으려 옷방에 들어갔는데 절로 한숨이 났다. 수차례 옷을 비웠음에도 여전히 옷방은 옷으로 가득 차 있었다.



1년 가까이 미니멀 라이프에 도전하면서 상당히 많은 옷을 버렸는데 왜 옷방에는 여전히 옷이 많을까. 내 옷방은 혹시 화수분인가?란 엉뚱한 상상을 해보기도 했지만 원인은 뻔했다. 물론 옷을 많이 버린 것은 맞지만, `나`님께서 그동안 꽤 많은 쇼핑을 하셨기 때문이다.옷을 비우고 공간을 만들어 `여백의 미`를 누려 보겠다던 나의 꿈은 아직 내려놓지 못한 `쇼핑의 즐거움` 덕분에 여전히 꿈으로만 남아 있었다. 물론 과거에 비해 쇼핑의 빈도는 줄었지만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고, 겨우 얻은 공간이 다시 새로운 옷으로 채워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깐깐한 수납`의 저자 조윤경 씨는 옷장에 옷을 80%만 채워넣어야 옷을 여유롭게 넣고 꺼낼 수 있다고 했다. 외출에서 돌아와 옷을 걸려고 보니 옷걸이가 들어갈 공간이 빡빡하다. 아, 옷을 걸기가 귀찮아진다. 휴, 다시 한번 정신을 차려야 할 때가 왔다는 신호다.






이번에는 버리기에 초점을 두는 대신 늘리지 않는 데 집중했다. 한 달간 일절 옷을 사지 않기로 했다. 때마침 결심한 시기는 여름의 초입인 6월 말로, 시기도 좋았다. 7월 첫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도전을 이어가면 될 일이었다. 사실상 여름옷을 사지 않겠다는 결심과 같았다.



중대한 결심을 하고 남편에게 내 결정을 이야기하자 태생이 미니멀 리스트인 남편의 말, "응? 원래 옷은 1년에 두 번만 사는 것 아니야? 한 달 동안 안 사는 게 어려워?"(하, 그래 너 잘났다.)






여하튼 이러한 남편의 비난에도(?) 결심을 이어가기로 한 것은 일전에 `일주일간 아무것도 사지 않기`에 도전하면서 깨달은 게 있기 때문이다. 기한을 명확히 정해두고 소비에 제한을 두는 것은 단순히 소비를 줄이자고 생각만 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일주일, 혹은 한 달간 물건을 사지 않는데도 오히려 내 소비 패턴이나 소비욕을 더 확실히 파악할 수 있다. 결심을 통해 `복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기간에는 물건을 구입하는 대신 이미지 저장, 장바구니 넣어두기, 메모하기 등 욕망을 억누르기 위한 `대체 행동`을 하게 되는데, 일정 기간이 지난 후(즉 쇼핑 봉인 해제 후) 이러한 기록들을 돌아보며 내가 한 달간 무엇을 사고 싶어했는지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는 뜻이다. 또한 이 과정을 겪으며 `정말 내가 쓸데없는 것을 사려했구나` 하며 반성하게 되기도 하고, 일정한 기간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구매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물건은 큰 죄책감 없이 살 수 있는 기쁨(!)도 누리게 된다. 쇼핑하지 않은 기간에 수차례 `사야 하나` 망설였다가 확신을 가지고 구입한 물건인지라, 구입 후 만족도도 높다.



이번 도전에서는 특히 도전 실패 직전까지 갈 뻔한 위기 상황이 두 차례 있었다. 첫 번째 위기는 지인의 결혼식이었다. 결혼식에 참석해야 하는데 마음에 드는 옷이 없으니 당연히 쇼핑해야만 했지만, 쇼핑하는 대신 옷장을 뒤적거려 마음에 차지는 않지만 단정한 원피스를 찾아 입었다. 입고 보니 음,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 데다 의외로 다른 사람들이 내 옷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는 웃픈 사실도 깨달았다.



두 번째 위기는 아기와 함께하는 스튜디오 촬영이었다. 역시 너무나도 쇼핑을 하고 싶었지만 촬영의 주인공은 내가 아니고 아가들이라는 생각에 겨우겨우 마음을 고쳐먹었다.



이 기간에 쇼핑만 참은 것은 아니다. 옷을 사지 않는 대신 옷장을 차지하고 있는 기존 옷들을 최대한 활용해야 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달 동안 입지 않은 옷들은 미련 없이 처분하기로 했다. 도전 기간 중 입어보고 썩 마음에 들지 않아 다시 벗은 옷들은 옷걸이에 거는 대신 기부하거나 버렸다.






`버리는 연습 버리는 힘`의 저자 노자와 야스에는 "당당하게 입지 못하는 옷은 이미 옷이 아니라 추억"이라며 "버리거나, 버릴 수 없다면 옷장에서 빼내 상자에 따로 담아두라"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한 달은 추억을 정리하기에는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었다. 추억을 떠나보내니 옷장에 다시 숨 쉴 틈이 생겼다.



`심플하게 산다`의 도미니크 로로는 사실 우리가 가진 옷의 20%를 80%의 시간 동안 입는다고 했다. 그 나머지 옷들은 기분을 안 좋게 하거나, 불편하거나, 한물 간 것들이다. 이번 내 도전은 옷을 사는 데 돈을 쓰지 않겠다는 결심이기도 했지만 궁극적으로는 이들을 걸러내 필요하고 소중한 것만 남기는 작업이기도 했다.



한 달 동안 옷을 사지 않아 아낀 것은 돈뿐만이 아니었다. 추억을 비우는 대신 현실의 나에게 보다 집중하게 됐고 그만큼 나를 조금 더 잘 알게 됐다. 이렇게 조금씩 나를 더 아끼는 방법을 배워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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