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니까 먹는것은 눈감아주기로 한다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은 다양하다. 그중에서도 단연 대표적인 방법은 쇼핑이 아닐까. 최근 둘째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 내 스트레스 지수는 전례 없이 치솟았다. 아기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사랑스럽지만 아기 탄생으로 인해 부족해진 잠, 떨어진 체력, 늘어난 일거리 등이 전방위로 나를 짓눌렀다.
미니멀라이프에 도전하면서 자연스럽게 쇼핑 빈도가 줄었지만 삶의 질이 저하되자 다시 쇼핑에 관심이 갔다.첫째 아기 때 사용했던 육아용품이 그대로 있기 때문에 둘째 육아용품은 사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나는 더 이상 없었다. 자지 않고 칭얼대는 아기를 조금 더 쉽게 재우기 위해 새벽잠을 쫓아가며 `꿀잠 육아템`을 검색해 사들였다. 이미 아기띠가 3개지만 요즘 유행한다는 슬링형 아기띠를 추가로 구입했다. 출산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외출할 일이 거의 없음에도 즐겨찾기한 쇼핑몰을 마치 성지순례하듯 한 바퀴 돌며 신제품을 확인해야 마음이 놓였고(물론 구경만 하는 건 아니다), 지역맘카페 `핫딜방`도 매일 들렀다.
그나마 조금 숨통이 트일 정도로 비웠던 집에는 다시 물건이 차기 시작했다. 아기가 태어나며 다시 꺼내 놓은 각종 신생아 용품뿐만 아니라 내가 사들이는 물건이 쌓였다. 물건이 쌓이니 찾기가 어렵고, 찾는 데 시간을 소비하느니 어차피 써버릴 물건, 하나 더 사야겠다며 생각 없이 구매 버튼을 누르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퍼뜩 정신이 들었다. 여기, 미니멀라이프 도전자가 아니라 쇼핑 중독자가 한 명 있구나. 낯설면서도 익숙한 이 모습에서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다시 마음을 가다듬기 위해 시작한 도전은 `아무것도 사지 않는 일주일`이다. 말 그대로 일주일간 쇼핑을 하지 않는 것으로 간헐적 단식과 같은 `쇼핑 단식`을 시도하는 것이다. 정말 아무것도 사지 않으면 더욱 좋겠지만, 나는 초보 도전자인 데다 둘째를 출산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산모이기 때문에 최소한 식재료 구입은 허용하기로 했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 쇼핑에 대한 마음을 `디톡스` 하고, 쇼핑 충동을 자극하는 원인을 찾아낼 수 있다.
가네코 유키코가 쓴 `사지 않는 습관`에서도 일주일 동안 아무것도 구입하지 않는 체험을 권한다. 그는 만일 일주일 동안 외부에서 물자가 보급되지 않는다면 살아갈 수 있을까에 대한 생각은 창조적인 발상을 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언급했다. 돈을 쓰지 않고 살아가는 핵심 방법은 `궁리하기`로, 지금 가진 것을 최대한 살리는 방법이라고 한다. 이는 생활 속에 묻혀 있는 보물을 캐내는 즐거운 작업이며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자각하는 좋은 계기가 된다는 게 그의 조언이다.
나 역시 이러한 깨달음을 얻기를 기대하며 쇼핑 없는 일주일을 시작했다. 쇼핑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습관처럼 진행하던 온라인 쇼핑몰 산책(!)을 단번에 끊은 것은 아니다. 다만 전날까지는 사고 싶은 물건이 있을 때 주저 없이 구매했다면 쇼핑 단식 기간에는 물건을 장바구니에만 담거나 메모장에 기록했다. 단식 기간이 끝난 뒤 잊지 않고(?!) 구매하기 위해서다.
하루 혹은 단 몇 시간만 진행하는 온라인 쇼핑몰 `핫딜` 유혹은 과감히 뿌리쳤다. 사실 이 유혹이 가장 뿌리치기 어려운 것이었는데, 내 쇼핑 단식이 끝나기 전에 타임 세일도 함께 끝나버리기 때문이다. 게다가 주기적으로 구입해야 하는 생필품이 종종 타임 세일을 하다 보니 `쟁여두고` 싶은 마음이 솟구친다. 이번 쇼핑 단식 기간에는 아기가 있는 집이라면 늘 구입해야 하는 기저귀와 물티슈가 눈이 휘둥그레지는 가격대로 세일을 했다. 사놓을까 생각했지만 눈물을 머금고 마음을 접었다.
세탁 세제도 세일을 하기에 구입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으나 세탁실에 가보니 며칠 더 쓸 만큼 세제가 남아 있었으므로 그만두기로 했다(세탁실에 가는 짧은 시간 제발 세제가 똑 떨어져 있었으면 좋겠다고 주문을 몇 번씩이나 외웠는지 모른다).
이러한 일주일을 보내니 구매에 `망설임`이 담겼다. 발견과 동시에 주문·구매 버튼을 클릭하던 충동구매와 쇼핑 중독의 삶에 제동이 걸렸다는 소리다. 일단 장바구니에 담아두고 그럴 수 없는 항목은 메모해 놓고 일주일 뒤에 구입하려고 보니 굳이 사지 않아도 되는 경우가 꽤 있었다. 구매를 하지 않은 채 쇼핑 리스트를 적은 메모를 매일 확인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꼭 사야 하는 걸까`라는 고민도 함께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실제 도전이 끝난 뒤에도 반드시 사야 한다는 생각이 든 항목은 구입 후 만족도와 활용도가 높았다.
부끄러운 소리지만 `제발 똑 떨어져라` 주문을 외웠던 세탁 세제는 도전이 끝난 지 일주일이 넘은 지금까지 아직도 꽤나 넉넉히 남아 있고, 세탁 세제 타임 세일은 하루 건너 한 번꼴로 있었다.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 것 같던 타임 세일 기회는 내가 물건을 구입하지 않는 기간 내내 눈에 띄었다. 기저귀와 물티슈도 2주 이상 구입하지 않았지만 여전히 충분하다. 매우 필요하고 자주 사용하는 소모품임에도 이미 충분했던 물건이며, 괜히 더 사놓고 쌓아두어 공간을 차지할 필요가 없던 것이었음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일주일 안에 80퍼센트를 버리는 기술` 저자인 후데코는 물건을 늘리지 않는 방법 중 하나로 `바로 사지 않는 것`을 추천했다. 즉, 일부러 구매 타이밍을 놓쳐 한 달쯤 기다리는 것이다. 이렇게 기다리다 보면 `왜 그런 게 갖고 싶었지?` `역시 필요 없었네` 같은 생각을 하게 된다고 했다. 나 역시 한 달보다 훨씬 짧은 일주일이었지만 구매를 늦추면서 필요성이나 구매 욕구가 자연스럽게 줄어드는 것을 경험했다.
물론 이 도전에는 부작용이 있다. 특히 나 같은 초보는 도전이 끝나고 그간 참았던 구매욕이 한꺼번에 밀려와 `사지 않는 일주일` 이상으로 `사기만 하는 일주일`을 맞고야 말았다. 참다가 사니 더 즐겁다. 하하, 물건을 산다는 건 이렇게나 신나는 일이었구나. 물론 반복된 구매 끝에는 허무함도 함께 몰려왔다.
하지만 이러한 경험 역시 과정이라 생각하고 눈감아 주기로 한다.
앞으로는 가능하다면 한 달 중 일주일을 `사지 않는 주간`으로 정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주기적으로 사지 않는 기간을 보내고 나면 함께 찾아오는 부작용도 점차 줄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