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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봄 Nov 08. 2019

꼭 사야하는 것들은 지금 사도 돼

미니멀라이프로 작은집 콤플렉스 극복하기

그렇다. 제목에서 예고한 대로, 이번 주제 역시 또 `사는(buying)` 것에 대한 이야기다. 미니멀라이프를 한다고, 내 구매욕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므로. 나는 미니멀라이프 도전자이자 친구들이 지어준 별명처럼 `쇼핑요정`(요정이라는 표현 죄송합니다)이기도 하다.



나에게는 작은 집 콤플렉스가 있었다.모든 것을 `좁은 집 탓`으로 돌렸다. 사고 싶은 것들은 많은데, 이 집에는 도저히 들일 곳이 없어서 들이지 못해 불만이 쌓였다. 그래서 나는 당장은 사지 못하는 물건에 대한 쇼핑리스트를 작성해놓고 있었다. 이름하여 `이사 구매 리스트`. 조금 더 넓은 집으로 이사를 간다면 구매할 목록들을 작성해 놓은 리스트다.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물론 넉넉한 것은 아니지만), 공간이 부족해 사지 못하는 덩치 큰 물건들을 적어두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얼마나 좁은 집에 사느냐고 묻는다면 대답하기가 부끄럽다. 우리 집은 국민 신혼아파트 크기이기도 한 전용면적 59㎡, 방 세 개와 화장실 두 개가 있는 아파트다. `예전에는 반지하 단칸방에서 자식 다섯을 먹여 키웠다`라고 종종 말씀하시는 어르신들 앞에서 이 이야기를 하면 볼기짝을 세차게 얻어맞을 터다. `3평(9.9㎡) 집도 괜찮아!`라는 미니멀라이프 서적도 있는 마당에 25평 집에 살면서 작다고 불평을 하다니, 미니멀리스트 선배님들께도 욕을 얻어먹을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그래도 우겨보자면, 내가 원하는 물건들을 들여놓을 공간이 없는 건 분명한 사실이었다. 살짝만 내 쇼핑리스트를 공개하자면 가령 이런 것들이다.



패밀리침대 /출처=리바트 홈페이지




우선 퀸 사이즈 매트리스를 두 개 붙인 패밀리 저상형 침대를 사고 싶었다. 아기가 태어나면서 남편은 신혼 때 장만한 퀸사이즈 침대에서 자고, 아이와 나는 바닥에 깔아둔 범퍼침대에서 꼭 붙어 잠을 잤다. 나만의 생각일 수는 있지만, 매일 밤마다 이산가족이 되는 우리 가족의 재결합(?)을 위해서는 꼭 패밀리 침대가 필요했다. 특히 아이가 하나 더 태어날 예정인데, 기껏해야 싱글 침대 사이즈 정도인 범퍼침대에서 아기와 셋이 잘 수는 없지 않은가(구구절절 사정을 말하면 길어지지만, 갓난 아기는 수유 등을 이유로 엄마와 같이 자야 하고, 첫째는 엄마 껌딱지라 당연히 엄마 옆에서만 자려고 한다). 하지만 아무리 계측을 해 보아도 우리의 작은 거실에 저상형 침대를 두기에는 공간이 부족했다. 남편은 내가 패밀리 침대를 사고 싶어 노래를 부를 때마다 `조금 큰 집으로 이사가면 사자`고 달랬다. 하지만 둘째 아기는 석 달 후에 태어나는데, 큰 집엔 언제 이사가는 거죠?




건조기 /출처=LG전자



언제 살지 모르는 `구매 리스트` 중 하나는 대형 건조기였다. 수납공간이 적은 우리집은 세탁실이기도 한 다용도실을 창고처럼 쓰고 있다. 요즘의 `대세템`이자 워킹맘의 `필수템`인 건조기를 사고 싶지만 세탁기 위에 설치된 선반 가득 세제와 냄비, 각종 잡동사니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다. 요즘은 공간 절약을 위해 건조기를 세탁기 위에 설치할 수 있지만, 세탁기 위에 공간이 없다. `건조기 병`에 걸린 나를 남편은 또 타이른다. `이사 가면 사자~.` 하, 그놈의 이사, 이사, 이사!



에어프라이어도 마찬가지다. 전기밥솥보다 조금 더 큰 이 물건이 여러모로 유용한 것은 사실이나, 요리할 때 쓸 도마도 놓을 수 없는 주방에 에어프라이어마저 들어오면 요리 자체를 하지 못해 주방 본연의 기능을 상실할 가능성이 우려됐다. 남편의 위로는 이쯤 되면 곡을 붙여 노래를 하나 만들어야 할 정도다. `이사 가면 꼭 사자~.`



궁극의 미니멀라이프를 추구하는 이들은 이런 열병에 가까운 나의 구매욕을 비난할지도 모른다. `궁극의 미니멀라이프` 저자 아즈마 가나코는 세탁기와 냉장고조차 쓰지 않는다. 실제로 가나코는 `편리의 유혹에서 벗어나라`며 기계나 도구 탓을 하는 것은 이제 그만두라고 일침을 놓기도 했다.



하지만 일을 하며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편리함을 주는 기계는 가족과의 시간을 벌어주는 존재다. 빨래를 널 시간에 아이와 함께 책을 읽는 것, 복작복작 요리를 할 시간에 남편과의 티타임을 가지는 것이 내가 더 소중히 여기는 가치라면 `편리`를 추구하고 기꺼이 편리의 유혹에 넘어가는 것이 나만의 미니멀라이프라고 자평해본다. 미니멀리즘이란 나와 내 삶에 무엇이 알맞은지 파악하는 것이라고들 하지 않는가.



이러한 연유로 결국 나는 이 쇼핑리스트의 물건들을 손에 넣고 만다. 공간이 없는데 이렇게 덩치 큰 물건들을 집에 어떻게 들였느냐고 묻는다면 답은 간단하다. 공간을 만들었다. 공간을 만드는 방법은 모두가 알고 있는 대로 그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물건들을 비우는 것이다.



한국의 미니멀리스트이자 작가인 탁진현 씨는 모든 물건의 목적은 과거도 미래도 아닌 지금 당장 활용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나의 쇼핑 리스트들은 지금 구입하면 당장 활용할 수 있는 `현재의 물건`이었다. 이들을 집에 들이기 위해 과거에 썼지만 지금은 전혀 쓰지 않는 물건들이거나, 혹시 미래에 사용할 수 있을지도 모르기에 구비해 놓았던 물건들을 과감히 처분했다. 세탁실에 쌓아둔 여분의 조리도구와 식기류를 버리거나 나눴다. 종류별로 가득했던 세제는 단순화했고, 유통기한을 훌쩍 넘긴 채로 방치되어 있던 상온 식품들도 떠나보냈다. 그랬더니 세탁기 위 선반이 비었고, 선반을 치워버렸더니 놀랍게도 건조기가 들어갈 공간이 생겼다. 여기에 덧붙여 에어프라이어 역시 다용도실에 넣을 수 있었다.



자기 전에 읽을 책이나 인테리어 소품 등을 놓던 사다리형 선반은 책과 소품을 정리하고 나니 무용지물이 됐다. 확장형 화장대 위에 가득 올려져 있던 화장품과 액세서리를 정리하고 화장대 폭을 줄였다. 선반을 빼고 화장대 폭을 줄인 후 범퍼침대까지 처분하니 작다고 투덜댔던 우리 집 안방에도 거대한 패밀리 침대가 들어올 수 있었다.



이제야 `집이 좁다`고 불평했던 과거의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집이 좁고 공간이 부족했던 게 아니라 물건이 많았던 것이고, 특히 `쓰지 않는 물건`이 많았던 것이었다. 필요한 물건만 남겼더니 정말 필요한 물건을 살 수 있었다. 그리고 오랫동안 `쇼핑리스트`에만 담겨 있다가 우리 집에 들어온 이들은 매일매일 우리 집에서 `현역선수`로 활약 중이다.






내 쇼핑리스트는 언제 올지 모르는 미래의 것이었다가 현실이 되었다. 이들이 현실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과거의 추억과 미래에 대한 걱정이 가득했던 나의 초점과 공간을 `현재시점`으로 맞췄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결과 지금 나는 매우 만족한다. 필요한 것을 갖출 수 있는 지금의 삶은 필요없는 것을 버리고 나서야 이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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