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도전러와 선택 장애자의 기로에서 벗어나기
나는 사소한 도전을 즐기는 편이다. 나의 도전이란 정말이지 누구나 할 수 있는 사소한 수준인데, 가령 이런 것들이다. 편의점에서 음료수를 고를 때 신상품이 눈에 띄면 사서 마셔보는 것, 직장이나 집 근처에 새로운 식당이 생기면 한 번쯤은 방문해 보는 것, 자주 가던 식당에서도 신메뉴가 나오면 하나 주문해 보며 소소한 평가를 하는 것 정도다. 이러한 성향은 음식뿐 아니라 생필품이나 사무용품 등 소모품을 살 때도 그대로 적용된다. 기왕이면 안 써본 것을 골라서 써보고 `이런 것도 있구나` 하고 알아가는 재미가 사는 맛 아니던가. 옷과 신발을 살 때도 `한 번쯤은 이런 옷도 입어볼까?` 싶은 새로운 디자인이나 컬러를 시도해보곤 한다. 이런 사소한 도전쯤, 누구나 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나와 정반대인 남편을 만나면서 `헉, 이런 사람도 있네` 하며 개안(開眼)을 했다. 내 남편은 사소한 도전보다는 `실패 없는 선택`을 선호한다. 음식점에 가더라도 늘 먹는 메뉴를 고른다. 편의점에서도 `전통의 음료`(?)나 간식을 구매하고, 문구점에 가서는 늘 쓰는 펜을 산다. 기존에 경험하지 않은 새로운 물건을 살 때는 온라인 리뷰나 주변인의 평가를 참고한다. 무척 평온하지만 한편으로는 무지 재미없어 보이는 이 남자가 바로 내 남편이다.
지금으로부터 5년 전, 결혼 3개월 차 파릇파릇한 신혼의 우리는 호주로 여행을 떠났다. 우리 부부는 거의 다투지 않는 편이라, 함께 살면서 부부싸움을 한 경우는 다섯 손가락 안에 꼽는데, 그중 한 번이 이때다. 당시 우리는 호주 휴양지인 골드코스트에서 특히나 지라시 스시가 맛있다고 소문난 숙소 근처 일식집을 구글 지도를 뒤져가며 열심히 찾아갔다. 자리에 착석 후, 나는 말했다. "메뉴 하나는 지라시 스시를 시키고, 다른 건 뭐 시키지?" 남편은 내 질문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듯이 답한다. "지라시 스시 두 개 먹으면 되잖아?" 아니, 이게 무슨 소리지. 내 평생 호주에, 또 골드코스트에, 그리고 이 작지만 보석 같은 식당에 다시 찾아올 일이 또 있을까. 그럴 확률이 낮다면 처음이자 마지막 방문이 될지도 모르는 이 식당에서 최대한 많은 메뉴를 경험하는 것이 지당하지 않은가. 내가 이러한 주장을 펼치자 남편이 반격한다. "다시 찾아올 일 없는 이 식당에서, 가장 맛있는 메뉴가 뭔지를 알아 와 놓고 왜 다른 메뉴를 시켜야 해? 나는 실패 없는 메뉴를 시켜서 온전히 한 그릇을 먹고 싶다고!"
결국 내 고집으로 두 가지 메뉴를 시켰으니 나의 승리라고 할 수 있겠지만, 결과적으로는 내 패배였다. 이미 식전에 기분이 상해 여행지에서의 시간을 낭비했을뿐더러, 내가 시킨 다른 메뉴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맛이었다(뭘 시켰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제 와서 이날의 싸움을 되짚어보면서 생각하는 것은 어쩌면 내 소소한 도전이란 나의 선택 장애, 혹은 결정장애를 좋게 포장한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것이다. 물론 상대적으로 호기심이 많은 성격이기도 하지만, 확실한 취향이 없어 물건을 구매할 때마다 갈팡질팡 방황하는 것 역시 사실이다.
작가이자 미니멀리스트 주부 야마구치 세이코는 `버리고 비웠더니 행복이 찾아왔다`는 제목의 저서에서 물건을 줄여나가다 보면 선택의 기준이 생긴다고 했다. 만약 가방을 사려고 해도 색깔과 모양 크기 등 몇 가지 조건을 비교하고 검토해 구매 여부를 결정짓는데 이때 선택의 기준이 없으면 마음에 드는 가방을 쉽게 찾을 수가 없어 시간과 수고를 감내해야 한다. 하지만 수많은 물건을 줄여나가는 과정에서 여러 물건 중 하나를 선택하는 작업을 반복하면 일정한 가치관이 정해지고 선택의 기준이 저절로 만들어진다. 그렇게 `결정장애`가 치유된다.
떠올려보면 기준 없이, 취향 없이 사게 된 `도전적인 물건`이 완벽하게 내 마음에 드는 경우는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사실 크게 고민과 노력을 기울여야 할 만큼 고가도 아니었기 때문에 큰 고민 없이 지갑을 열었던 것뿐이다. 간혹, 기대 이상의 품질이나 맛에 만족했던 경험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저 그런` `한 번으로 족한` 구매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만족도가 낮은 구매로 인한 결과물인 이들이 내 책상과 위장을 차지했기 때문에 내가 잃어버린 시공간도 분명히 존재한다. 이것 역시 내 호기심에 대한 기회비용인 셈이다.
그래서 미니멀리스트들은 필요한 제품, 혹은 원하는 제품을 찾아낸 뒤 이를 `반복 구매`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한다. `일상이 심플해지고 마음이 가벼워지는 미니멀 라이프 아이디어 55`(저자 미니멀리스트 미쉘)라는 책에서는 미니멀 라이프 아이디어 중 하나가 마음에 드는 물건은 주저 없이 반복 구매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것이 옷이든 생필품이든 음식이든 말이다. `잡동사니 정리의 기술`이라는 책에서는 물건을 처분할지 여부를 결정할 때 `이 물건이 없어지면, 오늘 당장 똑같은 물건을 구매하게 될까?`라는 질문을 던져보라고 했다. 나 자신에게, 내 삶에 맞는 최상의 물건을 찾았다면 굳이 새로운 도전을 할 필요가 없어진다.
호기심이 종종 구매 실패로 인한 비용·공간 낭비라는 기회비용을 촉발한다면, 반복 구매는 이러한 기회비용을 확실히 줄여준다. 기회비용이 줄어들면 자연스레 `가성비`가 높아진다. `옷을 사려면 우선 버려라`의 저자 지비키 이쿠코는 일주일에 몇 번이고 입고 싶은 아이템을 찾았다면 디자인은 같지만 색깔이 다른 옷을 한 개 더 사기보다는 색상과 디자인이 완전히 같은 옷을 하나 더 사는 게 훨씬 실용적이라고 말한다. 마음에 쏙 드는 옷을 찾고 나서 색깔만 다른 옷을 하나 더 구입했을 경우 그 옷을 거의 입지 않게 되는 경우가 많다는 게 그의 경험이 담긴 조언이다. 같은 옷 두 벌을 사서 더 자주 입는 것이 가성비에 부합한 선택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사소한 도전을 포기한 덕(?)에 소소한 즐거움을 잃어버린 게 아쉽지 않으냐는 질문을 누군가가 던진다면 나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어느 날의 남편이 내게 했던 말로 질문에 대한 답을 대신해도 될 것 같다. 역시나 먹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에 조금만 더 먼저 수긍했더라면, 나의 호주 여행은 조금 더 많이 즐거웠을 텐데….
"세 보지는 못하겠지만, 내가 살면서 외식을 몇 번이나 더 하게 될까. 무작정 아무 곳이나 들어가서 새로운 메뉴를 선택했다가 실패해 기회를 날려버리는 것보다는 내가 정말 좋아하는 식당에서 좋아하는 음식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먹는 것이 더 즐거울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