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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봄 Oct 12. 2019

아기 옷 산에서 탈출하자

내옷보다 네옷이 더 힘들다

"이제 네 옷 그만 버리고 아가 옷 좀 정리해봐."



결국 남편이 한마디를 하고 말았다. 나도 안다. 내 옷을 정리한 만큼 그 자리가 딸의 옷으로 채워지고 있다는 사실을. 정리를 하지 않으려고 했던 것도 아니다. 하지만 아기의 옷 두세 벌을 겨우 처분하고 나면 세 살 터울의 조카에게서 작아진 옷 열 벌, 스무 벌이 도착한다.여기에 내 배 속에는 곧 세상 밖으로 나올 둘째가 있다. 즉, 작아진 옷도 홀가분하게 처분할 수가 없다는 뜻이다. 첫째의 옷과 물건을 모조리 물려받아야 할 두 살 터울의 둘째를 위해 신생아 시기의 옷부터 모조리 남겨놔야 한다.




현재 20평대인 우리 집의 좁은 수납공간에는 0세부터 5세까지 모든 연령대의 옷들이 계절별로 꽉꽉 들어차있다. 수납공간에만 들어 있으면 다행이다. 넣어둘 공간이 없어 과자 박스에 넣어둔 작아진 옷, 열어볼 엄두가 나지 않아 그저 구석에 모셔둔 채 방치해 둔 조카의 옷박스가 여기 저기 널려 있다. 누가 보면 이사를 앞둔 것처럼 보인다.



미니멀라이프에 도전하겠다는 결심을 한 이유가 `정리를 못해서`였고, 정리를 못하면 비워야 하는데, 특히 옷을 비롯한 아기 물건은 너무나도 비우기가 어렵다. 하지만 아기 짐만큼 집을 어지럽게 만드는 물건도 없다. 깔끔하고 간소한 집을 유지하는 대표적인 비결은 물건을 쌓아두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세제나 휴지 등 소모품도 한번에 저렴하게 여러개를 구입하는 대신 그때 그때 필요한 물건을 구입하는 게 공간을 낭비하는 것보다는 훨씬 집 안의 짐을 덜어주고 심플한 삶을 유지할 수 있게 하는 비법이다. 많은 미니멀라이프 관련 전문가들의 조언이지만 아기들의 물건에는 도통 적용이 힘들다.






아기 물건, 특히 아기 옷은 어떻게든 손을 대 보려고 하다가 오히려 손을 놓아버리게 되는 경우가 다수다. 작아진 옷이라도 처분할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인 수준이다. 혹시 둘째가 생길까 봐 쌓아두는 사람도 있지만 이미 작아진 옷을 보면서 이 옷을 입고 꼬물거리던 아가 시절 아기의 모습이 떠올라 간직하고 있는 사람도 상당수다. 아기들의 옷 한 벌이 차지하는 공간은 어른 옷에 비해 훨찐 작아서 한 벌쯤은 남겨둬도 되지 않을까 싶은 유혹에 시달리기 십상이다. 게다가 도대체 아기들의 옷은 왜 이렇게 예쁘단 말인가, 아기 옷이 집 안 서랍서랍을 꽉꽉 채우고 있다며 한숨을 쉬면서도, 아기 옷 쇼핑을 멈출 수가 없다. 쇼핑몰에 걸려 있는 깜찍한 아기 옷을 보고 정신을 잃는 사람은 나뿐이 아니다. 남편도, 우리 엄마(외할머니)도, 시어머니(친할머니)도, 고모와 이모도 모두 귀여운 아기 옷 쇼핑에 중독되고 그 결과물이 집에 차곡차곡 쌓여간다.



하지만 아직 육아도, 미니멀라이프에도 초보인 내가 1년 반여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면서 깨닳은 점은 어른들처럼 아이들에게 자주 입히는 옷도 정해져 있다는 점이다. 주 5회 다른 옷을 입힌다고 해도 상·하의 5벌, 여기에 집에서 입는 내복과 실내복 5~6벌, 주말에 입을 외출복도 5~6벌이면 충분하다. 옷이 자주 지저분해지고 자주 갈아입히기 때문에 조금 더 많은 옷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하지만 그래서 아이들의 옷은 어른들의 옷보다 훨씬 자주 세탁한다. 살림에 큰 관심이 없는 우리 부부만 해도 아기 옷만은 이틀에 한 번씩 빤다. 건조기를 집에 들인 후에는 세탁한 옷은 다음날 바로 입힐 수 있게 됐다. `나에게 맞는 미니멀라이프` 저자인 일본 미니멀리스트 아키는 미취학 아이의 옷의 기본을 `여섯 벌`로 정했다. 그리고 반년을 입히고 버린다고 각오하고, 적당한 가격의 옷을 계절마다 새로 사며 `쇼핑 욕구`를 채운다. 이 이상의 옷은 과감히 처분하거나 주변에 나눠준다.






그리고 아기 옷은 편안한 게 우선되어야 한다. 보통 선물받거나 충동적으로 구매하는 옷들은 원피스 등 외출복이 많다. 하지만 어린이집에 이런 옷을 입혔다가는 담임 선생님께 꾸중을 듣기 일쑤다(물론 아기가 아닌 엄마가 말이다). 아이들은 어린이집에서 그 옷을 입고 낮잠을 자기 때문에 오히려 과한 외출복은 수면과 놀이 활동에 방해만 될 뿐이다. 당연해 보이지만 이러한 경험은 육아에 동참해보지 않은 할머니들이나 친척, 미혼인 친구들은 의외로 잘 알지 못한다. 따라서 아기 옷을 선물하고 싶어하거나 실제 자주 선물해 주는 사람들에게는 그들의 기분이 상하지 않는 선에서 `옷을 꼭 사주고 싶다면 편안한 옷으로 준비해 달라`고 부탁하는 편이 좋다.



날마다 미니멀라이프(박미현)이라는 책에는 `물건이 없어져도 그 아련함은 지금도 마음속에 그대로 남아 있고,물건이 사라진다고 해서 그 아련함이 없어지는 건 아니었다`는 경험담이 나온다. 이 아련함은 내 물건보다는 아이 물건에서 훨씬 크게 느껴진다. 그러나 아이와의 추억 역시 그만큼이나 강력하고 시간이 흘러서도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이미 작아졌거나 소용없어진 아기의 물품은 떠나보내는 게 매일 짐덩어리를 해결하지 못해 우울해 하는 엄마 아빠의 정서를 위해 좋다.






단 영유아의 옷은 아름다운가게 등 일반적으로 우리가 기부하는 기부처에서는 받지 않는 경우가 많다. 특히 배냇저고리 등 신생아 의류는 대부분의 기부처에서 받지 않는다. 하지만 미혼모를 위한 출산용품·육아용품·생활용품을 기부할 수 있는 애란원(www.aeranwon.org)에서는 생후 3개월 내 아가 의류를 기부받고 있으니 참고하면 좋다. 코너마켓(www.cornermarket.co.kr)은 브랜드 유아동복을 리세일할 수 있는 사이트다. 키플(www.kiple.net)이란 사이트에서는 입지 않는 아이 옷을 보내면 사이트 내 사이버 머니로 교환을 해준다고 한다. 나는 둘째를 위해 옷을 쌓아둬야 하는 처지라 아직 이들 사이트를 활용하지 못하고 있지만 기회가 되면 경험담을 다시 소개해 보려 한다.



둘째를 기다리거나 물려받을 곳이 많아 옷이 쌓여 있는 나 같은 엄마들은 터울(사이즈)과 계절에 따라 옷을 분류해 박스나 지퍼백에 모아 창고 등에 넣어놨다가 필요한 시기에 맞춰 꺼낼 수 있도록 정리해두는 게 좋다. 나 역시 정리가 꽝이라 받은 족족 어딘가에 쌓아놓기 바빴지만, 그 결과 상대방이 신경 써서 사준 옷들 중 정작 맘에 드는 옷들은 한 번도 입혀보지 못한 채 계절과 사이즈가 지나가 버린 경우가 종종 있다. 공간도 버리고 옷도 버리는 불상사를 막기 위해서는 초반의 번거로움을 감수해야만 한다.



육아라이프는 미니멀라이프와 상충되는 점이 분명히 존재한다. 물건을 줄이고 싶지만 아이가 자라면서 필요한 물건은 계속 새로 생기고, 당장 활용하는 물건들만 남겨두겠다는 결심은 아기들의 물건 때문에 늘 좌절된다. 미니멀라이프에 도전한 지 1년을 앞두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 집이 엉망인 이유도(잠깐, 이 대목에서 눈물 좀 닦아야겠다) 이 때문이 아닐까. 상당수의 미니멀리스트들은 자녀가 없거나 싱글 라이프를 즐기는 경우가 많아 책 속에서 그들의 사진을 보면 상대적 박탈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 마음조차 비워내고 내 속도에 맞춰 조금씩 도전해 나간다면 언젠가는 조금 더 심플한 삶을 살고 있지 않을까. 아이 옷이 가득 쌓인 산을 정복해 가면서 내 마음이 조금은 더 단단해 지기를 바라본다.



[이새봄 국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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