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뽕을 뽑아야겠다는 생각부터 버리셔야 우리가 이 물건들로부터 자유로워 질 수가 있습니다."
2016년이었던 것 같다. 한국에 미니멀라이프가 소개되고 관련 콘텐츠가 인기를 끌기 시작하면서 풍자 코미디 프로그램인 `SNL코리아`에서 미니멀라이프라는 주제의 콩트를 방영한 적이 있다.한 집을 방문한 `정리 전문가`가 집 안의 필요 없는 물건을 거침없이 정리하기 시작하더니, 어느 순간 집 안이 텅 비어버린다. 미니멀라이프에 경도된 그들은 `쓰지 않는(?)` 아내를 쓰레기봉투에 넣으려 할 뿐 아니라 결국 집까지 버리고 길바닥에 나앉는다. 당시 미니멀라이프에 전혀 관심이 없던 나는 이 콩트를 보고 눈물나게 웃었다. `정말 세상엔 별난 사람들이 많군`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로부터 2년 후 미니멀라이프에 도전하겠다며 미니멀라이프 커뮤니티를 들락거리던 나는 비슷한 경험이 적힌 체험기를 보며 기시감을 느꼈다. 비움의 `고수`들의 비움 후기를 읽어내려가다 보니 그때 보았던 콩트가 그대로 떠올랐다. 한 미니멀리스트는 하루는 소파를 처분하고, 어느 날엔 TV를, 거실장과 탁자를, 식탁을, 침대를 처분했다. 그리고 어느덧 냉장고와 세탁기까지 사라져버렸다. 대부분 가구를 처분한 뒤 다기능으로 사용할 수 있는 평상을 하나 들이고 침대와 탁자 소파 용도로 사용하고 있는 그 분의 삶을 엿보면서 내가 느낀 감정은 존경보다는 두려움이었던 것 같다. `비우고, 또 비우다 보면 나도 이렇게 모든 걸 비우게 되는 걸까.`
하필 이러한 고민이 생긴 와중에 읽었던 책이 "냉장고 세탁기 없어도 괜찮아- 궁극의 미니멀 라이프"(아즈마 가나코)다. 저자는 세탁기를 이용하지 않고 고형비누 하나로 손빨래를 한다. 목욕수건 같은 큰 빨래가 있으면 힘들기 때문에 평소 몸을 닦는 수건은 작은 스포츠타월을 쓴다고 한다. 책 제목처럼 당연히 냉장고도 없다. `편리함을 찾기 시작하면 끝이 없어요. 기계와 도구 탓만 하는 것은 이제 그만두는 게 어때요?`라는 메시지에는 좌절을 느꼈다. `아…이 길은 내 길이 아닌 것일까?`
일본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는 한 미니멀리스트는 TV를 과감히 처분하고 스마트폰을 머리에 쓰고 영상을 보는 헤드마운트디스플레이(HMD)로 드라마와 TV를 시청한다. 소파와 침구를 대체하는 에어매트리스에 HMD를 착용한 채 앉아 있는 그의 모습이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낯설 수밖에 없다. HMD로 영상을 오래 보면 눈이 피로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그는 도리어 "금세 피곤해지기 때문에 오히려 과한 영상 시청을 자제하게 된다"고 답변한다.
이 이야기들을 꺼내는 이유는 어찌 보면 극단적으로 보일 수도 있는 (책 이름조차도 `궁극의 미니멀 라이프` 아닌가) 이들의 삶을 보고 나처럼 미니멀라이프에 관심이 있던 `초보` 도전자들이 자칫 겁을 먹을까 싶어서다. 마치 내가 그랫듯 말이다.
고백하건대 이들이 추구하는 삶이 `과하게` 보였던 것은 사실이다. 물건을 버리지 못한 채 집 안에 발 디딜 틈도 없이 가득 쌓아놓는 강박장애를 가진 `호더(hoarder)`와 버리기에 집착해 아무것도 두지 않는 사람들이 다를 게 뭐가 있냐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또 미니멀라이프나 미니멀리스트에 대한 많은 이들의 이미지는 이러한 궁극의 미니멀라이프를 실천하는 이들과 겹친다. 그렇기 때문에 미니멀라이프를 실천하겠다고 주변인들에게 알렸을 때 이들이 "네가 가능하겠어?"라는 다소 의지를 꺾는 발언을 하는 경우가 많다. 미니멀라이프에 도전하겠다는 나에게 남편이 장난처럼 했던 말도 "소파랑 침대, 세탁기까지 버릴 건 아니지?"였다.
하지만 조금씩 물건을 비우고 관련 서적을 읽어가며 미니멀리즘 라이프스타일에는 정해진 방식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나서는 이러한 주변인들 시선이나 다양한 이들이 실천하는 각각의 미니멀라이프를 모두 받아들이게 됐다. 일부 미니멀리스트들이 실천하는 `궁극의 미니멀라이프`는 그들 나름대로의 철학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이들의 삶을 더 존중할 수 있게 됐다. 한편 내 도전의 끝이 그들의 삶과 맞닿아 있지 않다는 것을 받아들이자 마음이 편안해졌다.
미니멀리즘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일종의 수단이지 목표가 아니다. 최소한의 것만 소유하는 삶을 추구하는 이들도 있지만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의 저자이자 유명 미니멀리스트인 사사키 후미오처럼 `버리고 싶은 병도 위험하다`고 경고하는 이도 있다. 그는 도리어 물건을 줄이는 것은 매우 자극적인 경험이고, 이러한 기분을 느끼기 위해 버리는 일을 마치 `지상명제`로 삼는 게 도리어 삶의 행복을 방해하는 요인이라고 한다.
과거에 물건을 갖고 사는 일에 집착했던 자신에게 벗어났듯이 무조건 물건을 버리고 싶어하는 자신에게서도 벗어나야 한다는 일종의 `중도 미니멀리스트`들 말에 나는 조금 더 마음이 끌린다. 그렇다면 나의 미니멀리즘은 이 정도 선에서 추구하는 것이 바람직할까.
미니멀리즘을 실천하는 일본 부부 오테미·오후미 씨는 "홀가분해지는 일은 그리 특별한 일은 아닌 것 같다"고 말한다. `버리니 참 좋다`는 책에서 이들은 "미니멀리스트는 극단적으로 물건을 줄인다는 이미지가 있어 다른 세계 사람들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우리들처럼 보통 사람들과 별로 다르지 않은 이들이 더 많다"고 말한다.
물건을 적당히 줄인 상황에서 홀가분함과 쾌적함을 느낀다면, 그것으로 족한 것이 아닐까. 시작부터 겁 먹고 미끄러질 필요 없이, 모든 것을 버려야 한다는 부담과 외부 시선에 대한 불편함 없이 그저 조금씩 변해가는 나 자신과 내 공간에 집중하는 것, 그것이 내 `궁극의 미니멀라이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