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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봄 Jan 29. 2020

'어른들의 시간'이 필요해

엄마가 아닌 나로, 부부가 아닌 연인으로 보내는 하루




지난해 4월 프랑스 파리 중심부에 위치한 노트르담 대성당이 화재로 훼손됐다는 소식을 듣고 한동안 마음이 먹먹했다. 내 나라에서 벌어진 일도 아니고, 국제 뉴스를 접하다 보면 이런저런 큰일을 접하기 마련인데도 유독 노트르담 대성당 소식에 오래 눈길이 머문 이유는 아마도 내가 파리를 여행했을 때의 감정이 고스란히 떠올랐기 때문인 듯하다.



낭만과 사랑의 도시라고 불리는 파리에는 두 번 방문해 본 경험이 있다. 아쉽게도 두 번 다 `사랑하는 사람`과 간 것은 아니지만, 그곳에서 마음껏 사랑하는 사람들을 풍경 삼아 거닐며 나중에 꼭 나도 연인과 파리에 왔으면 하는 염원이 생겼다.노트르담 성당 역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다시 찾아야겠다고 다짐했던 곳 중 하나였다.




`프랑스인의 방에는 쓰레기통이 없다` 저자이자 프랑스에 오래 머문 경험이 있는 미카 포사도 프랑스는 `아무르(amour·사랑)의 나라`라며 길모퉁이에서 키스를 하거나 공원에서 포옹을 하며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을 발견하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고 회상했다.



젊은이들뿐 아니라 프랑스인은 나이를 먹어도 사랑하는 마음을 잃지 않는다. 어른들만의 시간을 매우 소중히 여기고, 연인뿐 아니라 자녀가 있는 부부도 아이를 할머니나 베이비시터에게 맡기고 둘이서만 레스토랑이나 공연장, 영화관에 간다고 한다. 이들의 일상적인 외출을 두고 "어린아이를 두고 나가다니!"하고 비판하는 사람은 없단다. 하루가 저물면 아내와 남편은 두 사람만의 호젓한 시간을 보내고, 자연히 그 시간만큼은 아이들의 `엄마·아빠`가 아닌 사랑하는 연인들의 시간이 된다. 포사는 나이가 들어도 열정을 잃지 않고 서로의 존재를 사랑하는 모습이 프랑스인답고 멋져 보였다고 덧붙였다.






육아와 일을 병행하는 워킹맘·워킹대디인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배우자를 `육아 동업자` `육아 동지`라고 표현하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사실 나 자신도 수차례 남편을 그렇게 칭하곤 했다. 일과 육아에 치이다 보면 서로 대화를 나눌 시간조차 부족해진다. 사랑을 삶의 무게가 집어삼킨 것 같은 나날들이 반복된다.



늘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바쁘게 하루를 보내지만 육아도 일도 모두 완벽하게 해내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자괴감이 쌓인다. 1년에 십 수일 주어지는 연차휴가는 혹시 모를 육아 비상사태(라고 쓰고 아기가 어린이집을 못 가는 날)를 위해 고이 아껴둬야만 한다. 야근 후 겨우 주어지는 반일 휴가는 한창 엄마를 찾을 나이에 엄마 얼굴도 보지 못하고 잠이 드는 아기와 조금이라도 더 함께하기 위해 쓴다. 그렇다고 아기와 오롯이 함께하는 하루가 마냥 행복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주말 이틀을 아기와 보내다 보면 차라리 출근하는 월요일이 기다려지기도 한다. 나를 위한 시간도 없는 이 마당에 사랑을 속삭일 여유가 있을 리 없다. 사랑을 속삭이기는커녕 서로 짜증을 내기 일쑤다. 몸과 마음이 힘들다 보니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도 사라져간다.



삭막한 나날들이 지속되자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어 큰맘 먹고 아껴둔 연차 휴가를 둘만의 시간을 위해 쓰기로 했다. 아기는 도우미께 맡기고 이른 아침부터 저녁까지 `동업자`님과 데이트를 즐겼다. 영화를 보고 맛있는 식사를 하고 달콤한 후식을 먹고 가볍게 산책을 했다. 특별할 것 없는 지극히 평범한 데이트였지만 이날 하루는 마법 같은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으르렁대던 동업자들은 다시 연인이었던 순간으로 돌아갔다. 사랑하는 연인들의 시간을 보내며 충분히 에너지를 채웠더니 마음을 지배했던 자괴감이 줄어들었다. 아기에게도 두 번, 세 번 더 웃어줄 수 있었다.



이후 두 달에 한 번 정도 우리 부부는 짬을 내 둘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딱히 날을 정하지 않고 기회만 되면 무조건 둘만의 시간을 보내자고 다짐했다. 여유 시간이 생기면 무조건 아기와 함께 보내려고 계획을 세우던 과거의 나를 훌훌 털어버렸다. 아기와 함께하는 시간도 중요하지만, 먼저 부부 관계가 탄탄하고 부모가 정서적으로 안정돼야 아이도 안정적인 환경에서 커갈 수 있다는 걸 몸소 체험했기 때문이다.



`미니멀 육아의 행복` 저자이자 워킹맘인 크리스틴 고와 아샤 돈페스트는 저서에서 `우리는 어른의 시간을 가질 권리가 있다`고 외쳤다. 물론 엄마와 아빠는 아이의 가장 친한 친구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시간을 아이를 위해 희생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라는 것이다.



일하는 엄마로서 늘 미안한 마음을 안고 살았다. 하지만 이 마음을 내려놓고 다시 나를 들여다보니 행복이 찾아왔다. 엄마·아빠라는 무거운 이름과 아이에 대한 죄책감을 내려두고 부부의 시간을 보내다 보면 내가 다시 나로 돌아왔다는 생각에 마음이 가벼워진다.



꼭 물건을 비우는 것만이 미니멀 라이프는 아니다. 엄마로, 부모로 살아가는 시간에도 비움과 내려놓음, 공백이 필요한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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