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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봄 Feb 04. 2020

낮잠을 자야 미니멀리스트?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


 과거에 한번 언급한 적 있던 `당신이 미니멀리스트가 될 수 있는 25가지 이유`라는 제목의 글(출처 bemorewithless.com)에서는 미니멀리스트가 될 수 있는 요건 중 하나로 `낮잠`을 꼽았다. 낮잠을 자면 미니멀리스트가 될 수 있다(If you nap, you might be a minimalist)는 건데, 이 글을 처음 접할 당시 회사에서 근무를 하면서 코웃음을 쳤던 기억이 난다. `낮잠이야 시간만 주어지면 당연히, 아무나 잘 수 있는 것 아닌가? 한국에서 낮잠을 잘 수 있는 직장인이 얼마나 되겠어?`라며 말이다.


하지만 출산으로 휴직하고 나서야 낮잠은 아무나 잘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출산 후 두 달간 산후도우미가 계셨기 때문에 분명히 낮잠을 잘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낮잠을 잘 수 없었다. 수차례 깨는 아이에게 수유를 하고, 우는 아이를 달래기도 하며 정말 전투적이고 기나긴 밤을 보내고 나면 오전 시간에 극한의 피곤함이 몰려온다. 그럼에도 나는 쉽게 잠들지 않았다.


출근하신 도우미에게 아기를 맡기고 큰아이를 어린이집에 등원시키고 나서 주어지는 2시간 정도의 휴식시간에 나는 항상 침대에 누웠지만 그때부터 머릿속에 온갖 생각이 떠다닌다(이 원고의 마감일도 머릿속에 떠다니는 생각 중 하나다). 낮잠을 자고 나면 금방 가버리는 시간이 아깝기도 할뿐더러 오늘 업데이트된 웹툰도 궁금해진다.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 등에서 사람들이 요즘 뭘 하고 사는지 둘러보고, 가끔 연예계의 가십을 확인하는 것도 침대에 누워서 해야 할 일이다. 공과금 납부 등을 비롯해 일상적으로 처리해야 할 잡일들을 침대에 누워서 처리하다 보면 갑자기 어제도 연락했던 동생과 친구들의 안부마저 궁금해진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버리고 잠시 잠을 조금 자볼까 싶은 찰나에 울리는 휴대폰 알림소리에 금세 잠이 날아간다.


직장생활을 10년간 하면서 낮잠을 잘 수 없는 몸이 돼버린 것은 아닌가, 혹은 우리집에 낮잠을 자지 못하게 하는 수맥이 흐르는 걸까 싶기도 했지만 나랑 비슷한 기간 동안 회사생활을 해온 남편이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침대에 머리를 대기만 하면 잠이 드는 것을 보면 그런 것 같지도 않다.



그제야 드는 생각은 낮잠을 자지 못하는 나 자신은 사실 시간이 없었던 게 아니라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게 아닐까 하는 것이다. 낮잠이 굳이 미니멀리스트가 될 수 있는 25가지 요건 중 하나로 당당히 자리하고 있는 이유는 낮잠이 마음의 여유가 있고 충분히 현재를 살 수 있는 사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루에 1시간도 내 몸의 휴식을 위해 온전히 내줄 수 없는 나에게 미니멀리스트라는 단어가 가당키나 한 걸까, 일순 부끄러웠다.


사실 낮잠뿐만이 아니다. 현재 이 시간에 혹은 나 자신에게 오롯이 집중해본 적이 얼마나 있을까. 퇴근길 지하철 안이나 집으로 올라오는 짧은 길에서도 휴대폰을 놓지 않았던 나를 떠올려본다. 화장실에 갈 때, 볼일을 볼 때나 양치를 하면서도 뭐라도 읽어보겠다고 칫솔과 샴푸 성분 표시를 하나하나 읽어 내려가던 내가 있다. 그렇게 수십 년간 수천 번은 읽었을 샴푸 성분 중 물론 기억에 남는 건 하나도 없다. 분명 나만의 경험은 아닐 것이다. 오죽하면 뇌를 잠시 쉬게 한다는 명목으로 `멍때리기 대회`까지 열릴까.


`가장 단순한 것의 힘`의 저자 탁진현 씨는 본인의 과거를 돌아보면서 `지난날 스트레스를 받고 미래의 불안에 시달리며 일했던 이유를 깨닳았다`며 그 이유가 `아무것도 하지 않을 시간이 없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후 그는 버스를 기다리거나 탔을 때 일부러, 의도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하니 있는 연습을 한다고 했다. 분주하게 보내더라도 이렇게 잠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가지면 삶을 바쁘게 만드는 건 남이 아니라 나이며, 사실은 내게도 충분한 여유가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는 게 그의 전언이다.


미니멀리스트이기도 한 모델 혜박은 하루 평균 11시간의 잠을 잔다고 한다. 그는 저서 `시애틀 심플 라이프`에서 요즘 같은 세상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기`란 사실상 불가능할지도 모른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그 역시 늘 휴식을 꿈꾸지만 정작 혼자 있거나 아무것도 하지 않을 시간에는 습관처럼 스마트폰을 놓지 않게 된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의도적으로 스마트폰을 내려놓은 후 자기 전 30분간 수면에 좋은 음악을 듣는 등 일종의 `의식`을 치른다.


사실 잠을 자는 시간이야말로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있는 시간이며, 그 시간이야말로 내 몸과 머리, 마음이 모두 쉴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항상 달콤한 낮잠 시간이 주어지기를 꿈꿔 왔으면서도 정작 기회가 있을 때 마음껏 쉬지 못하는 나 자신을 위해 나 역시 의도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연습을 해보려고 한다. 그간 낮잠이라는 특권을 빼앗아간 주범은 그 누구도 아닌 `나`였다는 사실에 반성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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