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라이프 도전자뿐 아니라 깔끔한 집을 꿈꾸는 모든이들이 '사라졌으면 하는 것'은 잡동사니들일 터다. 용도와 위치를 특정하기 어려운 이 물건들만 정리해도 한층 깔끔해질 텐데, 사실 말은 쉽지만 이들을 모두 집에서 몰아내기는 참 힘들다.
미니멀라이프와 관련된 꽤 많은 책을 읽었지만 책 속 고수들의 조언은 정말 단순하면서도 이상적이다. '소유한 물건은 다 사용한다는 원칙을 세워라.' '모든 물건에 자리를 정해줘라.' '조금이라도 먼지가 쌓인 물건은 필요 없는 것이다.' 나도 너무나 그렇게 하고 싶지만 모든 물건에 자리를 정해주기란 몹시도 어렵다. 자리를 정하지 않았다고 해서 버려야 하는 물건도 아니고, 이런 애매한 상황 속에 갈 곳 잃은 물건들은 또 쌓여만 간다. 아 정말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꽤 많은 것들을 비우지만 또 그만큼 많은 것들을 즐겁게 쇼핑하곤 하는 나에게도 잡동사니 정리는 참 풀리지 않는 숙제와도 같다. 잡동사니란 다른 잡동사니를 끌어모으는 성질이 있다. '일주일 안에 80퍼센트 버리는 기술'에서 저자는 아무것도 놓여 있지 않은 책상 위나 반짝반짝 빛나는 싱크대, 이런 깨끗한 장소에 달랑 하나만 뭔가가 놓여도 그 주위로 계속 물건이 모여든다고 말한다. 실제로 그렇다. 한두 개가 올라가기 시작하면 끝도 없이 물건이 올라가고 만다. 이 정도면 마법이라고 불릴 만도 하다.
캐런 킹스턴은 '아무것도 못 버리는 사람'이라는 저서에서 잡동사니에 대해 정의했다. 쓰지 않거나 좋아하지 않는 물건들, 조잡하거나 정리되지 않는 물건들, 좁은 장소에 넘쳐흐르는 물건들, 끝내지 못한 모든 것은 '잡동사니'이며 이들은 자연히 정리 대상이다.
그렇다면 다시 이런 잡동사니를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캐런 킹스턴은 의외의 답을 내놓는다. 잡동사니 서랍을 하나 정도 마련하라는 것이다. 여러 서랍 중 하나를 잡동사니 서랍으로 정해두고, 필요할 때마다 물건을 던져 넣으라는 게 그의 조언이다. 그는 잡동사니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그렇다고 강박적일 정도로 완벽해질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킹스턴은 "바쁜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때로는 아무 서랍이나 열고서 쓸모없는 물건들을 휙휙 던져 넣는 가벼운 위안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그의 말에 나 역시 위안을 받았다. 다만 그의 위안에는 세 가지 법칙도 따른다. 작은 서랍을 선택하고, 부족한 듯 사용하는 게 좋으며, 정기적으로 정리해줘야 한다는 것!
미니멀라이프 수납법이라는 책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일단 '카오스 박스'를 만들어두고 애매한 잡동사니를 모아둔 뒤 천천히 판단하라는 것이다. 상자가 꽉 차고 나면 그 후에 필요 없는 물건부터 처분하면 된다.
우리집에 '잠시 왔다 가는' 물건들을 위한 공간도 따로 마련해주면 한결 마음이 편해진다. 가령 시댁과 친정에서 보내준 음식을 담았던 반찬통 같은 물건들 말이다. 언젠가는 다시 돌려드려야 할 물건이라고 자리를 정해놓지 않으면 이들의 존재감으로 인해 주방이 복잡해진다. 차라리 주방이 아닌 다른 곳에 작은 상자를 마련해놓고, 그곳에 모아두는 게 '일시적인 잡동사니'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이 늘 강조하는 점은 수납 상자들을 '최후의 수단'으로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것도 없는 방에 살고 싶다'는 책에서 정리전문가인 구라다 마키코는 수납 상자가 블랙박스화되지 않도록 하라고 조언했다. 그는 상자 안에 물건을 수납함으로써 너무 많이 가진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현상을 수납의 블랙박스화라고 불렀다. 수납 상자를 쓰면 처음에는 물건을 구분해서 정리하다가도 결국은 안에 적당한 물건을 쑤셔넣고 만다. 그런데도 뚜껑만 닫아두면 겉으로는 깔끔하게 보이기 때문에 안에 든 물건의 존재감을 잊게 된다. 이렇듯 수납 상자는 편하지만 그만큼 위험하다. 자신이 소중히 다룰 수 있는 물건의 적당량을 확인해서 모두 처분 한 후에 마지막으로 수납 상자를 사용하라는 게 그의 팁이다.
언제쯤 잡동사니가 모두 사라지게 될까. 잡동사니 상자를 채우고 비우는 일을 반복하다 보면 언젠가는 조금씩 줄어 있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시간이 또다시 흐르다 보면 잡동사니가 될 물건들을 더 이상 집에 들이지 않는 안목도 생기지 않을까. 그런 날이 오기를 기다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