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 돌아 재입사]
네가 있는 세상에는 어찌 된 게 ‘돼.’보다 ‘안 돼.’가 더 많다.
언니, 그러면 안 돼.
“언니를 경력직으로 뽑은 이유가 있겠지. 면접도 안 보고 바로 채용됐다는 건, 그만큼 언니가 해내야 할 몫이 있다는 거지.”
너는 가족들의 뼈 때리는 말을 들으며 ‘내가 이걸 왜 해야 해?’라고 입술을 삐죽 내밀었던 순간을 도로 깊숙이 집어넣었다. 새로 온 강사들을 위해 '네가 전체 체험을 강의하듯 다 보여 줘야 할 것 같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너'라는 자는 너무나 이 상황이 부담스러웠다. 너에겐 구멍이 절실했다. 쥐구멍이든 지옥에 난 구멍이든 우선 숨어들고 싶었다. 긴장과 압박과 부담감 속에서 또 한 번 그렇게 도망치고 싶었다.(역시 넌 뒤로 도망치기 선수다.)
게다가 코로나라 모든 것이 뒤바뀌었다. 예전과 같은 패턴으로 일하면 될 줄 알았다. 쉽게 말해 넌,
날로 먹으려 했다.
하던 대로 하면 될 줄 알았다. 그러나 날로 먹으려 한 이 재입사자는 된통 뒤통수를 두드려 맞았다. 이제 아이들의 영롱한 눈빛 말고 카메라의 눈(렌즈)을 보고 수업을 해야 한단다. 자기 얼굴 보기도 민망해서 셀카도 잘 안 찍으려는 네가 카메라 앞에서 즐거운 척, 예쁜 척을 해야 한다니... 나라도 사지가 오글거릴 일이었다.
재입사를 하였지만 같은 일이 결코 같지 아니하였다. 일도 사람도 모두 달랐다. 코로나로 아이들이 체험을 오지 않으니 오프라인 체험이 온라인 원격 수업으로 바뀌었다. 처음에는 어린이들이 아닌 어른들 앞에서 ‘강의하는 척’을 하며 몇 번에 걸쳐 강의 시연을 해야 했다. 경력직은 너뿐이어서 다들 네가 ‘했던 대로’ 그저 물 흐르듯 잘 해내 주길 바랐다.
하지만 그 ‘물’은 벌써 2년 전에 흐르던 물이었다. 이미 어디로 흘러 나갔는지 너조차도 모른다. 네 안에서 그 종적을 도대체 찾을 수가 없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해 봤던 사람’이라는 이유로 네에게 더 많은 것, 그리고 더 높은 것을 요구했다(라고 당시의 너는 생각했다.)
그러나 해야 할 일은 해야 했고, 그 일은 너밖에 못 하는 일이었다, 당시로서는 말이다.
게다가 인간관계 때문에 한 번 접었던 일이었기에 뭐든 조심스러웠다. 두 번째 다가온 이 기회에서는 그 부분이 특히 신경 쓰였다. 넌 가까스로 세상을 향해 펼쳤던 마음을 또다시 본능적으로 움츠려야만 했다. 말을 너무 많이 하면 훗날 네 입이 가로막히는 사태가 터지고, 말을 너무 안 하면 훗날 뒤통수를 '씨게' 맞는다는 것을 지난 2년간 넌 뼈저리게 깨달았다. 정말 많은 것을 내보였고 어느 정도 친해졌다고도 생각했던 사람과 한순간에 등을 돌려야 했던 지난 시간이, 네 머릿속에 마구 떠올랐다. 이미 너는 사람을 믿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너무 진지하게 하지 않아도 좋지 않을까요? 지난주에 주신 자료들 보니까 재밌는 것도 많던데 코믹하게 가도 좋을 것 같아요.”
체험관 소개 영상을 ‘진지충’으로, 그것도 꽤 어설프게 찍고 있는 네 모습을 보고는, 새로 온 강사님이 너에게 조언을 해 준다. 만난 지 두 번 만에 듣는 충고. 틀린 말은 아니다. 너도 수긍했다. 하지만 넌 ‘진지하게밖에 안 되더라.’고 답변했다.
그리고 돌아서서 집에 오는 길, 가만히 생각해 보니 조언은 경력직이 신입에게 해 주어야 할 말인데 또 이렇게 반대로 살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어딜 가서든 주도적이지 못한 병이 다시 도지는 건가? 새로운 직장에 와서도 매우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는 것을 보니, 이 사람도 너와는 꽤 다른 결의 사람이구나 싶은데 과연 그와 친해질 수 있을까, 아니 친해지지 않아도 된다면 좋겠다, 등등의 생각으로 너는 머리가 복잡하다.
“이리저리 끌려다니지 말고 언니가 잘 이끌어야지. 언니는 어쨌든 사람들이 기대하는, ‘이미 박힌 돌’인 거잖아.”
줏대가 없는 너를 두고 ‘그러면 안 돼’라고 동생이 또 충고를 해 준다. 그 말을 듣는 네 마음이 또 까끌까끌하다.
어찌 된 일인지 이놈의 세상에서는 '그러면 안 되는' 일도 ‘안 그러면 안 되는’ 일도 차고 넘친다. 일의 중심도 관계의 중심도 잘 잡지 못하며 살아온 터라, 사람들은 너에게 조언과 지적과 잔소리가 달린 일침들을 많이 전해 주는 편이다. 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일침들이건만 그 침들에 이리 휘청 저리 휘청 찔리다 보면, 어느새 너는 네 안에 상처가 난 줄도 모른 채 갈 길을 잃곤 했다.
‘이게 맞나, 저게 맞나, 아니 이도 저도 안 맞나?’
그래도 너를 아끼는 사람들이 던진 ‘안 돼.’였다면 너는 그들의 ‘안 돼.’를 우선 들어야 한다.
그게 지금으로서는 정답 같다.
재입사 도전에 정답 같은 것이 있을 리야 없겠지만,
일단은 몸을 낮추고 네 가족의 세 치 혀를 한번 믿어 보길 권한다.
달콤함은 언젠가 너를 녹여 없애 버리겠지만,
뾰족함은 결국 너를 꼿꼿하게 다시 세워 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