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 돌아 재입사]
"이제 와서 묻는 거지만……."
닭볶음탕이 붉고 매캐한 향기를 피워 올리고 곁들이 메뉴로 시킨 달걀말이 볶음밥이 내 군침을 돋우는 동그란 탁자 앞이다. 사람들은 나를 포함 네 명. 새로 온 과장님이 퇴사자인 조 과장님을 불렀고, 앞으로 나와 같이 이 일을 하게 될 운영인력 선생님까지, 이렇게 네 사람이 한자리에 모여 앉았다.
나는 지금 학생들이 아닌 어른들 앞에서 억지로 강의 시연을 한 후 잠시 숨을 돌리며 이 회식 자리에 왔다. 난데없이 그해에 내 몸을 가지고 '채식 생체 실험'을 하던 터라 6개월째 고기에 손도 안 대고 있었는데, 오랜만에 영접하는 치느님의 자태를 보니, 나도 모르게 마음이 흔들렸다. 그렇게 음식에 몰입해 딴생각을 하던 중이었는데,
누가 내 과거를 갑자기 들춘다, 그것도 다소 적나라하게.
“쌤, 혹시 퇴사하고서 그 M 선생님이랑 연락하세요?”
“네? 아, 네. 아니요."
"한 번도 연락 안 하셨어요?"
"네. 한 번도요.”
“혹시 그 선생님이랑 좀 안 좋으셨어요?”
내게 이 이야기를 묻는 분은 다름 아닌 조 과장님. 내게 ‘재입사 메일’을 건네신 분이다. 아니 지금은 퇴사한 과장님, 그리고 내가 이 직장을 다닐 때 용역업체에서 우리 업무를 담당해 주던 과장님이기도 하다. 함께 일한 시간은 반년이 채 되지 않은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내가 내 동료와 갈등의 골을 깊이 파고 있을 때는 이미 우리 업무에서 멀어지신 후였다. 그녀와 나의 일을 알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분이 우리 업무에서 배제된 한참 뒤에야 나는 그녀와 진흙탕에 빠졌었고, 6개월 뒤 나는 퇴사를 했으니 말이다.
“아, 어떻게 아셨어요?”
“이사님이 분위기가 좀 그런 것 같다고 하시더라고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속으로 끙끙 앓아도 퇴사의 냄새가 주변에 묘하게 퍼진다는 것을 그땐 몰랐다. 표정은 어두웠고 말수는 줄었고 그렇게나 다정히 웃어대던 동료와는 그 후로 단 1초의 순간도 함께 웃지 않았다. 억지로 나란히 앉아 있어야 했던 회의 시간에도 그녀와 나는 남이었고 남보다 못한 사이였다. 어쩌면 눈치를 채지 못하는 사람이 더 이상한 것일 수도 있었다.
“네. 그냥 안 좋았어요. 아무래도 제가 그 선생님 눈에는 부족했겠죠. 그 선생님은 그 기관에서 7년 가까이 있었고 업무도 저보다는 훨씬 더 잘 알고 있었으니까.”
“아이, 선생님!"
"네?"
"선생님, 그렇게 말씀하지 마세요.”
(why요?)
과장님은 대뜸 나 보고 그만하란다. 착한 소리 그만하라는 뜻이었을까. 1년도 더 지난 일을 들추어 그녀를 욕하면서 나 자신을 욕되게 할 생각 같은 건 없었다. 나는 또다시,
“제가 부족했죠, 뭐. 지금 다시 이렇게 이 일을 시작하고 보니, 그 선생님이 갑자기 이해가 좀 되긴 하더라고요. 그 쌤이 보기에 내가 얼마나 답답했을까. 그 사람은 혼자서만 많은 걸 알고 있었으니까요.”
“쌤....”
“네?”
성인군자 같은 소리 그만하고요.
이제는 말할 수 있잖아요, 여기서 다 풀어 버려요.
“네? 뭘?"
"에이~"
"이젠 기억도 안 나는걸요. 아핳핳.”
풀 이야기야 많지만 이미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해 버린다. 이 발언은 진심이면서도 어쩌면 나의 진심이 아닐 수도 있다. 나는 성인도 군자도 될 수 없다. 그저 누군가를 미워했던 소인배이다. 나는 그녀를 잊지 않았고 그녀가 내게 던진 모욕도 아직 다 내다 버리지 못했다. 다 지나간 모욕도 종종 끄집어내어 주머니에 꽁꽁 넣어 다니는, 나의 이 랜덤 기억력을 탓해 볼 뿐이다.
“그 뒤로 그 M선생님도 관두셨죠?”
“네. 저 관두고 이틀 뒤에 갑자기 관뒀어요. 새로 입찰한 용역업체와 뭐가 잘 안 맞았는지 갑자기 관두셨다고 들었어요. 저도 갑자기 관뒀지만 그 선생님은 더 갑자기…….”
“아, 쌤~~~~~!!!!”
“네?”
또 한 번 호흡을 고른 뒤, 평소 그 나름 '진지충'이셨던 그 과장님이 내게 말씀하신다.
"선생님, 그렇게 말씀하지 마시고.. 그냥요."
"그냥?"
쌤, 그냥 쌤통이라고 해요, 쌤통!
무슨……통요? 쌤통? 아앗...!
아, 맞다. 세상에는 그런 ‘통’도 있었지.
그간 ‘퇴사’는 나에게 그냥 '아플 통(痛)'이기만 했는데 이런 통도 있었구나. 왜 진작 그걸 몰랐지? 나도 한 번쯤은 ‘쌤통이다!’라고 웃어 젖혀 봐도 좋았을 텐데 그 방법을 몰랐다. 나는 환송 인사도 받았고 작별의 유예 기간도 한 달이나 누렸다. 내게는 퇴사의 문을 천천히 닫을 시간이 충분히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하루 이틀 만에 갑자기 종적을 감췄다. 그 기관에 오래 공들인 정성과는 사뭇 다른 뒷모습이었다.
함께 있던 다른 분들도 ‘쌤통’ 발언에 다 같이 웃는다. 나도 덩달아 미소를 짓는다. 이렇게 남 없는 자리에서 남 이야기하는 것을 안 좋아하는 척하며 살았는데, 라고 속으로는 말하면서도, 입가가 웃고 눈가가 슬며시 올라간다. (초등학교 때 동생과 열렬히 싸울 때면 동생은 ‘이 이중인격자야.’라는 말을 내게 다정히 건네곤 했는데, 아마도 내 동생의 예언은 이런 상황에 꼭 들어맞는 표현인 것 같다.)
“그때 선생님이 다시 직장에 돌아왔다고 인사드릴 때 다른 선생님들 보고 알았어요. 엄청 선생님을 반기시더라고요. 선생님이 환영받는 그런 분이시구나.”
그때 옆에 있던 다른 선생님이 몇 달 전의 장면들을 소환하신다.
몇 달 전으로 거슬러가 보자면,
"선생님들, 봄먼지 쌤 다시 오셨어요!"
"어, 선생님, 다시 오신 거예요? 환영해용."
"오, 그럼 수업 있을 때만 오시는 거예요?"
"쌤, 쌤이 쓰시던 책상 지금 비어 있어요. 두 개 중에 좋은 자리로 어서 찜콩해요. 흐흐."
"오, 다시 돌아온 거예요? 잘 왔어~"
같은 교육땡땡과 직원분들과 방호 경비 선생님, 특히 대화를 많이 나눴던 1층의 청소 담당 선생님까지. 늘 말수 하나 없이 살아서 존재감도 없었는데 좋으신 분들이라 그런지 나를 웃으며 반겨 주셨다. 그런데 그때 그 이야기를 나만 알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옆에 앉아 있던 선생님께서 나 대신 내 이야기를 해 주신다.
"다른 선생님들한테서 그게 느껴지더라고요. 선생님을 환영하신다는 걸."
겨우 두 번째 만나는 인연일 뿐인 다른 운영인력 선생님께서 뜻하지 않은 고백(?)으로 나의 마음을 흔들어 놓으신다. ‘쌤통’ 발언으로 세차게 흔들리던 나는, ‘환영받는 사람’이라는 소리에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짓는다. 단단히 세워 놨던 ‘나는 못났다’ 방어벽까지 정체성의 혼란을 겪으며 스르르 무너지려 한다.
물론 환영받지 아니한다고 해서 '나'라는 사람이 내가 아닌 것은 결코 아니다. 지금껏 '미환영' 혹은 '비환영'이, 세상이 나를 대하는 방식이었다. (물론 '푸대접'보다는 당연히 대접 한 그릇이 더 좋긴 하다...)
누군가는 나에게 쌤통이었고, 나도 누군가에게는 쌤통이었을 것이다. 서로 번갈아 쌤통이 되었던 우리의 지난 퇴사들이 이제는 이렇게 안줏거리, 혹은 비하인드 스토리로만 남아 우리의 사소한 시간들을 채우거나, 혹은 때운다.
절실했던 퇴사가 망설이는 재입사로 이어지던 어느 날,
나는 나의 '쌤통'이 된 M을 생각하며 집으로 향한다. 그녀의 쌤통이었던 나는 이제 별일 없이 산다. 아주 별일이 없다, 너와 있던 때에 비하면 심히 무난할 정도로...
그런데 나의 쌤통, 너도
어딘가에서 별 쌤통 없이 잘 지내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