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 돌아 재입사]
재입사는 그녀와의 과거 속으로 입사하는 일과도 같았다. 대패한 전쟁터에 다시 돌아가 적군이 남긴 승리의 향기를 억지로 들이켜야 하는 심정이었다.
사실, 나는..
재입사를 하면서 그녀-나와 큰 갈등이 있었던 그녀-를 이해하게 될 것 같아 더 난감했다. 모욕을 준 것은 그녀인데 왜 나만 여기 남아 그녀를 이해해야 하는가. 그녀가 했던 역할, 그녀가 이 일을 바라보던 시선을 내가 왜 답습해야만 하는가. 나는 고만 불만이 생겨 버렸다. 그녀의 위치에서 이 일을 다시금 통찰하도록 누가 나를 이리 조정하고 있는가.
알고 싶지도 않은 그 당시 그녀의 심정을 살펴보도록 내 옆구리를, 누군가가 찔러댄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이해하고 싶지 않은 대상이다.
그녀는,
"선생님이 알아서 하세요."
라고 말하며 휴가를 떠나 버렸다. (나는 그녀의 휴가 날짜에 학교 단체 수업을 잡아 버렸고 능력 부족이었는지 나 혼자 주도한 그 수업은 '폭망'해 버리고 말았다.)
"그래도 휴가 일정은 미리 말씀해 주시면 좋겠어요."
내가 쥐어짜 낸 용기로 이렇게 말하자, 그녀도 찔렸는지 잠시 동공이 흔들렸지만, 그녀는 동공 지진을 얼른 추스른 후 언제 그랬냐는 듯 정색을 하고는,
"저, 말했어요."
라고 말한다.
"언제요?"
"지난번 회식 때요."
그 회식에 나는 없었잖아, 이 양반아.
(사실 이 '회식' 사건이, 그녀와 틀어진 결정적 계기였다. 회식에 얽힌 사건은 지난 내 독립출판물, '돌고 돌아 퇴사일기'에 자세히 나와 있다. 일터를 옮기는 사무관님 회식이었는데, 내가 그 회식에 가지 않겠다고 했다가 그녀의 '승질'을 돋웠다. 당시 난 한창 쌍둥이 조카 육아에 신나게 빠져 있었다. 아무도 그런 내 상황을 이해하려 들지 않았겠지만.)
아무튼 그 밖에, 내가 생각해도 참 황당한 짓을, 나도 좀 하긴 했었다. 갑자기 잡힌 회식 자리들에 "전 안 가요."라는 한마디로 빠져 버리기도 했고, 일한 지 1년이 넘었는데도 "이건 어떻게 할까요?"라고 끊임없이 질문하고 확인받고자 하는 미숙함도 잊지 않았다.
그런 식으로 차차 조금씩...
M선생에게 '그녀'였던 '나'는 점점,
'그년'이 되어 가고 있었다.
그 순간들이 차곡차곡 마일리지처럼 적립되다가 어느새 그녀도 폭발해 버렸을 것이다.
우리의 관계를 눈치챈 어느 연구사 선생님이 "봄먼지 쌤(나) 괴롭히지 마요."라는 말을 그녀에게 해 버려서 당혹스러웠을 때도, M선생에게 나는 극도로 짜증 나는 '그년'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그렇지.
뒤늦게 자꾸 그녀의 위치에서 그녀 감정의 잔해를 파헤쳐 보게 하는 거, 대체 누구냐고.. 나만 힘든 거 아니고 그녀도 힘들었을 거라고 자꾸 내 뒤에 대고 말하는 자, 누구냐.
예전에 내가 퇴사일기를 썼을 때, 거기에 나는 이런 말을 했었다.
<나는 떠나고 너 혼자 이 무대에 남아 있겠지, 잘해 봐라, 안녕.>
그러나 내가 완전히 틀렸다.
너는 떠났고 나 혼자 이 무대에 남았다. 꾸역꾸역 여기 남아 잘해 봐야 할 사람은 외려 내 쪽이었다. 그리고 나는 잘해 보기 싫어 안간힘을 쓰며 억지로 억지로,
재입사를 뱉은 지난 2월의 나를 역추적 중이다.
(아오, 왜 재입사한다고 했어? 그때의 나, 잡히기만 해 봐라. 아주 그냥...!)
아무튼 나는 그녀에게 단 한순간에 '그년'이 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화가 나 있는 그녀에게 나는,
'선생님, 무슨 일이세요? 제가 뭐 기분 나쁘게 한 일 있나요?"라고 묻지도 않았고,
그대로 이 엉키고 뒤엎어진 관계의 비바람을 온몸에 맞아 버리기를 택했다.
그녀가 관계를 먼저 엎었다는 이유로, 그대로 우리 관계를 들춰 볼 생각도 안 하고, 어떤 기회조차 그녀에게 주지 않았다. (과연 그런 기회의 순간이 있었는지도 모르겠지만.) 그대로 모욕을 당하고 찍, 소리도 안 하고 그래 넌 그래라, 난 그냥 여기서 상처받고 서 있겠다.
그래,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그때 난 이런 식이었다. 매듭을 풀기보다 끊어 버렸다.
그녀 역시 조금은 섭섭하고 조금 많이 화가 났을 수도 있다.
착한 줄 알았더니 착하기'만' 하고, 아니 착한 '척'만 하다가, 결국 일은 제대로 안 하고 월급루팡 같은 '그년'이 되었던 '나.'
그렇게 나는 철저히 그녀에게 '그년'이 되었다.
그러나 그녀의 일기장에 언제까지나 나란 사람이,
별 희한한 '그년'으로 남는다 해도 이제는 나도 괜찮다.
살면서 한두 사람쯤에게 '그년'이 되는 것도 그리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다.
나에겐 참 색다른 경험이었지만 말이다.
-너의 '그년'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