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사정 리뷰

[돌고 돌아 재입사]

by 봄책장봄먼지

“그냥.. 뭐라고 해야 하나. 그냥 넌 너무 뭔가 생동감이 없어.”

이 말을 직장 동료에게서 들었다면 덜 충격적이었을 것이다.



“목소리도 너무 작고 웅얼거리는 것 같고……. 강조할 때는 명확하게 강조하면서 강약을 조절해야 하는데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이 말을, 우리 집 공식 비평가인 내 동생에게 들었다면,

‘쟤는 원래 인정사정없이 객관적으로 말하니까’ 하고 조금만 씁쓸해하고만 말았겠지만..



“그냥 똑같아. 애들이 뭔가 재밌게 들어야 할 텐데 좀 재미도 없고 졸릴 수도 있을 것 같고.”

라고 방금 말씀하신 이분은,


정말로 잠시 후에 내 강의 시연을 보면서 정말 고개가 뒤로 젖혀질 정도로 심히 졸고 계셨다.



“한마디로 좀 지루한 느낌이야.”


나와 갈등을 일으켰던 동료조차 지적하지 않았던 나의 교수법, 그리고 나의 말투 및 어조. 이분에게서는 찬바람 불 듯 냉정하고 혹독한 평가가 쉴 새 없이 이어진다.


“그리고 아까 네가 말한 내용 중에 속담 설명하는 부분, 그런데 그게 맞냐? 애들이 이해를 잘 할 수 없을 것 같은데? 좀 다르게 설명해야 하는 거 아닌가?”


이제는 교육 내용에까지 오지랖을 펼치며 내게 달려드시는 이분은, 바로…….


다름 아닌 나의 아버지다.



그냥 편하게 해 봐, 하던 대로 하면 되겠지,라고 우쭈쭈 해 주시는 엄마 옆에서 아버지는 나의 강의 연습을 요리조리 무뜯으신다. 그렇게까지 냉철할 필요는 없는데, 난 그냥 다른 강사들 앞에서 강의 시연을 하다가 떨까 봐, 또 나중에 실시간 온라인 수업을 실제로 하게 되면 심하게 긴장할까 봐 심리적인 부분만 연습하려고 가족들 앞에서 연습 한번 해 보겠다는 건데 이렇게까지 신랄할 필요가? 그럼에도 내가 붙들 수 있는 관객들은 그들뿐이었다.



"아부지, 엄니, 한 번만 더 해 볼게요."


그날도 시계는 밤 10시였다. 슬슬 내 부모님, 잠에 빠지실 시간이 가까워 오고 있었다. 그런데도 나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로지 내 생각만 했다. 나의 자문위원들은 본의 아니게 졸음고문을 당하셔야 했다.



가끔은 너무 괴롭힌 것 같아 죄송한 느낌이 들었다. 그럴 때면, 혼자서 북 치고 장구를 치며 강의를 연습해 봤다. 휴대폰을 앞에 두고 셀카로 동영상을 찍었다. 목소리와 동작이 그렇게 어색할 수가 없다. 기분이 눅눅했다. 퇴사 후 한 번도 꺼내 입지 않던 빛바래고 오래된 옷을 새 옷인 양 억지로 걸쳐 입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세상이 변하니 자연스럽게 나도 변해야 했다. 온라인 수업이라니... 상상도 못 했다. 다른 강사들을 뽑는 면접 자리에서 면접 위원으로 참석하신 국어과 교수님께서,

“지금 교수님들 난리 났대요. 온라인 수업은 준비가 안 된 상태인데 코로나 때문에 갑자기 온라인으로 다 전환해서 수업을 해야 하니.”


그때는 어이쿠 누군지 몰라도 그 교수님들 참 힘들겠다, 라고 생각하며 남 일로만 생각했다. 그때가 2020년 3월 말이었는데 지금은 6월 말이 되었고, 그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을 걱정하던 내가 바로 그 ‘누군가’에 합류하게 되었다. 내가 그 교수님들과 똑같은 고민거리로 골머리를 앓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졸지 마시고요."


오늘도 내 아버지는 내 강의 시연 5분 만에 꿈나라로 직행하셨고 엄마는 몸을 배배 꼬셨다. 똑같은 내용을 몇십 번째 듣고 계시다 보니 나보다 더 수업 내용을 더 잘 기억하실 판이었다. 그렇게 나의 강의 지옥이 무한대 루프를 타고 밤낮이고 그분들을, 그리고 나 스스로를 괴롭혔다.



"목소리가 늘 똑같아. 세게 말할 때는 세게 말해야 아이들이 알아듣지, 너는 뭐라고 말하는지 정확하게 안 들려."

또다시 칭찬 없이 폭주하는 냉철한 비판에,


“나 안 할래. 나 이거 관둔다고 할래,”


이런 뭐, 말도 안 되는 어린애 같은 소리나 부모님 앞에서 늘어놓는 하루하루가 늘어갔다. 이런 철없는 방식으로 나는 가족들을 뜨악하게 만들었다.



나와 맞지 않는 옷을 억지로 입으면서 성장과 푼돈의 명분 아래 내 인생을 엉뚱한 곳으로 흘려보내면서까지 벌어먹고 싶지는 않았다.(과분한 소리지만) ‘글’이라는 것 옆에 있고 싶고 ‘책’을 만드는 일 옆에서 곧고 깊은 길을 내고 싶었다. 하지만 ‘꿈’에 가까운 일을 하려면 주머니를 달콤하게 해 주는 일이 필요했고, 해 봤던 일이 나를 든든히 받쳐 줘야만 했다. 그래도 그렇지, 너무 쉽게 꿈 앞에서 '현실'만을 택했다. 덥석 재입사 제안을 꿀꺽 삼켜 버린 것이 못내 후회스러웠다.


억지로 억지로 연습을 하고 냉혹한 평가를 받고 다시 또 좌절하는 일상이 반복되었다. 총 110분의 강의를, 하루에도 예닐곱 번 반복했다. 목이 쉬어서 따끔거리기도 했고 마른기침이 잦아지기도 했다. 이러다 온라인 수업을 하기도 전에 목소리가 사라질지도 몰랐다.



그런데 과도한 연습으로 내 목소리가 사라지기 전에,

다행인지 불행인지 기어이 내 목소리를 세상에 공식적으로 들려줘야 하는 날이 오고야 말았다.




“선생님들. 드디어 온라인 수업이 잡혔습니다!”


느낌표 달린 운영인력 선생님의 단체방 문자.

그 앞에서 내 마음은 말줄임표가 끝도 없이 늘어갔다.


하아.. 수십 수백 번의 연습에도 불구하고, 결코 이 시간이 정녕 아니 오길 바랐는데... 과연 내가 이 일을 해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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