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 돌아 재입사]
래퍼 김하온을 좋아한다. 벌써 몇 년 전 영상인데도 아직 난 그의 싸이퍼 영상(힙합 용어, 함께 모여 래퍼들이나 비트박서들, 브레이크 댄서들이 격식에 얽매이지 않고, 음악적으로 즉흥적인 공연을 하는 모임)을 종종 들여다본다. 기가 막히다. 꿀벌 의상을 장착한 채 어수룩한 표정으로 명상을 설파하던 명상 래퍼, 김하온. 자기소개 당시 좌중의 폭소를 온몸으로 얻어맞던 그...
그러나 랩을 시작하자마자..
반전!!!
"안녕 날 소개하지! (...) 생이란 이 얼마나 허무하고 아름다운가. 우린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와.. 멋지다! 그렇게 한때 나는 멋있는 김하온을 동경했고(?) 그래서 그런지...
온라인 수업을 시작하자마자.. 정말 래퍼가 되었다!
문제는 김하온 씨 같은 래퍼가 아니라 내 본분(강사 직분)을 망각한 래퍼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
우다다다닫다다다다다다
아다다다다다다다
후다다다닥다다다닥
누가 쫓아왔나. 어디로 도망가려는 건가..
나는 온라인 첫 수업에서 아웃사이더(속사포래퍼, "상처를치료해줄사람어디없낫")를 보았다. 다름 아닌 나를 비추는 대형 화면 속에서.
내가 스스로 모니터하며 바라본 그 얼굴이 진정 나였다고 믿고 싶지 않다.
그 빠른 입이 나였다고도 믿고 싶지 않다.
(믿고 싶지 않다고 방금 몰아친 폭풍우가 없던 일이 되진 않겠지만..)
나, 온라인 첫 수업에서 말이 너무 빨랐다. 빨라진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다.
운영인력 선생님은 내가 말이 빨라질 때마다 오케스트라 지휘자처럼 카메라 뒤에서 섬세한 손가락으로 지휘를 해 주셨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안정을 되찾으며 평소보다 2.5배 정도 느리게 말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지휘자의 손가락이 방심하는 사이, 다시금 나는 어떤 쉴 틈도 주지 않고 또다시 다다다다다 모터를 달고 수업을 이어 갔다. 이 비극의 서막은...
"온라인 첫 수업은 봄먼지 쌤이 시작해 주세요."
(봄먼지 쌤은 곧 '나'다.)
이렇게 요구하신 연구관님은 아마 오늘, 그 믿는 도끼를 버리고만 싶으셨을 것이다. 아직 그분의 발등은 퉁퉁 부어 있겠지.
"여러분 안녕하세요. 여기는 **이고요, 저는 **강사 김**입니다."
여기까지는 좋았는데,
"여러분, 속담은 언제 유행하던 말일까요?"
그래 그래, 여기까지도 좋았는데..
15분 동안 16개의 속담을 다 하려고 욕심을 내는 바람에,
여기남자분이어쩌고하니까여자분이저쩌고그래서어어이그림이나타내는속담은뭘까요.여러분이친구한테너어제참노래못하더라그랬는데응그래고마워상대방이이렇게이야기해줄까요.말은메아리와도같아서어쩌고저쩌고가는말고와야그렇지맞았쎄여글구다다다다다다다
망했다. 철저히...
아무도 내 첫 수업에 피드백을 주지 않았다. 그들은 나보다도 더 당황한 듯 보였다.(저기요, 잠깐만.. 당신이 정말 경력자???) 물론, 한편으로는 내가 잘한 일도 하나쯤은 있다.
다른 강사님들은 그런 나를 지켜봄으로써,,
아, 저렇게는 하지 말아야지.
본의 아니게 나는 귀한 본보기가 되었다.
나의 귀감 사례는 온라인 수업 역사에 오래 남을 것만 같다.
"제가 오늘 좀 래퍼 같았죠? 아핳항"
자학 개그로 다른 강사님들께 웃음을 드렸다. 그분들도 인정의 미소로 난감한 동의를 표하셨다.
-입에 모터 달았냐?
-숨 좀 쉬면서 이야기해.
살면서 이런 말 많이 들었다. 사실 엄청 얌전해 보인다는 말을 들으며 자랐는데 그런 애가 (입을 잘 열지 않아서 그렇지) 입만 열었다 하면 말이 엄청 빨라서 사람들이 흠칫 놀랐다. 저렇게 할 말 많고 말도 빠른 애가 어떻게 온종일 수업받으면서 한마디도 안 한겨?
문제는.. 긴장을 하거나 전달할 이야기가 많다고 생각할 때면 말이 더 더 빨라진다는 점.
아하, 이제 알겠다. 그 숱한 애들이 왜 내 말을 못 알아들었었는지..
초등학교 학습부진강사 때도, 청소년들과 함께한 복지관 방과후교실에서도, 재입사 전 오프라인 수업에서도, 아이들은 내 말이 너무 빠른 데다 웅얼거리기까지 해서 알아듣기 어려웠던 것이다!
이제야 실제 오프라인 수업 때 애들이 '뭐라고요?'라는 표정을 지었던 이유를 알았다. 내 발음이 좀 웅얼웅얼 뭉개질 때가 많고 내 목소리가 단조로우며 말까지 너무 빨라서 이해와 습득이 결코 쉽지 않았다는 사실을..
이 사실을 재입사 후 처음 깨달았다!
안 그랬으면 평생 몰랐을 사실이다. (이거, 기뻐해야 하는 건가?) 암튼 그때 그 아이들의 표정을 지금에 와서야 이해한다. 어떤 사실은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려야 진실이 밝혀지나 보다.
아무튼.. 나는 오늘 강사계에 길이길이 남을 명장면을 찍었다. (하필 첫 온라인 수업이라 시범으로 영상까지 찍었다. 내 외장하드에까지 래퍼 봄먼지의 기록이 고스란히 남았다. 래퍼 김하온이 생각날 때면 래퍼 봄먼지를 가끔 들여다봐야겠다...)
정말이지,,
"이런 래퍼 또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