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공부 못하는 애들이...

[돌고 돌아 재입사]

by 봄책장봄먼지

꼭 공부 못하는 애들(?)이 가방도 무겁게 가지고 다니고, 학교에도 일찍 가 있곤 한다. 그리고 그 애들 가운데 한 명이 바로 나다. 나는 어릴 때부터 키가 참 작았고 지금도 작다. 그런데도 항상 한 짐 두 짐 이고 지고 다녔다. 그래서 더 키가 안 큰 거라고, 우리 부모님은, 아니 우리 부모님'만' 철석같이 믿고 계신다.



"벌써 오셨어요?"


요즘 재입사 일터에서 종종 듣는 말이다. 수업을 준비하고 세팅하는 운영인력 선생님이나 카메라 감독님보다도 내가 늘 먼저 도착하는 편이다. 집에서 3시간 전에 출발하면 1시간 전에 일터에 도착한다. 다들 차가 있어서인지 통근 시간이 짧다는데 나는 차가 없어서인지 집이 멀어서인지 오랜 시간이 걸려야 일터에 도착한다. 도착해서 숨을 돌리고 화장실도 다녀오고 따뜻한 물도 마신다. 마음의 준비, 몸의 준비를 하는 데 거의 30~40분을 쏟은 후 본격적으로 수업을 준비한다. 뭐든 오래 걸리고 느리게 행하는 타입이다.


예전의 그 M선생은 모든 능력을 갖추고도 딱 하나 갖추지 않은 재능(?)이 하나 있었는데, 그건 바로 회사에 빨리 오는 재능이었다. 사실 9시 땡, 하고 오는 게 뭐 잘못된 일은 아니다. 누구나 9시 정각에만 맞게 오면 된다. 그러나 그녀가 가끔 9시를 넘겨 몇 분씩 늦을 때면 나는 1층에서 몰래 그녀의 가방을 받아다가 창고에 숨겨 주곤 했다. 어느 날은 체험이 9시 30분에 시작하는데 25분에 그녀가 도착한 적도 있다. 나나 그녀에게는 1층 체험관이라는 또 다른 통로가 있었으므로 그녀의 지각은 우리 사이에서 공공연한 비밀이 되었고, 우리가 근무하던 4층 사무실에서는 이 비밀을 눈치채지 못했다.

좀스러운 말이지만, 그런 그녀와 달리 내가 그나마 (그녀보다) 잘하는 일이라곤 '시간 맞추어 일찍 오는 일'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재입사 후에도, 제 버릇 남을 못 주고...



-선생님, 안녕하세요. 선생님께 죄송한 말씀 좀 드리려고요.

-아, 네네. 말씀하세요.

-그날 1교시 수업 좀 맡아 주세요. 9시에 시작하는 수업이에요.

처음 온라인 수업을 시작할 땐 1교시를 '10시 시작'으로 하자고 했었지만, 어디 세상이 '처음 정한 대로' 되는 법이 있던가. 학교 사정도 있고 하니 자연스럽게 수업 시간표는 유동적으로 흐른다.


-아, 네네. 알겠습니다.

흔쾌히 말은 했지만, 저기 혹시 제가 1교시에 낙첨(?)된 이유라도 있나여? 제가 알기로는 집이 제가 가장 먼데 하하하... 이렇게 물어보고 싶었다. 그런데 운영인력 선생님께서 나의 궁금증을 눈치챘는지 바로 답을 해 주신다.


-선생님, 그거 모르시죠?

-네?

-아니, 전에 다른 선생님이 수업에 좀 많이 늦으셔 가지고.. 암튼 뭐, 그런 일이 좀 있었어요.

-아... 그런 일이 있으셨구나.

-또 다른 선생님은 아기들 맡기고 수업 오려면 좀 바쁘니까, 선생님한테 부탁드릴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아, 네. 알겠습니다. 그럼 그날 1교시는 제가 할게요.

-2교시부터는 다른 강사님들이 할 거니까 그날은 1교시만 해 주시고 바로 집에 가시면 돼요!

-넵. 알겠습니다.



'안전빵'을 아는가? 먹는 빵 말고.. 나는, 그러니까, 필요할 때 써먹는 여분의 스페어 강사 같은, 도전이나 모험보다 안전하게 기본만 하자, 싶을 때 꺼내 놓는 여분의 카드 같은 강사인 것이다. 그 선생님이 말씀하신 그날은 35분짜리 수업들이 5교시까지 있는 날이다. 그날은 35분을 수업 단 한 개를 채우기 위해 머나먼 서울 나들이를 떠나야 한다. 벌써부터 몸이 피곤한 느낌이다. 9시 수업 시작이면 나는 8시까지는 도착해야 직성이 풀릴 테고 그럼, 집에서 6시에는 나서야 한다. (한겨울인데 말이다.)



"쯧쯧. 그러니 평소에 적당히 일찍 갔어야지. 넘 일찍 오니까 찍힌(?) 거지."

동생이 나의 성실이 '불찰'이었음을 살포시 알려 준다.


그래도 이거라도 있어서 다행인가, 싶기도 하다. 재입사 일터에 이런 나의 불찰들(성실들)이 도움이 된다니 다행이다. 요즘 돌아가는 꼴(?)을 보아 하니, 경력자로서 어디 하나 도움 되는 게 없는 것 같았는데 그나마 책임감은 있어서 수업 연기나 펑크 같은 생방송 사고는 막을 수 있을 것 같다. '잘하는 법'을 몰라서 늘 이렇게 꾸역꾸역 '열심히만' 산다.



"오, 선생님, 오늘 일찍 와 주셔서 너무너무 감사드려요."

이 한마디를 들으려고 일찍 일어나서 무거운 짐 싸 들고 출근한 건 결코 아니지만 그래도 어쩐지 운영인력 선생님의 '고맙다'는 인사를 들으니 기분은 좋다. '땡큐'는 언제 들어도 안 질리는 말인가 보다. 앞으로도, 능력은 없더라도 웬만하면, 쭉 고마운 사람이면 좋겠는데... 가능할까?


이것도 혹 욕심일까?

(꼭 공부 못하는 사람들이 욕심만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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