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나는 결국 여기까지구나.
돌고 돌아 들어간 곳에서 환대를 받으며 신호탄을 쏘아 올렸지만, 결국 그 신호탄은 쏘아 올리자마자 오발탄이 된 듯하다.
“5개 반 전체 체험을 신청하신 ◯◯초 선생님께서 체험 끝나는 시간이 너무 늦다고 3교시로 줄여서 해 달라셔요. 여러 반이 합반해서 수업을 들으실 건가 봐요. 그래서 선생님께 양해 좀 구하려고요.”
“아, 네, 네.”
“신청하신 선생님께서 한 선생님으로만 수업을 해 주시길 원하셔서요.”
“아, 네.”
부탁의 말씀이 아니라 양해의 말씀이기 때문에 감이 왔다. 나는 그날 두 번의 수업을 하기로 했었고 내 시간은 35분 곱하기 2였다. 세 강사가 다섯 반을 돌아가며 수업하기로 했고 강사 두 명은 두 반씩, 그리고 나머지 다른 강사 한 명이 한 반을 맡기로 했다. 일단 수업 일정표 배정은 그러했다.
“그래서 ◯ 선생님께 그 수업을 부탁드리려고요.”
◯ 선생님은 물론 내가 아니다. 한 선생님만 수업을 해야 한다면 그게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라는 사실에, 처음에는 순간 안도했다. 뭐든 자신 없는 사람이었기에 부담을 어깨에 메고 일하고 싶진 않았다. 그러면서도 통화가 끊어지는 전화기 화면을 멍하니 쳐다보다 문득 깨달았다. 세 강사 가운데 꼭 하나여야 한다면,
그게 결코 나라는 사람은 아니라는 소리구나.
처음 이 체험관의 수업을 어떻게 진행해야 할지 모를 때는 누구보다도 내가 필요했다. 경력자는 나뿐이었고 심지어 사업 담당자도 상황을 파악하기 이전이었다. 애석하게도 그 일에 관해 잘 아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천군만마 취급을 당하던 내가, 이제는 어느 재입사 하천의 오리 알쯤으로 둔갑하려는 중이다. 나는 지금 어디로 흘러왔을까. 낙동강 하구쯤으로 내려온 걸까. 거기서 몇 갈래의 길로 나뉘는 걸까. 아니, 그다음 길이 있긴 있을까.
지금 나는 뜻밖의 자유시간을 얻는다. 물론 자유 시간이 주어진 만큼 수업 시간당 주어지던 돈은 서둘러 내게서 어물쩍 물러날 것이다. 어쩐지 그동안 나의 재입사 세상이 너무 순조롭다 했다. 나에게 세상이 이렇게 호의적일 리가 없지.
돌고 돌아 퇴사를 하고, 돌고 돌아 재입사를 하면서 깨달은 것은 한쪽 문이 닫히면 다른 쪽 문도 굳게 닫힌다는 사실이다. 어느 누구도 문틈 새에 낀 내 손을 애써 당겨 주지 않는다. 그게 이 세계가 내게 가르쳐 주는 혹한의 충고다.
사실 나는 그제까지만 해도 나의 성실을 무기 삼았다. 내가 '대체 불가한 존재'라도 된 양 자만에 빠졌던 지난날의 나를 끄집어 내려 본다. 내가 또 앞서나갔다. 그래, 뭐, 대체 불가한 사람이 될 필요도 없다. 아니, 되도록 대체 가능한 사람이 되어 보자! 그래야 나중에 빠져나갈 구멍이 생긴다.
따라서 오늘 내가 선택되지 않은 것은 나에게 '호재'이다. 어치피 누구든 끝내 '재'가 되어 버리는 이 공평한 직장의 법칙 안에서 나,
계속 활활 타오르는 장작이어도 좋고 이대로 불쏘시개의 삶이어도 좋다.
불쏘시개도 한 번쯤은 뜨거워 봤을 것이다.
그거면 됐다. 나는 다시 편한 내 자리, 내 방구석으로 '컴백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