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과 된장 사이

[돌고 돌아 재입사]

by 봄책장봄먼지

재입사, 찍어 먹어 보니 된장이었다.


내게 돈도 주고 그 나름 직함도 준다. 내가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어디 어디서 일한다 말하기 쉽고, 가족들도 다른 이들에게 나의 신상을 말하기도 쉽다. 아, 바로 이거지. 이 영광의 맛이었어. 지친 몸은 점점 시궁창으로 썩어 가도 나에게 티끌의 급여를 쥐여 주던 그 달콤한 입사의 맛.


재입사라는 이 된장찌개의 맛이 어찌나 얼큰하고 칼칼한지 몸이 다 건강해지는 느낌이었다. 강사료의 반을 꼭 부모님 용돈으로 드리기로 크게 마음먹었기 때문에 나는 잃어가던 존재감을 가족 내에서 다시 찾아가고 있었고, 큰딸내미의 입지는 점점 더 무르익어 가고 있었다. (방이 난장판이어도 이젠 잔소리를 안 하신다.)


물론 수업이 많지는 않았지만 작년 하반기에 본격적으로 시작한 온라인 수업은, 그래도 꽤 인기가 있어서 여기저기서 신청이 들어왔다. 그렇게 부모님께 30만 원의 용돈을 드리게 되는 달도 있었고, 생전 처음으로 난데없이 100만 원의 용돈을 드리게 되는 달도 있었다. 물론 코로나 등등의 이유로 한 푼도 못 드리는 달도 많았다. (퍼센트로 용돈이 지급된다는 것을 아시고, 어머니는 은근히 내 수업이 더 많아지길 기대하셨는지도 모르겠다. 죄송해요, 어무니. 지난달에는 수업 많이 못 한다고 직장에 뻥쳤거든요;;; 넘 힘들어서 좀 쉬엄쉬엄하고 싶었어요.)


아무튼 그동안 티끌만 벌고 있어서 멀쩡한 용돈 한 번 드리지 못했었는데 이 재입사 덕에 조금쯤은 '사람' 같이 살게 됐다. 조카들에게는 아이스크림을 하나 더 사 줄 수 있었고, 부모님께 드리는 용돈 봉투에는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따위를 써 내려갈 수도 있다. (어쩐지 좀 있어 보이는 전개다.)



이렇게 재입사는 내게 꿀맛, 된장 맛이다. 구수하게 오래 푹 고아 먹고 싶어질 정도다.



-선생님들, 업체가 바뀌었습니다.

-선생님, 강의 시연을 새로 해 주셔야 합니다.

-선생님들, 학년별로 수업 ppt를 다시 작성해 주셔야겠습니다.

-선생님들, 올해는 강사 워크숍을 진행해야 합니다. 발표를 준비해 주십시오.

-선생님들, 올해는 작년과 달리 온전히 zoom으로만 수업을 하니, 도구 사용법을 좀 익혀 두십시오.

-선생님들, 올해는 작년처럼 강사료를 많이 드리지는 못합니다.

-선생님들, 올해는 자문료도 깎입니다.

-선생님들, 선생님들, 선생님들...


(그.. 그만.. 나 좀 고만 불러 주세요;;)


나의 '된장'인 이 재입사 일터에서 또 이러쿵저러쿵 요구 사항이 늘어 간다. 처음에는 수업의 표준 ppt만 작성하자고 했다가 저학년, 고학년, 중학생용으로 나누어 슬라이드를 작성하자고 했다가, 나중에는 아예 학년별로 따로따로 슬라이드를 만들어 보자고 했다가...


찍어 먹어 보니 된장인 줄 알았는데 이 된장, 오래된 것 같기도 하고 어디 군내가 나는 것 같기도 하고, 된장이 아닌 것 같기도 하다. 가끔씩 겉모양은 영락없는 '똥' 모양이다. (흠.. 냄새도 꼬리꼬리~ 하니 된장이 아닌 것 같기도 하고.)


하긴. 된장도 사 먹는 된장이 있고 직접 담가 먹는 된장도 있다. 직접 담가 먹는 된장에도 올해 담근 된장이 있고 작년에 담근 된장이 있다. (올 2월에 담근 우리 집 된장은 아직도 열심히 삭히는 중이어서 지금은 먹지를 못한다.)


재입사도 그런 것 같다. 깔끔한 숫자로 지난 노고를 보상해 주는 것 같을 때도 있고, 아직 설익어서 찌개로 끓일 수도 없는 재입사도 있다. 무조건 오래 묵혔다고 꼭 맛있는 재입사인 것도 아니고. 뜨끈하고 구수했다가도 너무 뜨거워서 입을 데게 하는 경우도 있고, 아무리 맛있다고 해도 배불러서 도저히 못 먹을 것 같을 때도 있다. (수업이 많을수록 돈을 많이 줄 수 있으니, 담당 강사들에게 되도록 많은 수업을 챙겨 주려고 한다. 하지만.. 가끔은 너무 배부르거나 배 터질 때도 있다.)

배고플 땐 그렇게도 맛있어 보였던 재입사가, 막상 먹고 보니 거기서 거기인 재입사일 때도 있고, 가끔은 나보다는 다른 사람의 입맛에 더 맞는 재입사일 것 같을 때도 있다.


이렇게 나의 '재입사 된장'은 현재 진행형이고 좌충우돌 중이다. 재입사 찌개가 펄펄 맛있게 끓기 위해서는 아마도 더 지난한 노고와 그저 흐르게 두어야만 하는 시간 등이 필요할 것 같다.



이 재입사, 똥인지 된장인지는 조금 더 먹어 봐야 그 맛을 알 수 있을 듯하다.

(2022년엔 2022년의 맛이 다시 새로이 출시되겠지? 이곳에서 그 맛을 맛볼 수도, 혹은 생각지도 못했던 다른 곳에서 새 맛을 맛볼 수도 있겠지. 어떤 곳에서든 재입사는 똥 아니면 된장이겠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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