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 돌아 재입사]
플렉스Flex라는 말이 한창 예능을 떠돌며 방송계를 휩쓸 때가 있었다. 오늘 갑자기 나만의 플렉스에 관한 글을 쓰려다 보니 이게 어디서 왔는고,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네이버 씨에게 물어보았다.
플렉스는 사전적 의미(동사)로는 ‘(준비 운동으로) 몸을 풀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으나, 1990년 미국 힙합 문화에서 '부나 귀중품을 과시하다'란 의미로 사용되다 한국으로 건너왔다. 한국 힙합 가수 염따/ 기리보이 님들이 사용하면서 우리나라에도 2019년부터 유행한 말이라고 한다. 자, 이제 Flex의 고향이 어딘지, flex가 어떻게 상경한 것인지를 들어 봤으니, 나만의 Flex를 슬슬 소개해 볼까 한다.
"봄먼지 선생님, 전화를 드린 건 다름이 아니오라,"
이 말을 수화기 속에서 건네받기 전으로 되돌아가 본다. 정확히는 2시간 전으로 시간 테이프 되감기. 나는 달콤한 침대 속에서 한쪽으로 구부린 채 누워 있다. 마치 태아가 엄마 배 속에 있듯 몸을 동그랗게 말고 단잠을 자는 모양새다. 꿈 따위는 꾸지 않는다. 오늘의 나는 숙면이다. 이 숙면은 질이 좋다. 그리고 이는 밤잠의 질이 아닌, 낮잠의 질을 가리킨다.
사실 낮잠은 내 일상과 무관한 존재였다. 웬만하면 눈을 부릅떠 가며, 또 허벅지를 찔러 가며 참는 편이었다. 한번 잠들었다 하면 사정없이 잠 속으로 곤두박질을 치기 때문이다. 그러던 내가 나이가 들더니 '참는 것이면 무엇이든' 지겨워졌다. 불의한 일을 참고 억눌린 관계도 참고 하기 싫어도 참고..
이것만도 억울한데 낮잠까지 참는다고?
갑자기 그러기가 싫어졌고, 때마침 일이 줄어든 시기라 낮잠을 잘 기회가 왔다. 나는 '기회의 신'의 앞머리를 붙들었다. 수업이 없는 쉬는 날이면 꼬박꼬박 낮잠을, 삼시 세끼 챙기듯 열심히 챙겨 먹었다. 보약이 따로 없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보약을 챙겨 먹으러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 가 한창 꿈 없는 꿈나라 속에서 숙면 중이었는데...
"불근쉑~푸른쉑~ 그사이 삼 초 그 짤븐 시가안~~노란쉑 빛을 내는 쩌기 저 신호등이~~(붉은색 푸른색 그사이 3초 그 짧은 시간~~)"
요즘 나의 공식 벨소리인 '신호등(by이무진)'이 마구 울려 댄다. 울려 대니까 받아야 하는데, 나 지금 그래야 하는데.. 음냐... 퓨퓨... 말하지 않았던가, 나는 숙면 중이었다. 복이 많아 밤에도 낮에도 숙면할 때가 많은데 그날 낮에도 복 터지게 수면 및 숙면 중이어서 전화기로 뻗어야 할 내 두 손이 배 속 아가처럼 가슴팍으로만 모여든다. 아, 저걸 받긴 받아야 하는데, 누군지 확인이라도 해야 하는데.. 음... 하다 보니 그냥 그대로 쭉 자 버리고 말았다.
아~~ 잘 잤다~~~
정말 절로 기지개가 켜진다. 다시 오후 4시에 새로 하루를 시작한다. 하나의 하루에 두 개의 하루를 사는 요즘이다. 이게 바로 낮잠 플렉스가 아니고 무엇이겠느가, 후후후. 아주 가뿐해진 몸으로 침대에서 폴짝 뛰어내려 휴대폰 곁으로 가서, 늘 그랬듯 기상을 신고하고 잠금 패턴을 풀고 음악을 재생하려는데...
불현듯 주마등같이 스치는 '불근쉑~푸른쉑~ 그사이 삼 초 그 짤븐 시관안~~' 아.. 맞다. 전화 왔었지.. 누군데 이 밤에, 아니 이 낮에 전화를 해? 쉬는 시기라 딱히 나한테 일 시킬 사람도 없는데?
우리말을 가르쳤던 나는 일이 잠시 없어져서 한창 마음 편히 놀고먹고 빌어먹고(?) 있는 중이었다. 나를 찾을 사람이 거의 없을 텐데 누구야, 라는 구부러진 미간으로 부재중 전화를 확인하는데, 상대는 다름 아닌 회사 과장님...
"아, 죄송해요. 과장님. 제가.. (흠.. 낮잠을 자느라..는 좀 아닌 것 같고..) 일이 있어서 전화를 놓쳤어요. 아까 전화하셨었는데 되,, 되둉합니다.."
"아, 아니에요. 다름이 아니라 저희가 이번에 우리말 체험 꾸러미를 개발하는데 업체에 의뢰한 꾸러미 시안이 나와서 그것 좀 보시고 수정해야 할 부분 등을 검토해 주셨으면 해서요."
전화를 끊고 노트북을 켠다. 메일을 확인하고 다운로드형 꾸러미와 스마트 배송형 꾸러미를 확인한다. 덜 깬 눈으로 스크롤을 하며 무성의하게 화면을 내려보다 말고, 문득 봄먼지는 이런 생각이 든다.
'왜 나는 말을 못 한 거지?'
왜 나는 우물쭈물했을까. 일이 없는 기간에 수업 말고 다른 일을 시키는 건데 왜 나는 죄송해만 했을까. 메일mail로 치자면, 이 일에서 나는 지금 참조자쯤의 상황이지, 막 달려들어 이 일을 해야만 하는 제1의 수신자는 아니다. 물론 꾸러미 개발에 참여해야 한다. 어차피 강사들이 자문해야 할 일이긴 하다. 그리고 개발에 참여하면 돈은 준다. (너무 나~중에 준다는 게 함정이지만.) 그래도 난 공식적으로 쉬는 기간이었던 건 맞다. 왜 나는 나의 휴식을 당당히 말하지 못하고 쭈뼛댔을까, 왜.. 왜..
왜 이 낮잠이 내 낮잠이라고 말을 못 해! 전화 못 받고 2시간 가까이 사경 헤매듯 잠들어 버려 당신의 중요한 전화를 못 받아 버렸다고 왜 당당히 말을 못 하냐고! 낮잠이 무슨 죄는 아니잖아. 그리고 어차피 수업도 없었는데.. 내가 뭐 딱히 굽혀야 할 모양새도 아니고.(이러다 늘 굽힐 거지만.) 아, 아무튼...
NG, NG다. 다시, 다시!
재입사자로서, '짬밥(?)'이 있는 사람으로서, 다시 한번 말해 보자. 부재중 전화를 확인하고, 상대에게 전화를 다시 걸기 전, 그 10분 전으로 돌아가 본다.
"아, 과장님, 전화하셨었네요? 못 받아 죄송합니다."
"아, 아닙니다. 다름이 아니라, 선생님."
"아, 과장님, 제가 먼저 말할게요. 제가 전화를 못 받은 거슨~(상대는 안물안궁), 제가 무려 '낮잠'을 잤기(즐겼기) 때문이에요. 요새 낮잠을 과소비하는 중이거든요. 그냥 낮잠도 아니에요. 두 시간짜리 고급 낮잠이에요."
"......"
"하루에 두 개의 하루를 살 수 있는 방법 아세요? 하루를 마치 48시간처럼 느끼실 수 있어요. 과장님도 한번 낮잠 자 보세요. 회사라서 안 되신다고요? 에이. 알잖아요, 책상에 앉아서도 틈틈이 잘 수 있어요. 한번 해 보세요. 꿀이에요, 꿀."
"...(???)"
"아무튼 낮잠 Flex~~ 추천해 드려요."
물론 이 장면은 결국 내 하루에 방영되지 못한 채 상상으로 막을 내린다. 나는 다시 노트북으로 시선을 옮기고 pdf에 메모를 삽입하며 하라는 일이나 하는 중이다. 그게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이다. 낮잠 flex를 실컷 즐겼으니 이제 업무 flex를 즐겨야(?) 할 시간이다.
그래도 재입사를 하고 나서 좋은 점이 있다. 지난번 입사 땐 매일 나가서 일을 해야 했지만, 이번엔 프리랜서 강사로 일하는 것이다 보니, 내 생(生)에 낮잠이 좀 늘었다!! 수업이 없는 날은 마음대로 하루 일과를 조정해 새벽같이 일어나고 어둠같이 낮잠을 자기도 한다. 그야말로 낮잠 사치를 즐기는 중이다. 그렇게 계속해서 자고 또 자다 보면 언젠가는 또다시 대낮에 과장님에게서 전화가 걸려 올지도 모르지.
그러면 그때 나의 대답은 take1일까, take2일까.
take1
"아, 과장님. 전화를 못 받아, 죄송합니다. 너무 늦게 전화드려 또 죄송합니다. 자꾸 또 되둉합니다. (왜 이 낮잠이 내 낮잠이라 말을 못 하냐고!)"
take2
"과장님~ 하하. 낮잠 플뤡쓰~~ 낮잠 들입다 자느라 전화를 못 받았네요.후후. 아오, 개운해라~ 제가 두 시간이나 낮잠을 잤거든요 푸하하. Fle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