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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책장봄먼지 Feb 10. 2022

지나고 나서야 깨닫는 금사빠 정체성

[입덕 10일 차]

지인에게서 재밌는 링크를 전달받았다. 이름하여, '덕질유형 테스트.' 그 결과, 나는 '금사빠 냄비 덕후'!



https://poomang.com/duckjil/result/3199666?c=1


심심풀이로 덕질 유형 테스트를 해 보니, 나는 ‘금사빠 냄비 덕후’라는 결과가 나왔다.

(금사빠: 금방 사랑에 삐지는..)


아닌데, 아닌데, 라고 부정하고 싶었지만 두 번에 걸쳐 살짝 비틀어 답을 해 보아도 결과는 마찬가지. 금세 사랑에 빠지는 유형이란다.



뭐, 부인하지 않겠다. 한 번에 아주 사랑을 몰아서 던지는 스타일인 것 같기도 하다.


지금은 너무너무 가물가물한 나의 옛 연애 스타일을 떠올려 보자. 나는 짝사랑하는 대학교 선배가 군대에 가자 100통의 편지를 썼다. (놀라기에는 아직 이르다.) 짝사랑 말고 정말 사귀었던 남친에게는 600통이 넘는 편지를 썼다. 나란 여자, 아주 상대를 질리고도 물리게 하는 스타일이다;; 그러나 그런 열정은 주로 초반에만 불이 붙었던 듯하다.



늘 잘 참고 무언가 하기 싫어도 꾸준히 하는 사람,

이라고 사람들은 나를 그렇게 오판하곤 한다. 대단한 착각이다. 나는 ‘작심삼일’ 동안만 ‘잘 참고 꾸준히 하는 척’을 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작심삼일이 거듭되면 작심육일이 된단다.

‘금사빠’도 곱절로 거듭하여 다시금 빠지면 금사빠×2가 되지 않을까.



그래서 오늘도 마감해야 할 일을 앞둔 주제에 tv를 틀고 뉴스를 보았다. ‘금사빠’를 이어 가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뉴스를 즐겨 보느냐? 그건 아니다. 뉴스룸 문화초대석(?)에 내 가수님이 나오신단다. 그래서 뉴스를 보았다! 설레는 마음으로 7시부터 본방사수했다. 우울하고 안타까운 이야기들만 나열되던 뉴스에서 갑자기 빛나는 세 사람이 등장한다. 그때부터 일에 찌들었던 내 눈에서도 빛이 번쩍인다.



결승전 이후의 근황과 세 사람의 미니 콘서트. 내 가수님은 경연 후 ‘응원해 주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렸다’는 자신의 일과를 언급하면서 또 한 번 팬들을, 팬카페 이름을 슬쩍(아무도 모르게?) 언급했다. (일 때문에 팬카페에 안 들어가 봤지만 아마 지금 또 난리가 났을 것이다. 내일 꼭 들어가 봐야지!


정말 멋진 세 분의 무대가 순식간에 지나간 뒤, 시계를 보니 7시 30분이 넘었다.

앗. 잊을 뻔했다. 오늘 꼭 복면가왕!


노래하는 프로그램을 정말 좋아하지만 어쩐 일인지 복면가왕을 잘 안 봤다. 그런데 내가 좋아했던 옛 가수님이 복면가왕이 되셨다 했다. 그 자리를 지킬 수 있을지, 가면을 벗고 얼굴을 보여 주어야 할지, 두근두근하는 마음으로 옛 추억에 빠졌다. 한때 나의 ‘금사빠’였던 내 가수. 등장부터 취향저격의 음색으로 나를 뒤흔들었던 분.


“여기에 출연하는 것 자체가 선물이었다면서요?”

mc가 내 가수에게 묻는다. 추억의 내 가수. 작년에 회사를 나오고 나서 먹고사는 문제로 배달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고 한다. 계속 노래를 해야 하나 그만둬야 하나 이런저런 고민에 빠져 있었는데 올해 초, 선물처럼 복면가왕 측에서 섭외 전화가 걸려 왔다고 한다.


팬들이 옹기종기 돈을 모아 아프리카에 기부도 한다는 이야기를, 아주 예전에 유희열의 스케치북에서 들었던 것 같은데. 그래서 나는 그냥, 내 가수가 잘만 살고 있는 줄 알았다. 재작년에는 불후의 명곡에 나왔기도 하고. (거기서 부른 노래를 우리 가족이 지금도 늘 열심히 듣고 있을 정도인데...)


내 옛 가수님도 나처럼 먹고사는 문제, 살아가는 문제에 이리 쿵, 저리 쿵 치이셨을 것을 생각하니.. 주책없이 눈이 흐려졌다. (진짜 주책이군.)


이게 다 나 같은 금사빠들 때문이 아니겠느냐, 는 자책도 저 혼자 했다.


경연 프로그램에서 준우승을 할 때만 해도 팬덤이 그 나름 화려했었는데.. 지금까지 지켜 주는 팬들이 있다는 소식은 종종 들었다. 나는 금사빠답게 마음속으로만 내 가수를 응원해 왔다. 그러나 오늘... 잘 살고 있을 줄로 철석같이 믿었던 옛사랑이 녹록지 않게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것처럼 괜히 마음이 자꾸 꾸깃꾸깃 뭉개진다.


“새해가 되자마자 정말 감사한 일로 시작하게 되어 얼떨떨하면서도 그동안 기다려 주신 분들 사랑에 보답할 생각에 설레며 그렇게 즐거운 마음으로 노래했습니다. (...) 과분한 사랑을 받은 것 같아 행복하고 (...)

앞으로도 좋은 노래로 찾아뵙겠습니다. (...)”



인스타에 들어가 보니 내 옛 가수.. 다시 노래를 하겠단다. 그동안 나는 내 옛 가수님이 인스타를 하리라는 생각도 안 하고 있었다. (신경도 안 썼던 거다. 난 어쩔 수 없는 금사빠니까;) 지난날을 반성하며 인스타 팔로우를 누른다. 나는 곧 내 옛 가수님의 5,745번째 팔로워가 된다.



아마 나는 다시 금사빠일 것이다. 내가 가장 보잘것없었던 시절에 옛 가수의 음색에서 내가 얼마나 큰 위로를 받았는지, 그 사실을 또 잊어버리고서 이렇게 지금처럼 또 다른 가수를 좋아할지도 모른다. 그게 팬의 운명이고 가수의 숙명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늘은 내 옛 가수를, 아니 ‘옛’ 자는 빼고, 내 가수를 추억하고 기억하고 기대하고 싶다.


나는 오늘 드디어

내 유튜브에 ‘박◯◯’ 재생목록을 만든다.


8년 만이다. 

(내 가수님, 신곡도 나왔다. '지나가고 나서야'란다. 나도 지나가고 나서야 깨닫는다. 나는 금사빠 냄비 덕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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