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봄책장봄먼지 Dec 29. 2023

때 아닌 엄중 경고

그래도 당신을 응원합니다

"(넌) 그냥, 있어. 아무 말 하지 말고. (......)"


말줄임표에 채 담기지 못한 남은 말들을 추측해 본다.

1. 네가 보기에도 네가 한심하지?

2. 네가 지금 몇 살이냐?

3. 나서지, 아니 나대지 말고.


저기 위에 있는  저 문장... 글쓰기를 할 때'' 나와 절친이 되는 우리 아버지의 말씀이다. 따끈따끈한 어젯밤의 워딩. 사건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본다.



사실 금사빠(금방 사랑에 빠지는..)인 나는 오디션 프로그램을 매우 즐겨본다. 특히 겨울이면 '싱어게인'에 즐겁게 중독되곤 한다. 이미 싱어게인1을 통해 만난 특정 가수를 지금도 '열혈 애정' 하고 있고 내일 콘서트도 간다.(야홋~~)


그런데 이런 나의 마음을 사로잡은 또 다른 얼굴이 있다. (그렇다. 인정한다. 난 금사빠다.) 싱어게인3에서 나를 사로잡은 사람은 바로 56호 여자분. (그분의 매력이 궁금하신 분들은 노래 '스피드' 속 그녀의 고관절 댄스와 잔나비의 '사랑하긴 했었나요 스쳐가는 인연이었나요 짧지 않은 우리 함께했던 시간들이 자꾸 내 마음을 가둬 두네'라는 긴 노래 제목 속 강렬한 피아노 바이브를 체험해 보시기를 권한다. 이 글 끝 영상 참조.)


남이 보면 그 나이에 뭐 하는 짓이냐고 실소를 터트릴 수도 있다. 그런데 말이다. 남 잘되라고 응원해 주는 일이... 모르겠다, 그냥 나는 남 잘되는 일 보는 게 정말 즐겁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훨훨 날개를 다는 일을 보면, 더더욱 뿌듯하고 마구 신이 난다. 안다, 그건 내 일이 아니다. 내 시간과 노력까지 들일 일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급기야 jtbc에 회원가입까지 살뜰히 해 버리고 몇 주간 온라인 사전 투표(1일 1투표)에 매달렸다.



어제 대망의 TOP10 패자부활전이 있었다.


"나, 56호 안 되면 앞으로 저 프로그램 절대 안 봐, 안 봐!"


떨리는 마음으로 응원하다가 불안함에 한번 내질러 본 소리였다. 그런데 갑자기 옆에 계시던 우리 아버지가 내게 엄한 표정을 지으신다. 당신 딸 입에서 나온 소리라고는 절대 믿고 싶지 않으신 게지.

(그래, 또) 안다. 이런 소리를 초등, 중등의 아이도 아니고 그런 자녀를 뒀어야 할 학부모급 나이의 딸에게서 듣는다면? 아니 일찍 시집갔으면 수능 보고도 남았을 자녀가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 아버지의 '엄근진한' 얼굴이 내게 제동을 건다. 아마 그 안에는 '쯧쯧'이 숨어 있을 테고 한숨 한 스푼, 두 스푼이 얹어 있겠지.



이야기의 처음으로 돌아가 본다. 아버지는 말줄임표 뒤에 어떤 말을 붙이셨을까.

1. 네가 보기에도 네가 한심하지?

2. 네가 지금 몇 살이냐?

3. 나서지, 아니 나대지 말고.



정답은 두구두구두구두구,

2번! 나이!


살아갈수록 '그 나이'라는 말이 내겐 감정을 잠그는 자물쇠, 족쇄가 되어 간다. 나는 그럼 계속해서 입을 다물어야만 하는가. 슬며시 이런 반발심이 든다. 내가 경제적 기반과 사회적 기반이 단단했다면? 속세가 정해 놓은 '물리적 가족'의 형태를 일구고 있는 평범하고도 탄탄한 사람이었다면?

그랬다면 나의 이 10대 같은 발랄한 '입덕 퍼포먼스'에 사람들이 쉽게 한숨을 내쉬었을까.


한숨: 근심이나 설움이 있을 때, 또는 긴장하였다가 안도할 때 길게 몰아서 내쉬는 숨
한심하다: 정도에 너무 지나치거나 모자라서 딱하거나 기막히다.


'한심'이 '한숨'과 함께 발화되면 나는 어깨를 움츠린다. 주눅의 딱지가 얹히기도 한다.....,

라고 엊그제까지는 이렇게 글을 썼겠지만!만!만!!


움찔, 하다가 약간의 성질까지 돋았던 어제의 나는,

아버지의 '나이'와 '한심' 운운에 굴하지 않고,,



"가만있어 보자. 이 56호 양반, 팬카페는 있으려나?"

나 하나쯤 없어도 될 텐데 나는 나 하나의 힘이라도 그 가수에게 보태야 하지 않나, 싶은 마음으로 예비 팬인 '나'를 과대 평가하고 과대 포장하며, 괜스레 팬카페까지 그 영역을 확장해 보려 한다.



그건 그렇고 우리의 56호,

어제 패자부활전에서 어떻게 되었을까~~~?

어떤 결과였는지 어떤 순위였는지 이제 더는 상관없다. 그녀의 인생은 지금부터 다시 시작이다.

그리고 팬으로서 나의 응원도 지금부터 출발이다.



앞으로 소심한 팬으로서 숨어서 열심히 그녀를 응원하며 나를 바라보는 '한심한 표정들', 한숨의 호흡을 내쉰 뒤, 겸허히 수용해 볼 생각이다. 그녀의 꿈이 반짝이는 것을 구경하면서 슬슬 내 꿈에도 시동을 한번 걸어 보아야지~!



남의 꿈을 응원해 본 자가

자신의 꿈도 성심성의껏 응원할 수 있지 않을까.



이것이,

아버지의 때 아닌 엄중 경고에 내가 즉시 대피하지 않 이유이다. 





  

추신: 갑자기 추천하는 책, "지구에서 한아뿐"(저자 정세랑, 여기 나오는 조연 가운데 어떤 인물은 자기 스타를 위해 지구를 버리고 우주까지 갔다.)


https://youtu.be/ZjgNX3Ef23U?si=qfYn1zaZTz844qQ7

https://youtu.be/rIr5Y_5Xk98?si=teuUpkaIlZ_XATed


https://youtu.be/K0LiwqcVTxE?si=gLwxPfU4wznMgUcm


매거진의 이전글 지나고 나서야 깨닫는 금사빠 정체성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