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 대신 문자를 일단 남긴다. 미사를 드리느라 휴대 전화를 꺼 놓았던 탓에 전화를 못 받았다.
-아, 애들이 소감 물어본다고 전화했는데, 지금은 게임 중이라서요~ 이따 다시 전화할게.
조카들이 나의 '수상' 소감을 묻는단다. 다시 전화가 오면 무어라 대답을 해 주면 좋을까?최애를 선물로 수상한 내 소감을...
1. 2시간 30분이 마치 2분 30초 같았다.
2. 원래도 사랑했는데 더 사랑하게 됐다.
3. 좌석은 좀 멀었지만 가운데 자리라 완전 직선으로 바라볼 수 있어 좋았다.
사실 소감을 만들지 못할 뻔했다. 이러면 안 되지만 눈이 펑펑 오던 그날, 2시간 거리의 장소로 출타하시는 엄마의 짐을 들어 드리느라 아침 일찍 몸을 움직여야 했다. 거기서 만난 나의 대모님(성당 어머니)께서 감사히도 현미찹쌀까지 챙겨 주셨다. 그런데 그 찹쌀이 거의 5kg가량이었다. 우산 쓰고 다니랴, 버스에서 어깨 빠지도록 들고 다니랴 정말 정신이 없었다.
이리 길게 '썰'을 푸는 이유는... 나의 '최애'가 기다리는 공연장에 가기 전, 나는 이미 지쳐 있었고 잠시 집에 들렀을 때 피로감이 최대치로 상승해 버렸다는 변명을 하기 위해서다. 워낙 가까운 거리에서 열린 공연이라 엉덩이가 무거울 일도 아니었건만 12월 내내 지인들이 보낸 '연말이니까 한번 봐야지'의 덫에 걸려들어 정신을 못 차리고 매일같이 돌아다녔다.
12월 30일. 피곤의 막다른 골목이라 그랬는지 그렇게 고대하던 만남이었는데도, 게다가 내 생애, 내 최애를 만나는 첫 공연이었는데도 큰 설렘과 감흥이 아직 올라오지 않았다. (설렘이란 녀석은 아직 제 집에서 신발 끈조차 매지 않은 상태였다.)
"혼자 가?"
"어."
"어차피 가면 '우리는 모두 하나'야."
걱정 말라는 덕질 선배님의 따뜻한 조언을 들으며 공연장에 도착했다. 1인분 좌석에 홀로 앉은 내 모습이 나를 조금쯤 주춤거리게도, 머쓱하게도 만들었지만, 6시 땡!
그분을 영접하는 순간...
"그저 그런 참고사항일 뿐~~입니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이렇게 고백해 보세요.~ 잠깐 시간 될까! 만날 수 있을까! 별일은 아니고~"
"우리의 에피소드가 찬란하게 막을 연다, 배경은 너의 집 앞~"
꺄아아아아~~~ (설렘 대신 내 이성이 집을 나가 바렸다.)
그렇게 나와 그분의 에피소드는 설렘 0℃에서 급격히 100℃로 팔팔 끓어오르며 찬란히 막을 연다. 배경은 최애의 콘서트장.
"그 지역에서 이틀 연속 공연이라며?"
"어. 나는 그냥 하루만 예매했어."
"헐. 왜?"
"하루 가는 것도 용기 내는 일었는데?"
"아직 덕심이 부족하구먼."
"왜?"
"오늘의 <○무○>과 내일의 <○무○>은 다르지!"
"아, 그런 거구나."
또 이렇게 선배님께 한 수 배운다.
그래, 결심했다! 2024년에는 올콘!(전 지역 콘서트 참가!)이 나의 버킷이다!
그러려면 기둥뿌리 뽑을 준비부터 해야겠다.
(아, 참 근데 난 기둥이 아예 없는데 어쩌지? 내일부터 차근차근 로또 종이를 하나씩 수집해 볼까?)
"안녕하세요. 다시 연락 주신다고 해 놓고 연락이 없으셔서 직접 전화드렸습니다요. 소감을 전해 드리려고요."
"응, 이모. 지금 게임하고 있었어."
(읭? 오전에 게임하고 다시 저녁에 또 게임?)
"참, 이모, <○무○> 콘서트 어땠어?"
조카들이 게임을 하느라 무척 바쁜 듯보여 나는 재빨리 수상소감 1~3번 가운데 1번을 얼른 집어 들고 준비된 소감을 전송했다.
"응. 그랬구나."
"어, 무지 좋았어. 아, 참. 새해 복 많이 받아."
"응. 이모도 새해 복 많이 받아."
"응"
"끊을게."
"(으응? 벌, 써?) 어, 어어."
처음 내 최애에게 빠졌던 때가 떠오른다. 그 당시 나의 연예인 슬로건(천 쪼가리)에는 '○무○ 사랑해'가 적혀 있었고, 우리 조카 녀석 하나는 이를 보고 꽤 놀란 눈치였다. 하루가 멀다 하고 자기들에게 과격하게 사랑을 고백하는 우리 이모가 나 말고 다른 이를 좋아하다니??! 아니 사랑하다니!!!
"이모, 근데 우리도 사랑하긴 하지?"
"그러엄 그러엄~~!!!"
내가 아무리 금사빠지만,
조카들을 향한 '입덕' 곧 10년 차.
어느 누구도! 심지어 나를 설렘의 도가니로 밀어 넣었던 내 최애 <○무○>조차도!
조카들을 향한 내 입덕 항해를 막을 수는 없다!
나의 최애는 누가 뭐래도
이무.. 아니,, 쌍둥이 조카 두 녀석들이다!!!
(추신: 하지만 다음 해에도 콘서트는 또 가는 걸로. 기둥뿌리는 기둥 만들자마자 뽑는 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