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전까지 쓰려던 이야기는 이 이야기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 이야기는 잠시 던져두기로 한다. 그 대신 아침부터 집안을 요란하게 만든 사건을 보고하려 한다.
"그걸 죽이면 어떡해요!"
"아니 뭘 그러냐."
"아, 어뜩해. 나 때문에 죽었어, 나 때문에."
내가 발견만 하지 않았어도 그 녀석은 날개가 자랐을지도, 날개를 펼쳤을지도 모른다. 아, 마지막 사진도 못 찍어 뒀는데, 이게 무슨 일이냐.
시간의 테이프를 되감아 보자면...
나는 우리 가족의 아침 루틴인 묵주기도를 하다 말고 갑자기 아주 작고 검은, 물방울무늬가 하얗게(혹은 노랗게) 박힌 미세한 동그라미 하나를 발견한다. 오잉? 이게 뭐지? 신기한 마음으로 쳐다보다 곧 깨닫는다. 아, 이건 무당이다, 무당벌레.
"엄마, 이거 무당벌레 맞지? 갑자기 어디서 뚝 떨어진 거지?"
몇 분 전까지만 해도 우리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녀석이 어느새 우리 식탁 위에 올라왔다. 물을 따르다 넘쳐흘렀던 물방울 끄트머리에 무당이가 매달렸다. 잠시 휴식을 취하는 듯 보였다.
"무당벌레네."
무심한 한마디 후 엄마는 점심 준비로(아침에 점심을 미리 준비하시는 엄마다.) 바빠서 나와 함께 묵주기도에 동참하지 아니하시고 냉장고 문을 열었다 닫았다, 가스 불을 줄였다 늘렸다를 반복하신다.
오늘은 묵주기도 가운데 '고통의 신비'를 하는 날. 고통의 신비 2단, 채찍질을 당하심을 묵상합시다, 를 혼자 외치는데 아버지가 늦게 어슬렁어슬렁 나오신다.
"아부지, 이것 봐요! 무당벌레 맞죠?"
너무 조그마해서 잘 안 보이시는지 무당이에게로 가까이 다가서는 아버지.
"아부지, 만지지는 말고요."
난 행여라도 손을 댈까 싶어 조심하라는 경고성 멘트를 보탠다.
"무당벌렌가 보네."
아버지는 평소에도 자연 다큐멘터리 광팬이시고 하천 산책길을 걷거나 뒷산을 오를 때면 우리보다 늘 먼저 야생동물(딱따구리, 까투리, 박새, 어치, 오목눈이, 가마우지, 고라니 등등)을 발견하시는 '자연 심미안' 및 '자연 천리안'을 지니신 분이시다. 그런 아버지와 동물 이야기를 도란도란 나눈다고,
나는 생각했는데 그만, 그 자연 친화적인 아버지가 갑자기!!
"아버지, 뭐 해욧! 아니 그걸 갑자기 왜 가져가, 왜 죽여요!!"
하필 내가 방금 머리카락을 모으느라 뽑아 두었던 티슈 한 장이 무당이 옆에 놓여 있었고, 아버지는 잽싸게 그 티슈를 가져다가 무당이를 아무렇지 않게(!) 휙 쓸어 버린 후 종량제 봉투 속으로 투척하신다.
"아, 왜, 왜!!"
언성이 높아지고 묵주기도고 나발이고의 심정이 된다.
"그냥, 하던 묵주기도 계속해."
아부지는 딴 소리만 하신다.
나는 올라오려는 황당함과 질척한 분노를 누르고 하는 수 없이 하던 기도를 마저 하기 시작한다.
고통의 신비 3단, 고통의 신비 4단.
"고통의 신비 5단, 우리를 위해 돌아가심을 묵상합시다."
오늘따라 하필 고통의 신비, 죽음에 관한 기도다. 평상시 마음이 야들야들, 아니 너덜너덜한 편이라 무당이를 보내 버린 것에 괜히 울컥해서 내 목소리가 살짝 떨린다. 돌아보니 내가 무슨 짓을 한 건가, 싶다. 왜 무당이를 적(?)에게 알렸는가. 모른 척 지나갔으면 됐을 것을.
엄마는 외려 나를 탓한다.
"그러니까 '죽이지 마세요!' 먼저 말했어야지!"
아니 보자마자 죽일 줄 누가 알았겠느냐고요.
"아니 그러면 초록불이니까 이제 건너세요, 이렇게 일일이 이야기해야 해?"
나는 평소 엄마가 아부지에게 쓰던 '비난 문장'을 그대로 가져와 아부지를 코너로 몬다.
"아니 너희 아버지는 원래 그렇다니까. 그니까 그걸 왜 보여 줘."
묵주기도를 하는 내내 무당벌레를 관찰하려고 했다. 물을 먹으려고 하나, 아직 새끼인 것 같은데 날 수는 있나, 날개는 자랐나. 정말 무당벌레가 맞나. 어쩜 저렇게 영롱하나. 기도 하는 내내 지켜봐야지, 기도 끝나면 무당벌레 방생하는 법을 한번 검색해 봐야지.
그래도 묵주기도를 하다 보니 시간이 좀 흐르고 흐른다. 마음이 조금쯤 가라앉는다. (이렇게 빨리 애도가 끝나도 되는가, 싶지만...) 한 번 더 생각하면, 그렇다고 해서 그렇게까지 아버지에게 크게 소리 지를 일은 아니었다. 다 늙은 딸이 더 늙은 아버지께 아침부터 소리칠 일까지는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내가 평소 가장 내뱉기 싫어하는 낱말, '짜증'까지 아부지께 꺼내 든다. "짜증 나. 나 때문에 갔어..."
신기한 마음에 그 아이를 구경하게끔 만들지만 않았어도.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내 탓이로소이다'이다.
채소를 사 오면 종종 벌레가 나와서 서 깜짝 놀라곤 했다. 그때도 역시 아부지가 나타나셔서 뒷일을 처리할 때가 종종 있었다. 하지만 웬만하면 티슈에 살짝 벌레를 올린 후 바깥으로 훨훨 내보내곤 했다. 그래도 살려는 준 거잖아? 이렇게 혼자 안심하고 뿌듯해하고 있을 때, 조카가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이모가 벌레를 밖으로 날려 보냈어. 죽일 수는 없잖아. 살려 줘야지! 이모 잘했지?"
"근데 이모."
"(자기만족의 표정을 만면에 띤 채) 응, 왜?"
"이모네 2층이잖아."
"응?"
"거기 2층이야. 2층이면 벌레들한테 높잖아."
높은데 떨어져서 벌레가 죽으면 어쩌냐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어디로 날아갔다손 쳐도 살던 근거지를 벗어나면 죽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였다. 벌레의 무게와 낙하 속도 및 충격 여파, 그런 물리적인 이야기를 늘어놓기도 전에 나는 조카의 그 한마디에 숨이 턱 막혔다, 조카의 그 섬세한 말 한마디, 세심한 마음 한마디가 너무나 아름다워서...
'2층이면 벌레한테 높잖아.'
그런데 나는 오늘 어땠나. 괜히 온 가족을 불러 모아 무당벌레를 구경거리로 만들었고, 기어이 녀석을 죽음에 이르게 하였다.
"쓰레기봉투에서 살아날 거야."
위로의 말이라고 아버지가 내게 던지신 말. 쓰레기봉투가 무덤이 됐겠죠. 그리고 아부지, 아니 좀 전에 아부지가 야무지게 휴지로 싸는 걸 내가 봤는데 뭔 소리여요. 이렇게 할 말은 많지만, 나는 대답 대신 침묵으로 아버지에게 시위를 한다.
그렇게 머쓱하고 조용한 시간이 흐르고 묵주기도는 '고통의 신비'를 마친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니, 나라고 별다를 수 있었나?
"죽이지 마세요!" 이 소리는,
1) 어제 김치찌개에서 소고기를 건져 먹은 내가 할 소리는 아니다.
2) 지난주, 동생이 온 가족에게 베푼 연말 맞이 '뷔페' 식사에서 들입다 잡식동물이 되어 이것저것을 탐했던 내가 할 소리는 아니다.
3) 귀뚜라미인지 꼽등이인지 모를 것과 야밤에 눈이 딱 마주쳐 소리를 꽥 지르고는, 깊은 잠에 빠졌던 아버지를 깨워 뒤처리를 부탁(강요)했던 내가 할 소리는 아니다.
4) '비건' 관련 책을 빌려다 읽으며 '언젠가는 나도'라는 마음을 품었다가 금세 도로 접어 버린 나. 종종 맛있게 치킨을 뜯기도 하고, 대체로 김밥 안에 '햄'을 넣어 먹는, 그런 내가 할 소리는 결코 아니다.
나도 나의 이런 아이러니를 이해할 수 없다. 병아리는 귀엽고 치킨은 맛있는, 이 뭐 이상한 시추에이션.
"밥 안 먹고 뭐 해?"
"엄마, 나 방금 매일 글쓰기 모임 글 쓰고 나왔어. 다른 글 쓰려다가 오늘 아침 아부지의 무당벌레 습격사건을 재빨리 써 뒀지."
"뭐라고 썼는데?"
"어렸을 때부터 고기만 쏙쏙 골라먹던 내가 할 소리는 아니었다,라고 끝맺었어."
"그렇지, 당연하지."
이번엔 엄마 목소리가 아니다. 저 뒤에서 뒤늦게 말문이 트인 아버지의 목소리다. 아침부터 딸내미의 황당한 습격에 멋쩍으셨을 우리 아부지.
아부지, 그래도 다음부터는 '바퀴벌레'가 아닌 바에야 우리, 죽이지는 맙시다.
그런데..
바퀴벌레는, 그럼,, 죽여도 되나? 죽이면 안 되나?
(그럼, 해충을 죽이고 익충을 살리고? 아 근데 익충의 기준을 만든 건 인간인데, 인간 마음 내키는 대로? 진짜 뭐가 맞나?)
아, 아, 모르겠다. 머리 아프다. 스님들은 어떻게 하시려나.
무당벌레의 영정사진도 못 찍고 아침부터 살생유택의 가르침을 거스른,
어느 아침의 요란한 소동이었다.
아무튼, 무당아. 잘 가. (추신: 무당이는 노랑육점박이무당벌레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