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봄책장봄먼지 Jan 30. 2024

사슴을 향한 해답의 경로는...

얼마 전 뉴스에서 "드디어 해법이 생겼습니다!"라는 문장이 들렸다.

앵커의 어조에는 약간의 시원함이, 얼굴에는 해맑은 웃음이 어렸다. 정말 해답지를 받아 든 표정이었다. (아래와 같이 다른 매체의 기사로도 찾을 수 있다.)


안마도 ‘애물단지’ 수백 마리 사슴…“해법 찾았다” | KBS 뉴스



주민 약 150명이 거주하는 안마도에 사슴 1,000여 마리(혹은 몇백 마리 추정)가 이 섬의 주인인 양 정착해 버렸다. 주객이 전도되어 섬을 떡하니 차지하고 있는 모양새다. 어떤 기사에는 '사슴의 눈을 믿지 마세요.'라는 타이틀이 올라왔다. 몇 년간 농사를 짓고도 제대로 수확을 해 본 이 없다는 인터뷰도 있었다. 그래서 마침내 찾은 해법은,


'포획'


유해야생동물로 지정되면 공식적으로 지자체에서 관리를 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소식이었다. 이제 어쩌면 이 섬에는 안정과 평화가 찾아들 것이다, 물론 사슴의 평화는 빼고.



포획

「1」 적병을 사로잡음.

「2」 짐승이나 물고기를 잡음.

(표준국어대사전)



현재로선 이 사슴들이 적병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생활을 못 하게 만든다. 생업을 망가뜨린다. 게다가 산소의 떼까지 먹어치워 육지로 이장까지 해야 하는 사태에 이르렀다. 생태계를 교란하고 있어 산이 황폐해지고 초목도 사라질 위기란다. 사슴이 1천 마리가 되는 동안 주민들은 30년 넘게 고통받고 있다고도 했다. ('실화탐사대' 안면도 사슴 사태 & 어린이집 원장의 갑질 < 연예 < 문화 < 기사본문 - 폴리뉴스 Polinews)

맞다. 적병이다. 백번 맞다. 인간의 입장에서 볼 때 저리 활개를 치는 사슴들은 몰아내야 할 적병이다. 전멸까지는 아니더라도 개체 수를 줄이려는 노력이 필요해 보이기는 한다.




그런데 왜 이렇게 마음 한편이 착잡할까. 이 기사를 접하며 묘하게 마음이 일렁이는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주민분들도 분명 제대로 살아가야 한다. 백 번이고 천 그래야 한다. 얼마나 고통을 받았을지 짐작도 못 한다. 


그런데 왜 마음 한 줄기가 스산한 걸까. 왜 자꾸 속마음이 어수선해지는 걸까.

사실 사슴을 안마도에 들여와 방목해 버린 것은 사람이었다고 한다(녹용 등의 사유). 사슴들이 노 젓고 배 타고 안마도로 스스로 찾아들지는 않았을 것이다.(물론 헤엄을 잘 치는 사슴들의 긴 행렬이 영상에 잡히기도 했다.) 그렇다고 1천 마리의 사슴 편만 들 수도 없는 노릇이다. 안다. 하지만 이 기사도 주목해 보자.



안마도 사슴, 퇴치·총기 포획만이 '해법'인가요 [Q&A] (hankookilbo.com)

https://m.blog.naver.com/loveacrc/223277872263




퇴치하고 총기로 포획하는 일이 절대적인 해법일까.  상위 포식자 동물들을 복원하는 대신 우리가 상위 포식자 역할을 해야 하는 건가. 이 해법을 만들기 전에 혹시... 우리, 사슴한테 물어는 봤을까.


저기, 사슴 씨들, 포획 좀 해도 괜찮죠? 솔직히 해도 너무 하잖아요. 왜 이렇게 피해를 입혀요. 왜 이렇게 많아졌냐고요! 그물 쳐서 여러분 습격을 막느라 우리 섬은 그물섬이 되었다고요. 먹이 사슬이나 먹이 그물에서 그물을 당하는 쪽은 그쪽이고, 그물을 쳐야 하는 쪽은 우리 인간이잖아요. 우린 꼭대기에 있어야 해요. 그게 세상 사는 이치입니다. 아무튼, 이걸로 사슴 씨들 의사를 물어보긴 본 겁니다. 좋게 좋게 해결합시다.



부득이한 방법을 택해야 할 때도 있다. 얽히고설킨 실타래는 쾌도난마, 딱 끊어 내야 할 때도 있는 법이니까.

그렇게 끊어 낼 때 누군가는 피를 흘려야 할 수도 있다. 작은 희생쯤은 감수해야 할는지도 모른다.



"드디어 해법을 찾았습니다!"



앵커의 활기찬 목소리가 맴돈다. 다만, 그것이 진짜 해법인지, 시원하게 웃으며 전해야 할 소식인지는,

약간 의구심이 든다.

나의 의구심은 끝끝내 내 책상 위, 이 브런치 모니터 화면 밖을 벗어나지 못한다. 내가 좀 그렇다.



고라니에 이어 이제 머잖아 사슴까지 인간에게 유해동물이 되겠구나. 이러다 인간 빼고 모든 동물이 차차로 다 유해해지면 동물들이 우리를 외려 유해동물이라 여기지는 않을까. 물론 주민분들의 고통이 심하기에 함부로 이런 이야기를 꺼낸다는 것은 송구스럽다.


주민분들께도 사슴에게도, 모두에게도 어쩐지 죄송해지는 글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무당벌레 습격 사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