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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책장봄먼지 Jan 09. 2024

산책이라는 선물

<산책을 듣는 시간>을 읽고


내 모어는 수화다. 뜨개질하듯이 손으로 말을 엮는 게 좋고, 서로의 눈과 입술을 보며 집중하는 게 좋다.(7)




콘셉트

인과 인의 양면 혹은 단면, 그리고 이면

청인 안에 살아가는 농인의 세계, 혹은 농인 안에 살아가는 청인의 세계. 대립된 세계는 아니나 이면에 있는 듯 보여 서로 잘 인식하지 못하는 세계.


(예상) 주제

선은 그으라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으라고 있는 것.



예상 독자 

1) 핵심 독자: 농인의 세계를 좀 더 깊이 보고 싶은 이들

2) 확대 독자: 경계에 서서 휘청이는 사람들, 산책의 의미를 짚어 보고 싶은 이들



해시태그

#고요 #산책 #농인 #건청인 #독립 #노래 #하숙집 # 마르첼로 #한민 #인공와우수술 #제16회사계절문학상대상수상작 #저자'정은'



필사

"나는 외로움이 뭔지 잘 모른다. 대체로 늘 그랬으니까. 나는 소리를 못 듣는다는 게 뭔지 잘 모른다. 마찬가지로 늘 그래 왔으니까. 내 모어는 수화다."(7)

한때 수어(수화 언어)를 배우면서 수어로 말하는 사람들을  보았다. 단순히 손으로 하는 언어가 아니다. 풍부한 표정과 다채로운 동작. 그것들이 수어의 연주를 완성한다.


동시에 몸을 움직이게 하고, 같은 표정을 짓게 하는 거, 그것이 내겐 노래였다. 나는 노래가 좋았다. 내가 느끼기에 세상에 그보다 강력한 것은 없었다. (24)

농인 청소년 '수지'가 노래를 듣는 법. 동시에 비슷한 표정을 짓고 비슷한 움직임으로 리듬에 자신을 맡기는 것. 농인은 노래를 듣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노래를 다른 방식으로 듣고 있다.(더불어 진동으로도 음악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점점 특수학교의 필요성에 대해서 의문이 생겼다. 내게 필요한 특수한 교육을 제공한다기보다는 분리를 위한 것 같았다. 보는 게 싫어서 분리수거하듯 분리해 버린 것이다. 내가 분리되어야 할 존재라는 생각을 학교에 입학하기 전에는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나는 소리를 못 듣는 게 나만의 독특한 성격이라고 생각했지, 장애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고 살아왔다.(39)

선을 긋고 분리를 하는 일은 최선도 차선도 아니다. MBTI가 한창 유행하면서 의견을 조금만 드러내도 그 안에서 무언가를 발견한 후 "T세요?" "F죠?" 등등의 이야기를 한다. 재미로 하는 일이지만 그 안에서 약간의 편견이 생겨나지는 않을까? 듣는 일과 안 듣는 일도 그저 하나의 독특하고 존중받아야 할 성격일 뿐이다.


억지로 수술받게 해서 내 고요함을 망쳐 놓고 이게 뭐야? (104)

누군가 우리의 독특한 성격을 억지로 바꾸려고 한다면 우리의 마음은 어떨까? 이 책 주인공 수지도 그랬다. 자신의 '정체성'은 '고요를 듣는(느끼는) 일'인데 사람들은 자신이 행복하게 생각하는 기준을 상대에게 끼워 맞추려 한다. 행복은 정해 주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



들리지 않는다고 없는 건 아니지. 지구 돌아가는 소리가 크게 울리고 있는데 우리가 너무 익숙해져서 못 듣는 건지도 몰라.(189)

들리지 않는다고, 보이지 않는다고 우리의 세계가 없는 것은 아니다. 내가 수어를 못 알아듣는다고 해서, 점자를 읽지 못한다고 해서 그 언어의 세계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 결코 아닌 것처럼.




독단적 최종 리뷰


농인 청소년의 산책. 굳이 '농인'이라는 표식을 그 앞에 붙일 필요가 없는 어느 '청소년'의 산책. '나'는 정형화되지 않은 수어로 혼잣말을 하며 머릿속을 정리하는 사람. 하숙집을 했던 할머니네서 유년 시절, 강아지처럼 사랑받던 아이. (강아지는 사람들 사이에서 '쓰다듬'을 받지만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 순 없다.) 사람들의 눈빛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던 아이. (그것의 이름은 알고 보니 '동정'이었다.) 구화법을 배우고서는 '숫자 18'을 신명 나게 외치고 욕 수첩을 빼곡하게 적어 가지고 다녔던 아이.



그 아이가 자라서 인공 와우 수술을 받는다. 타인의 호의와 강권에 기댄 수술이었다. 수술 전에도 별다른 세상을 크게 기대하지 않았던 '나'는 자신의 고요가 사라진 것이 외려 안타깝다. '듣는다'는 것만이 인간의 축복이고 유일한 자유인 양 떠드는 것에는 결코 동의할 수가 없다.


할머니도 엄마도 고모도 자신에게서 멀어지던 어느 날, '나(정수지)'는 친구 '한민(회색빛 시력)'과 그의 친구 마르첼로(한민의 강아지)와 함께 산책 전문가로 나선다.


 '당신의 산책을 들어 드립니다'


'함께 그리고 홀로'의 산책으로 사람들에게 고요, 침묵을 선물한다.



산책은 어쩌면, 우리의 잊고 지내던 우리의 권리다. 마땅히 우리는 언제든 산책을 선물받아야 한다. 시계나 휴대 전화가 산책길의 동반자일 순 없다. 나 자신이 내 산책길의 유일한 동료다. 그 동료로서 산책을 들어 주는 사람들이 우리의 주인공들이다.


나도 언젠가는 '수지'에게 나의 산책을 들려주고 싶다.

아마도 주인공 '수지'가 고요한 눈빛으로 나의 지난 산책들을 거리낌 없이 조용히 들어 주겠지. 나의 숨은 침묵을 말없이 가득 안아 주겠지.




더 울어요.
나도 점심 안 먹고 화장실에서 울었어요.
우는 게 더 급해서.(147)


      

예~전에 배웠으나 지금은 내게서 소멸되어 가려는 수어. 다시 배워 보고 싶은데..





*참고 링크: 국립국어원 누리집에서 한국수어사전검색할 수 있고, 해당 사전에서 동영상으로 직접 수어를 배울 수도 다. (한국어-한국수어 사전, 한국수어-한국어 사전도 시범 사전으로 운영 중이다.)


국립국어원 한국수어사전 (korean.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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