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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책장봄먼지 Jan 08. 2024

청소년 소설에 입덕합니다

내 인생 최고의 청소년들, 안녕

"아직도 만나?"

인연은 늘 그렇듯 특정 시간이 되면 소리도 소문도 없이 페이드아웃. 그 자연스러운 흐름에 크게 아쉬워하지도 깊이 고민하지도 않는 나. 그저 거기까지 연이 닿았으므로 감사하고, 인연에도 수명이 있을 것이므로 다 살아 낸 인연을 굳이 다시 이어 붙이지도 않는다. 그런데 이렇게 먼저 다가가는 법이 거의 없는 내게 한결같이 이리 말해 주는 친구가 있다.


"쌤, 잘 지내셨어요? 저는 이날, 저 날 평일 저녁에, 그리고 언제 언제 주말엔 시간 돼요. 쌤은요?"


좌르르 나와 만날 수 있는 날짜를 일목요연하게 전달해 오는 내 청소년 친구가 있다. 아니, 이미 스물 하고도 중반넘겼으니 세상 나이로는 더는 청소년이 아니다. 그런데도 나에게 아직 그 녀석은 아기다. 아기 같은 청소년이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처음 그 아이를 만났으니 나는 녀석의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모조리 훑어 온 셈이다. 아마 그래서 그 친구는 내 앞에 설 때면 아이가 되는 듯하다. 아이처럼 모든 것이 내 앞에서 투명해지고 솔직해진다.


그 아이를 비롯하여 아직도 가끔 나에게 안부를 묻는 이들도 있다. 인연 배터리를 계속 충전해 가며 어설픈 선생도 선생이라고 따뜻이 나의 건강을 기원한다. 어찌 이렇게 오랜 세월이 지났는데도 인연이 지속될까, 가끔 놀라고 이따금 온 마음이 따뜻해진다. 다른 복은 없는데 내가 '청소년 복'은 그래도 좀 있나 보다.



그 '청소년 복'은 복지관에서 시작됐다. 나는 한때 종합복지관의 방과후교실의 지도교사였다.


처음 내 청소년들을 만났을 때는 소위 세상이 말하는 '비행 청소년' 느낌이 물씬 풍기는 아이들이라 '엄마, 나 집에 갈래.'의 심정으로 하루하루 살얼음판 걷듯 직장에 다녔다. 호시탐탐 좌절과 절망이 내 마음속을 노렸고, 나는 청소년들과 친해지는 법 따위는 생판 모르는 어리숙하고 어리바리한 선생이었다.


그런 내가 3년 4개월 동안 청소년들과 어울렸다. 장난으로 나를 엄마라 부르는 친구들도 생겨났고, 내 도시락을 자기 도시락처럼 '까먹어' 버리는 친구도 있었으며, 애들한테 화 좀 내라며 화내는 기술을 내게 가르쳐 주겠다는 친구도 있었다. 때로는 나를 전속 상담사로 여기며 내게 죽음과 삶을 한꺼번에 토로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그 아이들의 삶이 고대로 내게 배었다. 나는 철저히 '청소년화'가 되었다. 아이들에게 욕도 배웠고 휴대폰 사용법도 배웠고 최신곡도 먼저 배웠고, 그리고 '삶'도 배웠다. 죽고 싶다고 말하지만 죽지 않으려고 애쓰는 아이들이었고 오늘 울지만 내일은 웃는 아이들이었다. 하루의 마지막 순간이 해피엔딩이기만 하면 된다는 아이들, 가족이 무너져도 자기 자신을 무너뜨리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는 아이들이었다.

내 청소년들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이들을 보고 쯧쯧거릴 때가 있었다. 철이 없어 보인다는 어른들의 시선이 꽤 따가웠을, 나의 청소년들. (그런데, 원래 철이 덜 들어야 아이들답고 청소년들다운 것이 아니던가.)


 

이렇게 청소년을 무한 짝사랑하던 내가, 왜 그 직장을 관뒀을까. 내 생애 최고의 청소년들과 뒹굴던 내 인생 하이라이트 순간에 왜 그 무대에서 내려와 버렸을까. 사실 그 당시 몸과 마음이 많이 지친 상태였다. 어느 쪽이 먼저였는지는 모르겠다. 2시간 거리의 직장이었는데 몸이 먼저 파업을 한 것인지 마음이 먼저 백기를 든 것인지.


부차적인 이유지만 그곳에 있으면 정말 돈을 모을 수가 없었다. 적은 급여였고 지출의 누수는 잦았다. 아이들과 뒹굴뒹굴하는 동안 급하게 나가야 할 돈이 의외로 많았다. 내일 당장 짧은 교복 치마 대신 멀쩡한 치마를 입고 오라 하니 아이의 손을 잡고 당장 교복 치마를 사러 갈 수밖에 없었고, 실수로 교실 액자를 깼다 하니 액자값을 복지관 선생인 내가 대신 물어 줄 수밖에 없었다. 오랜만에 엄마를 만난다고 돈을 빌려 달라 하면 쌈짓돈이라도 넣어 줄 수밖에 없었다. 그 외에 말로 다 할 수 없는 사정들이 나를 옥좼다.


 딱히 결재 서류로 올리기 어려운 부수적인 일들이 잡다히 많았다. 내 가족에게 사랑과 돈을 주는 대신 나의 청소년들에게 많은 것들을 던졌다. 던지긴 던지는데 누군가 받고 나면 내 사랑이 금세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그때는 이렇게 착각했다. '내 시간과 노력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평소 퍼주는 사랑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라 자부했는데 알고 보니 아니었다. 퍼주고 퍼주다 어느 날 돌아보니 내 마음까지 텅 비어 버렸다. 아마 흔히 말하는 번아웃(소진)이 온 것이었을 것이다.




복지관을 관두자마자 나는 아이들과 있었던 일을 기록하고 싶어 청소년 소설을 쓰는 글쓰기 수업에 등록했다. 결코 소설 쓸 실력이 아니구나,를 깨닫는 한 주 한 주였지만 그때 완성했던 소설에는 우리 청소년 아이들 하나하나의 삶이 담겼다. 나는 그 아이들의 삶을 받아 적는 것으로 갑자기 관둬 버린 미안함과 죄책감을 조금이나마 덜어 내려 했다.



청소년들과 함께 나뒹굴면서, 그들의 말투를 닮아가고 그들의 표정에 함께 낄낄거리면서 나는 청소년 자체를 사랑하게 됐다. (처음엔 청소년들이 좀 무서웠다. 그 시기 아이들의 되바라짐이나 거센 언어들을 내가 감당이나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었다. 고등학교에 교생 실습을 나갔을 때도 1000%의 겁을 집어먹으며 겨우겨우 교생 실습을 마쳤다.) 임용고사를 6~7년 공부하면서도, 나는 교사가 되어도 문제야, 아이들이 좀 겁나니까. 이리 생각했던 사람이었다.


그런 내가 우리 청소년들을 만난 후 달라졌다. 이제 청소년들을 보면, 그 날아다니는 싱그러움과 그 끝 간 데 없는 날것 그대로의 열정과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고독한 표정들이 너무도 사랑스럽다.



그래서 청소년 소설을 읽는다.

청소년에게 못다 한 나의 이야기가 페이지를 펼칠 때마다 나온다. 내가 못다 전해 준 사랑이 그 안에서 싹트고 있다. 청소년 소설은 나를 대신해서 청소년들에게 사랑을 전한다. 청소년들만의 고통을 위로한다. 청소년들이 아주 가끔만 아프고 대체로 지겹도록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내 바람이 거기에 녹아 있다.

게다가 생각보다 자주 청소년 소설 안에서 나는 내 청소년들을 만난다. 그 책장 한 장 한 장을 넘길 때마다 나는 내 청소년들과 '재회'를 한다.


청소년들을 위해 이야기를 짓고 청소년들을 누구보다도 더 깊이 만나고 있는 청소년 소설가분들이 계셔서 나는 정말 감사하고 행복하다. 청소년의 이야기를 그치지 않고 이어 가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참 아름답고도 놀라운 일이다.



많은 사람이 한 번이라도 청소년 소설을 읽어 봤으면 좋겠다. 다 아는 이야기, 좀 쉬운 이야기라 섣불리 판단할 수도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결코' 아니다. 청소년의 이야기 안에 모두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우리 어른들도 어쩌면 아직 '청소년'이다.

우리는 다 자라지 못했다.

여전히 자라야 하고 여전히 아파야 한다.

우리도 아직 진짜 성장이 고픈 사람들이다.


어쩌면, 우리 어른들이 곧 청소년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바란다.

사람들이 청소년을 더 많이 사랑했으면 좋겠다.



청소년을 사랑하는 일은,

나의 과거를 사랑하는 일이고 나의 미래를 사랑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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