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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책장봄먼지 Jan 07. 2024

부서지지 않는 비스킷

'비스킷'을 읽고

나는 비스킷을 소리로 인지한다. 미약한 숨소리, 힘없는 발소리, 가볍게 스치는 옷감의 소리를 듣고 그들이 주변에 있다는 걸 안다. 일단 그 소리를 인식하면 곧이어 모습이 보인다.(8)



콘셉트

1) 존재감을 단계별로 구성해 실물화하는 설정

2) 예민한 청력으로 발견하는 타인의 존재감


비스킷. 제목 자체가 콘셉트라 할 수 있다. 우리가 평소 흔히 생각하는 과자, '비스킷'을 떠올려 보자. 툭 쳐도, 그저 아작 한 입만 건드려도 부서지기 십상이다. 자신을 지키는 힘을 내지 않으면, 타인과의 거리를 제대로 유지하지 않으면 우리도 '비스킷'이 될 수 있다. 그 '비스킷'을 1단계, 2단계, 3단계로 분류한 설정 자체가 매력적이다.



(예상) 주제

부서지는 존재감에 우리의 온기가 가닿을 수 있다면.



예상 독자 

1) 인간관계가 힘들고 더딘 청소년들

2) 존재감이나 자존감으로 고민하는 이들

*확대 독자: 열패감으로 인해 살아갈 힘을 잃은 이들 누구나



해시태그

#존재감 #비스킷단계 #청력 #이어폰 #아동학대 #소리강박 #관계 #연대



필사

"미안하다는 사과는 너 자신한테 해. 지금껏 좋아하지 않아서 진심으로 미안하다고."(178)

내가 나를 안 좋아하는데 누가 나를 좋아했을까. 내 존재감과 자존감은 우선 내가 먼저 만드는 것.


비스킷은 목숨을 걸고 있어. 겨우 버티고 있다고. 그러니까 내가 다칠 가능성쯤은 괜찮아.(144)

괜찮지 않겠지만 나쯤은 괜찮아,라고 손을, 온몸을, 온 마음을 내밀어 본 적이 있나.


드디어 비스킷을 찾았다.... 어림짐작으로 몸이 있을 만한 곳을 토닥여 비스킷을 살포시 안았다... "무서웠지? 안전한 곳으로 데려다줄게." (187)

보이지 않아도 존재하는 그 무언가의 아픔이나 슬픔을 껴안을 때 '나'는 비로소 '우리'로 나아간다.


우리는 매일 스스로를 지켜 내기 위해 힘껏 노력하지만, 꾹꾹 눌러 담았던 쓸쓸한 마음이 어쩔 수 없이 왈칵 쏟아지는 날이 있다.(217)

왈칵 쏟아지면 한바탕 쏟고 다시 시작해도 되는데 나는 종종 그 살얼음 위를 계속 걷곤 한다.


누구나 비스킷이 될 수 있다. 또한 누구나 비스킷을 도울 수 있다.(218)

"도와주세요." 이 한 마디는, 내가 타인을 향해서 하는 말일 수도, 타인이 나를 향해 하는 말일 수도 있다. 단지 내뱉거나 귀 기울여 듣기가 어려울 뿐. 나도 주인공처럼 예민한 청력, 마음의 청력이라도 기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누군가의 급박함을 지나치지 않도록.




독단적 최종 리뷰

그저 서점을 휘휘 구경하다가 '100% 청소년의 선택'이라는 홍보 문구에 1차적으로 홀렸다. 청소년 순도 100%란 말이지? 그다음엔 책의 맨 첫 장을 넘기다 비스킷 1, 2, 3단계를 언급하는 대목에서 최종적으로 홀렸다. 첫 문장부터 나를 사로잡았다.


"세상에는 자신을 지키는 힘을 잃어 눈에 잘 보이지 않게 된 사람들이 있다. --- 나는 그들을 비스킷이라고 부른다."


어떻게 이런 설정을 생각할 수 있었을까! 부서지기 쉬운 '비스킷'의 특성을 존재감과 연결 짓고 그것을 감지하는 이유가 '나'의 예민하디예민한 청각 때문이라니. 그리고 비스킷을 구해 내는 과정을 '아동 학대'라는 소재 등과도 자연스레 매칭하다니.


병원 탈출 장면에서는 살짝 느슨한 감이 (개인적으로) 없진 않았지만 '유리 멘털', '쿠쿠다스 멘털'이라는 옛 유행어를 흘려보내지 않고 '비스킷 1, 2, 3단계'라는 멋진 설정과 아름다운 마무리로 이끌었다는 게, 참 대단하다 싶었다.


나도 누군가의 비스킷을 알아차리고 그 희미함단단함으로 바꿔 줄 수 있을까.

나도 내 안의 비스킷 단계를 눈치채고 나 자신을 좀 더 선명하게 사랑할 수 있을까.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 '꽃'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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