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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책장봄먼지 Jan 12. 2024

한 걸음 더 쨍그랑

《아래층 소녀의 비밀 직업》을 읽고

내 삶이 이런 것이어야 하나?
지루하고 하찮은 일들이 지속되다가 간간이 눈을 찌르는 건가?(85)




콘셉트

지하(음지, 인종차별, 성차별)에서 지상(양지, 연대, 자기 목소리)으로 올라가는 성장형 구도


낮에는 대저택 하녀로 일하고, 밤에는 칼럼니스트로 일하며 독자들의 고민 편지에 답장을 전하는 촌철살인 칼럼니스트. 열일곱 '조'의 무궁무진은 어디까지일까?



(예상) 주제

1. 자신만의 길, 혹은 '우리'의 길을 내기 위한 열일곱 '조'의 걸음걸음.

2. 중요한 건 피부의 색이나 성별이 아니라 심장에 흐르는 뜨거운 열정의 피.



예상 독자 

1) 핵심 독자: 여성 및 유색 인종의 지위 상승 문제 및 여성 참정권에 관심을 둔 이들

2) 확대 독자: 이방인으로 살아가며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이들, 변두리에 살아가는 삶이 익숙해져 버린 사람들 누구나.



해시태그

#비밀작업 #칼럼니스트 #이중생활 #여성참정권 #인종차별 #촌철살인스위티양 #모자장인 #매듭장인 #꿈많은소녀 #자전거타는친구,노에미 #승마대회참가 #스위트포테이토(말) #대저택하녀 #대저택자녀 #출생의비밀




필사

"너 때문에 불편하다는 숙녀분들이 있어."
"그 이유는 제가...." 재빨리 아시아의 초원 지대처럼 평평하고 흐릿한 빛을 띤 뺨을 손으로 감싼다.
"그건 네가 어쩔 수 없는 거고. 그건 운명이지." 부인의 동그란 두 눈을 마주 바라본다. 내 눈도 동그랗지만, 끝부분은 가늘다.(15)

불편의 이유가 내 피부, 내 인종, '나라는 존재' 자체라는 답변을 들었을 때, '나'라는 이방인은 자신의 마음을 어느 곳으로 돌려야 할까. 정착지를 찾을 수는 있을까.


"조, 나는 네 일솜씨에 대해서는 의심하지 않아. 내가 걱정하는 건, 너와 캐럴라인이 이곳에서 함께 자랐다는 사실이야. 하지만 너희는 동등하지 않아. 너는 잘 알고 있을 거야, 그렇지?"
"당연하죠, 마님." 나는 대답하지만, 그 말은 햇볕에 뜨거워진 식초처럼 따갑다.(164)

누군가의 말이나 마음이 우리의 마음을 따갑게 때릴 때가 있다. 그 소리 없는 폭력에 반(反)하는 마음을 먹을 수도, 혹은 거부하는 행동을 내지를 수도 없을 때는 점점 나의 삶은 더 따가워진다.


조지아주의 위대한 법률에 의하면, 그 누군가는 내가 될 수 없다. 우리는 모두 규칙에 따라 살아야 한다. 로비는 배달부는 될 수 있지만 점원은 될 수 없다. 잉글리시 부인이 나를 모자 제작공으로 승진시켜 주지 않는 것처럼, 페인 부인은 올드 진에게 말 사육 담당자의 자리를 주지 않을 것이다. 스위트 포테이토(말)가 뒤틀린 다리를 갖고 태어난 것처럼 우리는 장애를 갖고 태어났다. 백인이 아니라는 장애. 그것은 스위트 포테이토의 경우와는 달리 교정할 수 없는 장애다.
스위티 양은 의욕을 잃는다. (164)

그러나 그것은 장애가 아니다. '장애물'일 뿐이다. 뛰어넘는 일이 때론 너무 힘들겠지만.


자선 사업으로 여성들을 돕는 것은 아무 저항 없이 받아들여지지만, 여성이 자립해야 한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니. 또 다른 사자가 스위티 양의 얼굴에서 으르렁거린다.

'조'의 으르렁을 응원한다. '조' 안에 숨어서 언제든 가면을 벗고 얼굴을 드러내려는 그 '스위티 양'의 당당한 으르렁을 응원한다.



"내일 올드 진이 폭행당한 걸 경찰에 신고하겠어요."
"난... 올드 진이 원하지 않을 것 같아요."
"왜죠?"
"우리는 어떤 것들은 믿지 않기 때문이에요."
그는 더 많은 설명을 원하는 표정이지만, 평생의 경험에서 얻은 경계심을 설명하기는 어렵다. 정의와 공평은 우리가 아닌 다른 이들을 위한 것이고, 정해진 사람에게만 씌워지는 우산이다. 동양인들은 그저 비를 피하려고 애쓸 뿐, 만약 폭우를 맞게 되더라도, 비가 영원히 내리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염두에 둔 채 그럭저럭 견딜 뿐이다. (347)

그럭저럭 견디는 일을 택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 공평의 권리를 아예 사용하지 않고 살아온 사람들. 그들은 어쩌면 우리 자신이었을 수도 있다.



올드 진은 땅 위에 괴로움이 있을 때는 위를 올려다보라고 말한다. 변화하는 하늘은 괴로움이 영원히 이곳에 머물지 않음을 우리에게 일깨워 준다.(252)

다행스러운 점은 한곳에 머무는 시간이 영원하지는 않다는 것. 우리의 '조'도 숱하게 하늘을 올려다보며 그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독단적 최종 리뷰


으아, 재밌다, 재밌어, 하면서 읽었다. (내 취향의 글이라서.)

422쪽 분량이었지만 흡입력 있는 단편소설을 읽은 듯 순식간에 시간이 흘렀다. 어느 순간에는 좀 더 읽고 싶어서 잠이 오는 게 살짝 원망스러울 정도였다. (아, 이런 기분 정말 오랜만+_+)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이미 '미국인'도 '사람'조차도 아니어야 했던 '유색 인종'의 '조'.

'조'는 모자 가게를 차리는 게 꿈이었다. ('조'는 매듭을 아주 능숙하게 만들 줄 알며, 요즘 말로 '퍼스널 컬러'를 적재적소에 권할 줄 아는 소녀다.) 그러나 '조'에게는 어느 날 갑자기 해고되는 일이나, 대저택 하녀로 다시 들어가 일해야 하는 경제적 빈곤 따위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생의 흐름이었다. 우리의 '조', 언제까지 이렇게 구부린 채 살아야 하나.


문제는 주거 공간 자체도 구부려야 한다는 것. 마음을 온통 구부리며 몰래 숨어 살아야 하는 공간, 지하. 그곳에서 온 생을 일궈 온 '조'. 인쇄소를 운영하는 '벤 부부'와 그의 아들 '네이선'의 이야기를 배관을 통해 엿들으며 유아기, 유년기, 청소년기를 보내온 열일곱의 '조'. 그러던 어느 날, '조'는 인쇄소 운영이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된 뒤, 필명 '스위티 양'으로 분하여 자신의 칼럼을 쓰기 시작한다. 신문에는 드디어 '스위티 양'이 '조'라는 이름을 숨긴 채 세상을 향해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중간중간 스위티 양 앞으로 고민을 보내오는 편지들이 나오는데, 이게 압권이다. 전체적인 맥락에서는 여성 평등에 관한 굵직한 이야기나 인종 차별의 씁쓸한 뒷맛에 대한 안타까움을 주로 다루지만, 그 사이사이 양념처럼 들어가 있는 '스위티 양(조)'의 답장들이 아주 '재미지다' +_+ 질문과 답변 사이에서 스위티 양의 빛나는 재치를 확인할 수 있고, 더 나아가 세상을 '바로' 보려는 강인하고도 따뜻한 시선을 동시에 목격할 수 있다. 게다가 유머러스한 문제 해결 능력까지!(소설의 양념 같은 부분인데, 양념이 무척이나 풍성해서 '소설 읽기'라는 이 식사가 아주 만족스러울 정도였다.)


후반에 나타난 출생의 비밀(?)이나 급작스러운 비밀 공유(및 공개)가 살짝 아쉽긴 했지만 그럴 만했던 전개였고 주제를 제대로 드러내기 위한 장치였다고 생각한다. 여하튼 읽는 내내 '조'를 응원하며 '조, go, go' 하게 되었던 소설. 이런 소설을 가져다 번역하고 출판해 준 출판사에 어쩐지 고마운 마음까지 들었던 소설이었다.



그림자로 살아가며 넘어지고 가라앉는 일이 부지기수였던 '조'. '조'와 같은 소녀들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존재했을 것이다. 지금도 우리 주변에서 '나' 혹은 '너'의 얼굴들로 살아가고 있을지 모르고, 앞으로도 '조'의 얼굴을 한 채로 계속해서 태어날는지도 모른다. 그 숨은 그림자가 세상 밖으로 나와 자신의 오롯한 그림자를 햇빛 아래 당당히 드러내기를 바란다.


시간이나 공간을 뛰어넘어 청소년 소설 자체의 매력을 느낄 수 있었던 소설, 《아래층 소녀의 비밀 직업》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자마자 바로 쓰는 따끈따끈한 독후감이라, 나조차도 뜨듯한 심장이 아직 식지 않은 채 그대로다.



오늘 밤만큼은 '조'의 심장이,

그 열정의 피가 내게도 옮겨붙을 듯하다.



'조' 고마워!



그녀들의 강철 같은 의지는 빛나지 않을 수 있지만,
망치로 두들겨 맞으면 크게 울린다.(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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