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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책장봄먼지 Jan 15. 2024

사과의 사생활

가진 것이 옳은 것이 아니고 옳은 것을 가지는 것

한동안 그 애의 우울한 뒷모습을 조마조마하며 지켜보기도 했다.
나도 엄마가 없으니까, 엄마가 없는 마음에 대해 잘 안다. 나는 심지어 아빠도 없으니까 그 부분이
걔한테 위안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14)



<<사과의 사생활>> 조우리 작가님의 소설집이다. 여러 단편 가운데 인상적인 세 편을 골라 이야기를 나눠 보려 한다.(참고로 '조우리' 작가님은 두 분이다. 두 분의 소설 모두 매력적이다.)




1. 할머니의 유튜브 재생목록


콘셉트

1. 할머니의 연애와 손주들의 우애를 다층적으로 구성

2. 긍정적으로 확대 및 성장해 가는 '혼자였던 마음'의 변천사


(예상) 주제

성별, 나이, 가족 관계 등과 상관없이 존중받아야 하는 <따뜻한 물컹거림>


예상 독자 

1. 핵심 독자: '지금' 사랑하고 싶은 사람들, 지금 막 친구가 생긴 사람들

2. 확대 독자: 누군가의 '재생목록'이 굳이 궁금한(?) 사람들


줄거리 미리 보기

할머니가 수상하다! 연애가 시작된 것인가? 나는 상대 할아버지의 손녀와 본의 아니게 짝짜꿍이 되어 이들의 연애를 말리기 시작한다. 아니, 근데 말리려고 했는데 자꾸 말려 들어가는 이 시추에이션은 무엇? 나는 과연 할머니의 유튜브 재생목록까지 파헤치면서 할머니의 뒤를 캘 수 있을까?!



필사

그 애 할아버지는 참 착해 보였는데 손녀딸은 잘못 키웠다. --- 한동안 그 애의 우울한 뒷모습을 조마조마하며 지켜보기도 했다. 나도 엄마가 없으니까, 엄마가 없는 마음에 대해 잘 안다. 나는 심지어 아빠도 없으니까 그 부분이 걔한테 위안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말을 건네진 못했다. 나는 늘 그런다. 중요한 말들을 그냥 삼킨다.(14)

내가 출근길에 눈물에다 콧물까지 흘린 부분. 아, 나의 아픈 부분을 도려내서라도 남을 위로하고자 하는 그 따뜻한 마음. 그런 마음을 무심히 건네는데 왜 이렇게 아프고 아름다운지.. 내가 이 작가님을 애정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2. 에버 어게인


콘셉트

1. 가상 세계를 통한 재회

2. 기술의 진보와 인류애의 진보를 병렬적으로 배치


(예상) 주제

1. '절대, 다시는(에버 어게인)' 일어나선 안 될 것들에 관한 휴머니즘적 경고

2.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만난 절박하고도 절절한 그리움


예상 독자 

인간의 마음보다 앞서가는 AI 기술에 관심 있는 사람들, '인간다움'과 '기술다움'을 고민하는 사람들


줄거리 미리 보기

다시는 만나지 못할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손수 음식을 해 간다. '가상 세계에선 어차피 못 먹어요.' 하지만 가족의 마음은 무엇이라도 두둑이 먹이고 싶다. 어, 그런데 AI가 이상하다? 분명 여기서 영상이 멈춰야 하는데 그날 이후 벌어진 사건이 재생된다. 과연 AI가 접신이라도 한 것인가? 프로그램을 만든 사람들은 과연 어떤 선택을 내렸을까? 인턴 윤세라는 그래야만 했을까.



필사

VR에 다녀간 영혼.

세라는 좀 전에 자신이 친 문구를 한참 들여다봤다. 폰트도 메시지도 너무나 적절하다.
'제사 음식을 먹었으면 밥값은 해야지.' (...)
그러라고 배운 온라인 마케팅이고 알고리즘이었다.(89~92)

2차 콧물+눈물을 유발했던 부분. "그러라고 배운 알고리듬(알고리즘)."

우리는 유희를 위해, 혹은 우리 자신을 홍보하거나 과장하기 위해 종종 일련의 기술을 사용하곤 한다. 그런데 이 단편에서는 이러한 기술들 안에 '왜'라는 질문을 숨어 있음을 알린다. 사실과 진실 사이를 제대로 파헤치는 것에는 기술의 힘이 필요하고 나아가 그 기술을 사용하는 인간의 힘이 필요하다. 기술의 진보는 어디를 향해야 할까. 첨단의 끝에 서 있으면서도 계속해서 더 진보하려는 우리 인간들. 우리가 배우고 달라져야 하는 이유는 일류가 아니라 인류가 되기 위해서다.





3. 사과의 사생활


콘셉트

자유와 해방 사이에 숨겨진 인간의 욕구


(예상) 주제

1. 굳이 은밀할 필요 없는 '어떤' 사생활

2. 성별이나 나이로 선을 긋기보다 사람 자체로 존중받아야 할 누군가의 당당한 욕구(사람을 차별해 가며 권리를 인정해서는 안 될 터.)


예상 독자 

1. '나'의 권리가 궁금한 청소년들

2. 청소년의 성교육에 관해 다시 한번 제대로 인식하고 싶은 사람들



필사

여성 해방이라더니 여성 청소년은 해방 좀 되면 안 되는 건가. 미성년자 아이돌이 엄청 야한 옷을 입고 나와 트월킹 추는 건 되고, 이건 안 되고? (151)

안 될 이유가 있나? 나도 '사과'의 이야기를 들으며 결국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독단적 최종 리뷰


최애 소설가님의 작품이라 아무 설명도 보지 않고 책 구입. '장바구니'도 거치지 않았고 심지어 '구매목록'도 거치지 않았다. 직접 발품을 팔아 내 품 안으로 들어온 책.


출근길 복잡한 전철 안에서 이 책의 첫 장을 펼쳤을 때는 내가 마스크에 오물(?)을 남기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아, 그런데 이게 뭔가. 울다가 웃다가, 다시 오열 비슷한 것을 하다가... 절로 고개를 끄덕이다가 역시 결국 이런 것이 소설이 아닌가, 감탄하며 읽었다. (너무 '추앙'하였나. 그런데 나는 이 소설들을 읽으며 소설은 정말이지 이렇게 써야 하는 게 아닐까, 했다. 난 이런 류의 소설은 죽었다 깨어나도 못 쓰겠지만 죽기 전에 이런 소설을 평생 왕창 읽을 수 있다면, 이 어찌 기쁘지 아니한가!!)


'할머니의 유튜브 재생목록'은 제목부터 따스하고 궁금하다. 할머니의 연애를 막으려다 부침개만 맛있게 먹어 버린 '나'와 친구 유진. 나(김효리)는 친구 유진과 할머니 및 할아버지 연애 저지 모임을 결성한다. 이 모임은 목적을 달성했을까?

'효리'가 할머니의 연애와 친구 유진을 바라보는 시각은 시시때때로 변한다. '효리'가 세상에 마음의 문을 열어 가는 그 과정 하나하나가 순수하고 따듯하고 울컥하다. 이 단편이 아주 긴 장편소설이었으면 어떨까, 읽으면서 정말 더 오래 행복하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까지도 했다.


'에버 어게인' 단편은... 하.. 이 부분에서는 다른 의미의 눈물이 질질 흘러 내 출근길 마스크가 습해졌다. 이 단편은 청소년 이야기로만 그치지 않는다. 사회 문제를 기술 문제와 인류애의 문제로 확대한다. '절대 다시는' 벌어져서는 안 될 이야기가 아프고도 뾰족하게 묘사된다. 우리가 AI와 알고리듬(알고리즘)의 홍수 속에서 잊지 말아야 할 '기준'들에 관해 고민하게 하는 소설이다.



'사과의 사생활'은 '몸의 말들', 그리고 '이것은 나의 피'라는 책들과 함께 읽어 보길 추천한다. 우리는 몸이 하는 말을 외면해 왔다. 사회의 규율과 나 스스로 만든 제약 등로 인해서.

처음 이 단편을 펼쳤을 때는, '사과의 사생활'이 이렇게 뜨겁고도 은밀한 이야기일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읽으며 약간 낯이 뜨거운 장면이 살~짝 있긴 했지만 그렇게 느끼는 것 자체가 나의 속박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도 '작가의 말'을 읽으며 공감했다. '여성'과 '청소년'이라는 이중 지위가 붙었을 때 우리의 '여 청소년'들은 조금 더 엄격한 잣대에 휘둘린다. 그들의 권리가 '소외'또는 '의무'라는 이름으로 상당히 축소되거나 은폐, 왜곡될 수 있겠다, 싶었다. 나부터 열린 시선이 필요하다. 청소년, 특히 여자 청소년의 성(性)은 뒤로 숨어야 할 것이 아니다.

정말 신선한 소재였고 묵직한 의미가 있는 단편이었다. 성 인지 감수성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남녀를 막론하고 이 단편을 읽어 보았으면 좋겠다.

  




모든 게 두 개로 보일 땐 한쪽 눈을 감고 세상을 바라보면 되지. 네 방식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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