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으로만 끝났다

퇴사 백만 년 전_퇴사가 뭐예요?

by 봄책장봄먼지
“제가 대체 왜 이러죠?”


강의 시연을 한다. 이곳은 면접장이다. 어떤 남자 둘과 어떤 여자 둘이 나를 쳐다본다. 생각과 달리, 아니 어쩌면 생각한 그대로 나는 또다시 떤다. 원래도 작은 키가 뭇사람들 앞에서 자꾸만 더 작아진다.


“다, 다시 하겠습니다.”


그들은 특별히 저지하지도, 특별히 반기지도 않는 표정으로 나의 반복 시연을 잠자코 기다린다. 사람들의 표정이 ‘무(無)’에 가까울수록 내 표정은 그들을 따라 굳는다. ‘가슴’이란 글자 앞에 ‘새’가 붙고, 조마조마한 시간이 역류성식도염을 일으키듯 메스껍게만 흘러간다. 시연을 마쳤지만 신물이 올라오고 두통이 몰려온다. 이번 면접도 아찔하다.


“여기서 어떤 일을 하게 되는지 혹시 아시나요?”


질문에 답을 해야 하건만 면접 전 강의 시연을 망한 뒤로(그냥 망한 정도도 아니고 ‘폭망’의 수준) 내 신경은 이미 그쪽으로만 쏠려 있다. 그래서인지 면접 위원들에게 TMI(Too Much Information)를 남발하며 첫마디를 뗀다

.

“제가 좀 전에 강의 시연을 잘 못해서 지금 뭔가 불길한 예감이 들긴 하지만, 말씀하신 그 질문에 답변을 하자면, 음, 어, 음…….”


나는 면접의 문을 닫는다. 나가려는 내 뒤꽁무니에 대고 누군가 음료수 한 병을 건넨다. 음료수에는 ‘그녀는 프로다’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이런……. 오늘의 내 상황과 너무도 잘(?) 맞아떨어져 실소 아닌 실소가 나온다. 이번에도 나 스스로 내 복을 걷어차며 내 문을 황급히 닫는다. 기회가 와도 어쩐지 수상쩍어하고, 기회가 날아가면 역시 그럴 줄 알았다고 재빠르게 체념한다. 그러다 아쉬움을 쩝쩝거리며 닫힌 문을 돌아본다.


이상하게도 한숨과 안도가 같이 몰려온다. 일하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일하지 않는 이 상태가 좋은 걸까. 그저 이제부터는 면접을 망한 핑곗거리나 찾아보자고 다짐을 한다. ‘평소에도 남들 앞에서 말하기 싫어하는 주제에 무슨 강사를 하겠다고 나선 건지 모르겠다’는 핑계를 가장 먼저 떠올린다. 내가 던진 출사표가 꽤나 우습기만 하다. 나는 손에 쥔 그 표를 누구도 보지 못하게 얼른 내 안으로 꼬깃꼬깃 꾸겨 삼킨다.


휴대폰을 켜니 ‘면접은 잘 봤냐?’는 가족과 친구들의 문자가 와 있다. ‘뭐 (당연히) 잘 봤겠지!’라고 말해 주는 사람은 없고, 걱정과 우려 섞인 내용뿐이다. 이게 나다. 누구든 걱정해야 하는 존재, 그리고 끝까지 해내고야 마는 것과는 거리가 먼 존재. 뭐든 문 앞에까지 가 놓고 다른 사람에게 영광을 쥐여 준다. 그러고는 그만 어이없게 빈손으로 되돌아 나온다.


‘이렇게 경험도 쌓고 하는 거지, 뭐.’


라고 말하기에는 좀 멋쩍은 나이다. 나는 오늘도 내 생에 가위표를 크게 그릴 일만 만든다.



그래, 이게 나다. ‘거침없는 성공’이나 ‘한 방에 합격’, 혹은 ‘역시 운이 좋게 safe!’와 같은 문장들은 내 생(生)과는 거리가 멀다. 나는 ‘망(亡)’자를 내 채팅방들에 남발하며 내 SNS 프로필을 씁쓸히 수정해 본다.


꿈으로만 끝났다.


‘마음에 안 드는 직장은 나를 오라고 하고(물론 드물고), 내가 좋아하는 직장은 나를 피하려 하니(왠지 좀 노래 가사 같군)’, 이러한 직장 구하기 대작전은 왠지 간사한 연애 놀음만 같다. 곧이어 이 취업준비생은 머리를 뒤흔들며 ‘꿈이고 연애고 뭐고’ 어서 취직이나 하자고 자신을 타이른다. 휴대폰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끄적이며 공연히 감정에 휘둘리지 말자. 이 세상에 낭만적 면접 따위는 없다.


자, 다음 행선지는 저곳이렷다!


나는 정신없이 내 정신을 챙겨 들쓰고는 면접장 한 곳을 황급히 빠져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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