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간단히 환영회를 하고 인수인계만 하면 될 것 같아요. 수업은 다음 주부터 하시면 됩니다.”
자다가 두들기는 봉창 소리가 전화기를 타고 내 귓구멍에 와 박힌다. 나는 왠지 뭘 좀 잘못 들은 것 같고, 수화기 속 저 사람은 심히 뭘 좀 잘못 먹은 것 같다. 그렇게 면접을 망했는데 합격자가 나라고? 나는 이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볼을 비틀다 말고, 곧이어 곧 끊어지려는 전화기에 대고 나는 큰절을 하듯 "감사합니다."를 연발한다.
잠, 잠깐만. 그런데 말이지,
흠. 고맙긴 한데 이건 왠지 나답지 않다.
양심은 있는지 '내 안의 나'가 지금의 이 상황을 이렇게 진단해 본다. 과연 나라고? 어쩐지 좀 이 행운이 두렵다. 잘 해내고 당당히 얻은 타점이 아니라, 어쩌다 빗맞은 타구가 안타를 친 느낌이다. 게다가 상대 수비수의 실책으로 우연히 내가 홈을 밟은 듯하다. 이런 식의 경기 운영으로 점수를 내도 괜찮은 걸까? ‘이기면 장땡’인 단발성 행운으로 장기간 내 경기, 오래도록 사랑받을 수 있을까, 과연?
흠흠. 이건 정말 내 인생답지 않은 흐름이다. 이렇게 운 좋게 원하던 곳으로 입성을 하는 게 정말 내 인생이라고?
-저기요. 전화 잘못 거신 것 같은데요? 합격자 연락처와 이름 다시 확인해 보세요. 탈락자 두 번 죽이는 일 하지 마시고요.
-아니요. 당신이 합격한 것 맞는데요?
-아니라니까요. 맞다고 해도 당신네들 아주 사람 잘못 봤어. 나 같은 사람을? 아주 똥 밟은 거라고, 응? 알아들어요, 두유 언더스탠드, 왓 아임 쎄잉?
이렇게 솔직히 고백했어야 한다. 나는 그 자리에 어울릴 만한 사람, 능숙하게 일을 완수할 만한 사람이 아니다. 나는 양심 있는 지성인답게 그들의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했어야 한다. 그러나 나는 내면의 소리가 삐져 나오려는 문 틈을 기어이 닫고는,
‘뭐, 그, 그래도, 이왕 온 기회인데 말이지. 어찌 되었든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그만 아니던가.’
나도 사람인지라 주는 것은 덥석 물고 놓지 않으려 한다. 혹시, 아주 혹시나 이런 식으로도 꿈 같은 게 이뤄질 수 있는 게 아닐까. 잘못짚은 헛다리로도 금메달을 거머쥐고, 뒤로 넘어져 깨진 코가 외려 깔끔한 재건 수술 후 더 예쁜 나를 만들어 주는 일. 살다 보면, 혹여 내게도 이런 뜻밖의 일, 일어나 주지 않을까?
“아부지, 어머니. 저 합격했대요.”
자, 이제 드디어 부모님께 보은할 기회가 왔다. 갑자기 어깨가 봉긋 솟는다. 나는 이번에도 휴대폰을 들어 SNS 프로필 화면으로 들어간다. 거기서 어제까지의 프로필 메시지, ‘꿈으로만 끝났다’를 찾아내고는 ‘~났다’라는 글자를 백스페이스로 지운다. 그러고는, ‘꿈으로만 끝난 줄 알았는데 대반전’이라는 문장으로 내 삶을 고쳐 쓴다. 그리고 이왕 쓰는 거 느낌표까지 알차게 얹는다.
아, 내 인생, 가끔은 운 좋게 오작동을 일으키기도 하는구나.
이제 나, 이 오작동으로 원하던 목적지에 일단 도착한다. 그 목적지가 나에게 천국이 될지 지옥이 될지 그건 좀 더 두고 봐야 하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