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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책장봄먼지 Jul 01. 2024

소소한 테러에 대처하는 법

급했다. 늦었다. 세 사람 자리를 맡아야 한다. (아, 나는 지금 성당에 가는 길이다.)


뒤쪽에 앉으면 키가 작아 불편하다. 그리고 우리 앞에 몸을 흔드는 특정 아주머니가 앉으면... 우리 엄마가 심히 괴로워한다. 1시간 내내 성령에 취하신 것뿐이지만 앉으나 서나 몸을 흔드신다. (그분이 오신 것일까.) 아무튼 신경에 좀 거슬리긴 한다. 그러니 빨리 가야 했다. 그러나 나는, 우리는 오늘 늦었다.


"나, 먼저 달려갈게!"


일주일에 겨우 한두 번, 아니 요즘엔 보름에 한두 번 뛸까 말까, 하는 어설픈 달리기 실력을 발휘해야 할 때다! 나는 호기롭게 부모님께 '달리겠습니다'를 외치고 곱게 차려입은 채로 달리기를 시작한다. (성당에 갈 때는 웬만하면 내가 아닌 깔끔한 나로 변신한다.)

'합..헙... 언덕..이다. 할 수 있다!'

나는 언덕도 약한 달리기 자세로 기어오른다. 셋이 나란히 앉으려면 더 서둘러야 해!


"앗.. 뭐야! 어푸푸. 뭐, 뭐, 뭐야?"


누가 달리던 나를 친다. 조금 과장해서 느끼기에는 '가격'의 수준이다. 얼굴에 손을 가져다 댄다. 손을 보니 웬 진흙이 묻어 나온다. 뭐, 뭐지?

위를 쳐다본다. 아무도 없다. 새도 없고.. 뭐 청설모가 지나갔나? 아니 이거 새똥인가? 그런데 내겐 거울이 없다. 휴대폰을 뒤진다. 셀카 모드로 돌린다. (당황해서 증거 사진 남길 생각도 못 한다.) 거울을 가지고 다니시는 엄마에게 전화를 건다.

-전화를 받지 않아...


휴. 어디 어디 묻었는지 잘 안 보이는데.. 엄마는 무음, 아빠는 성당 갈 때 휴대 전화를 안 가져오신다. 다행히 물티슈는 있다. 화장한 얼굴을 물티슈로 벅벅 닦으며 진흙을 긁어낸다. 바람이 세게 치던 일요일 아침. 나는 나무에게 진흙 테러를 당한다. 나무에게 삿대질을 할 시간도 없다. 그래도 씩씩거리는 투덜거림은 잊지 않는다. '아이씨, 뭐야, 이게!'


얼굴 어딘가에 진흙 찌꺼기가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 정밀한 확인은 불가하다. 그냥 대강 휴대폰으로 보이는 부분만 닦는다. 아, 물티슈는 있는데 휴지를 깜빡했다. 엄마한테 휴지가 있겠지만... 나는 그냥 더러운 '진흙물티슈'를 가방 주머니에 쑤셔넣는다. 그러고는 다시 나의 걸음을 부추긴다.


성당에 앉아 자리를 맡고 보니 윗옷에도 하늘빛 청바지에도 진흙덩이가 고이 묻었다. 느린 걸음으로 도착하신 부모님을 보자마자 조용히 무용담(?)을 늘어놓고 화장실로 향한다. 비누질로 청바지 밑단에 묻은 진흙을 얼른 빨아 보지만... 이거 무슨 염색의 수준이다... 잘 안 지워진다. 젠... 이라는 두 글자의 욕이 나오려 한다. (하지만 이곳은 성당이다. 욕을 하려거든 미사 끝나고 나가서 해야겠다.)



미사가 끝나고 큰 소리로 남들 다 들으라는 듯(?) 내가 당한 진흙 테러를 부모님께 떠벌린다. 남 일이라 그런지 엄청 걱정해 주신다거나 공감해 주시지는 않는다. 아랑곳 않고 엄청 황당했음을 계속해서 고백한다.


"똥 아니라서 다행이네."

엄마의 초긍정 답변을 듣는다. 사실 나도 고개를 끄덕이긴 한다. 아까 진흙으로 가격당할 때 '흰색'이나 기타 다른 색이 안 섞여 있어서 다행이다 싶었다. 적어도 내게선 진흙 냄새만 났을 테니까. 그런데 왜, 진흙이 하늘에서, 아니 나무에서? 그리고 왜 그게 하필 나에게??



살다 보니 이런 소소한 테러도 다 당한다 싶었다. 오전의 일을 잊고 다시 저녁에 산책길에 나선다. 도서관 가서 일주일 치 전투식량(대출할 도서)을 준비할 계획이다. 어무니가 먼저 가서 책을 반납하라 하시기에 이번에도 아침처럼 서두른다. 그렇게까지 서둘 필요는 없는데 서둘러 또 약간의 언덕을 오른다. (도서관 옆에 바로 산이 있어 약간의 언덕이 있다.)


자, 평지에 도착! 하고 기뻐하려는데 갑자기 물컹...

뭐, 뭐지?? 이, 기... 기분 나쁜 물컹거림은...?

발바닥을 확인한다. 이건 땅을 밟는 느낌은 결코 아니다.



(아, 이번에는 증거 사진을 남겨 두었다.)



"똥 밟은 게 아니라 다행이네."

(아침에 들었던 대로) 엄마의 말을 스스로에게 대신 전해 본다. 자세히 보니 풍선껌인 듯하다. 이건 어린아이의 껌이 아닐까. 색깔도 하늘빛 고운 색깔이다. 밟아도 이런 고운 것(?)을 밟아서 다행이라 해야 할까?

근데 이건 진흙보다.. 떨어진다. 물티슈로 해결이 되네.. 밟고 밟아서 언젠가 저절로 나가떨어지길 바라는 수밖에...  



거참. 행운(?)이 겹친다.

이런 일이 하루에 두 번 일어나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내게는 거의 로또 당첨 확률처럼 느껴진다.



어제는 참...

운수 좋은 날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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