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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책장봄먼지 Oct 09. 2024

2인 이상 사용 부탁합니다

못다 한 비혼 이야기

<2인 이상 부탁드립니다>


아는 동생과 카페에 갔다가 예쁜 창가 자리에 붙어 있는 문구 하나를 보았다. 그래, 이 넓은 자리에 혼자 앉는 것은 민폐겠지.


읭? 나 그럼 여기 혼자서는 못 와? 아니 저기 구석에 앉아야 해? 여기에도 앉고 싶은데?


창문을 활짝 열어 놓으면 중앙 거리가 훤히 내다보이는 전망 좋은 카페였다. 이번에도 저번에도 친구 및 아는 동생과 왔었던 터라 해당 문구를 소홀히 여겼다. 그러나 이제 와 다시 보니 2인석(혼자 온 사람이 앉을 수 있는 자리)은 출입문 쪽 혹은 벽과 붙은 쪽이었다. (물론 요즘엔 1인석이 창가에 바싹 붙어 있는 경우도 많다. 다만 다닥다닥 옆사람과의 거리가 좀 비좁아야 하지만.)


대체로 풍경만 조금 포기한다면 1인석도 편하다. 패스트푸드를 먹을 때라면 더더욱. 요즘엔 햄버거 가게가 위치한 동네 사정에 따라 1인석을 창가 쪽으로 배치해 주는 곳도 있다. (하지만 여전히 1인석은 벽으로 몰아붙여야 배치가 수월하다는 듯 일렬로 벽을 향해 있는 경우가 많다.)


<2인 이상 이용 부탁드립니다=1인 이하는 이용 자제 바랍니다>


그래, 내가 사장님이었어도 장사를 위해, 원활한 운영을 위해 이런 방침이 필요했을 것이다. 카페는 순환이 생명인데 혼자 와서 4인석을 떡하니  차지하는 것은 좀 많이 무리이긴 하다. 게다가 노트북과 노트북 받침대, 무선 블루투스 키보드까지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 어떤 1인을 보게 된다면, 사장님들께서는 순간 당혹스러우실 수도 있다.


그러나 1인의 입장에서 볼 때는 ‘인원 제한’이 때때로 ‘1인 제한’이 되기도 한다. 2인 이상이 시켜야만 나오는 음식이라든지 조금 전 언급한 사례처럼 2인 이상 이용해야 하는 자리라든지.


문득 ‘1인의 유연한 자세’에 관해 생각하게 해 준 어떤 일이 떠오른다. 오랜만에 친구와 단둘이 신촌으로 나들이를 갔을 때다. 전체 건물이 모두 하나의 카페였는데 3층이 좀 번잡스러워 다시 1층으로 내려와 자리를 잡게 되었다. 1층에 와 보니, 2인석만 남아 있었는데 부피가 큰 가방들을 놓을 곳이 없었다. 의자가 두 개뿐인 2인석 자리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떤 어여쁜 어린 처자가,


"여기 앉으세요."

하고 자리를 바꿔 주는 것이 아닌가!

“응? 괜찮은데? 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오예, 4인석이다.)”


그분은 4인석에서 혼자 앉아 있었는데 ‘굳이’ 우리와 자리를 바꿔 주는 ‘배려’를 택했다. 황송한 배려 덕에 기분이 몽글몽글해졌고 그녀의 앞날에 축복까지 빌게 되었다. (바○프레소 신촌점 1층 그때, 그녀 고마워요.)


그런데 십 분쯤 지났을까? ‘1인’인 줄로만 알았던 그녀의 일행이 도착하였다. 응? 자신도 일행이 있는데 우리한테 자리를 양보? 우리가 가방이 버거워 보였나?


그녀는 ‘1인’이었다가 곧 ‘2인’이 되었다. 어디에 앉든 상관없어 보이는 그녀에게는 ‘2인 이상’의 제한이든 ‘4인석입니다’의 통보든 그 어떤 것도 문제가 되지 않을 듯했다. (아마, 그녀의 음료는 어느 자리에서건 달콤하지 않을까?)


그래, 1인석이든 2인석이든 4인석이든 중요한 것은 인원수가 아니라 남을 생각하는 마음이다. ‘배려’라는 것이 더 중심이고 핵심이다. 언제든 우리는 1인이었다가 2인이었다가 때론 3인, 혹은 4인의 자리에 다녀갈 수도 있는 사회적 동물이다. 어떤 인원수 내에 있건, ‘배려’라는 귀한 마음을 놓지만 않는다면 ‘2인 이상 이용해 주세요’라는 말에 갸우뚱거릴 필요도 없을 것이다.


(뭐, 사실 큰 불만은 없다. 꼭 맛있는 것을 먹어야 하거나 멋있는 곳을 기필코 가 봐야만 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집이 좋고 내 방이 좋은 타입이다. 집 밖이라 해도 산책길이 좋고 도서관이 좋다. ‘앉아야 하는 의자의 개수’가 정해진 곳에 들어가기보다 아무 데나 내 자리일 수 있는 잔디밭이나 공원 벤치, 그리고 도서관의 빈틈 구석구석이 더 좋다.)


그래, 그날 내가 앉은 자리가 내 자리이다. 다녀간 흔적도 모르게 잘 치워만 놓는다면, 다음 사람을 위해 스스로 ‘배려’를 택하기만 한다면 1인이든 2인이든 큰 상관은 없을 것 같다. 그런데…….



그……그래도. 예쁜 창가 자리에 넓적하니 앉아서 음료를 좀 많이, 자주 시켜 먹는다면? 그럴 때라면?



거기 자리 있나요?

혹시 저 혼자 앉아도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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