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지팔지꼰의 매듭

정해연 장편소설 <매듭의 끝>

by 봄책장봄먼지
드디어 매듭을 풀었다. 그러나 너무나 오랫동안 묶여 있던 매듭은
풀어도 그 자국이 남았다. (309)


(스포 주의)


다음 중 어느 모자(母子)가 최악일까요?


<1번 모자(母子)>

-어긋난 모정을 보이며 아들의 인생을 권력과 돈으로 부활시키려는 어머니. 그리고 그에 응답(?)하듯 온갖 '양아치 짓'은 다 하고 다니다 끝내 살인사건에 휘말려 (다 큰 사람이) 엄마한테 전화해서는 한다는 말이 고작 "나 오떡해?"인 아들. 게다가 이런 아들도 아들이라고 죄까지 대신 뒤집어쓰려는 눈물겨운(?) 어머니 사랑. (이 모자 관계에서 핵심 포인트는 '어머니'가 '가진 게 많은 자'라는 점.)

<2번 모자(母子)>

-어릴 적 아버지에게 일어난 사고 후 어느 날부터인가 가족을 의심하기 시작한 아들. 그리고 아버지 사고를 판도라의 상자처럼 꽁꽁 봉인해 두며 자기 아들은 절대 그 상자 처에는 얼씬도 못 하게 하는, 다소 답답한 캐릭터의 어머니. 이 두 사람은 계속해서 사건의 매듭을 꼬아 대며 살아간다. 아들은 고2 때부터 집을 나와 어머니를 쌀쌀맞게 대하고, 어머니는 결코 아들 앞에서 매듭 풀 생각 같은 건 하지도 않는다. (이 소설의 주인공이기도 한 '인우'는 어머니한테 '제발 이 매듭 좀 풉시다' 하고 '소리 없는 아우성'을 쳐 댄다. 나는 이 모자의 심정을 이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갸우뚱, 이해가 어렵다. 누군가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을 감추었다 나중에 다시 내어주며 '사실 이거 거였어, 네 매듭이야.' 이런다면 좀 많이 혼란스러울 듯하다.)


<3번 모자>

병환을 이유로 잘못된 효심을 발휘하여 '수사 정보'에까지 손을 대다가 '지팔지꼰(지 팔자 지가 꼰다)'이 되어 버린 아들. 그리고 소설에 표면적으로 등장하진 않지만 자신 때문에 아들이 징계를 받는다는 사실을 곧 알게 될 그의 어머니.


어느 쪽이 최선일까, 아니...

어느 쪽이 차악일까??


이 소설에는 '잘못의 매듭'과 '진실의 매듭'이 등장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잘못의 매듭'이 있던 자리에 상흔이 생길까 두려워 '진실의 매듭'을 풀 생각은 하지도 않고 '잘못의 매듭'을 거듭하다 보면 어느새 '지팔지꼰'이 되는 어리석음을 범하게 된다. 특히 가족 사이의 매듭은 오래 숙성된 매듭인 경우가 많기에 그 매듭을 푸는 일은 좀체 쉽지가 않다. 위에 언급한 세 모자 역시 '진실의 매듭' 쪽으로 돌아서지 않아 서로에 대한 오해나 실망, 좌절이 쌓여 온 상태이기도 하다.


매듭은 사람을 화나게 한다. 언제 꼬였는지도 모르겠고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럴 때 찾아야 하는 게 '매듭의 끝'이다.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그 끄트머리를 손에 잡을 수만 있다면 의외로 우리 삶을 술술 풀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소설에서는 '매듭은 푸는 게 아니라 불 싸질러 버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모자(母子)도 있었고, 끝까지 매듭을 들키지 않으려는 모자도 있었다. 그러나 어떤 매듭은 끊어내거나 심지어 도려내야 하고, 또 다른 어떤 매듭은 그 끄트머리를 찾아서 처음부터 찬찬히 풀지 않으면 제대로 풀리지 않는 매듭이기도 하다.


1번 어머니도 2번 어머니도 어떤 식으로든 매듭을 풀긴 풀었다. 그러나 결과는 달랐다. '비뚤어진 모정'이라는 매듭이 한쪽에서는 '파국'을, 다른 한쪽에서는 '평화'를 가져왔다. 매듭이 풀린 자리에 상처가 남았다면 그 자리에는 아름다운 매듭을 남기면 된다. 시작과 끝을 알 수 있는 매듭을.


끝으로 이런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지팔지꼰'이 조금 길어지는 상황이라 마음이 어수선한 사람들이 있다면, 가족과 풀리지 않는 갈등을 안은 채 오늘도 그냥 잠이 들어 버렸다면,

홍해연 작가님의 장편소설 <매듭의 끝>을 읽고 시원한 '끝'을 한번 경험해 보시길 바란다.

매듭이,

꼭 시작만 있는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매듭, 끝)



keyword
목, 금, 토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