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대건 장편소설 《급류》
살면서 휩쓸리는 모든 것을 이야기해 볼까. 소문, 불안, 관계, 사람, 사랑, 삶...
(스포 주의)
도담과 해솔은 어린 청춘에 만나 서로의 마음에 휩쓸린다. 그러나 이러한 사랑의 급류는 곧 유통 기한을 맞이한다. 사람 구하는 일에 거침이 없었던 소방관 창석(도담의 부친)과 외지에 내려와 미용실을 운영하는 미영(해솔의 모친). 그들이 벌거벗은 마지막 모습으로 급류에 휩쓸린 채 도담과 해솔 앞에 등장하던 딱 그 순간까지. 딱 그때까지만 그 둘의 사랑은 풋풋하고 순조로웠다.
"너 소용돌이에 빠지면 어떻게 해야 하는 줄 알아?"(36)
도담과 해솔은 소용돌이에 급히 빨려들 줄 몰랐다. 인생에 순진한 희망을 품는 계절이었다. 누구라도 갑작스러운 급류를 예측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도담은 그 급류 속에서 그저 화가 났을 뿐이고, 그들에게 벌을 주고 싶었을 뿐이다. 그러나 그 벌이 모두를 소용돌이에 더 깊이 빠지게 할 줄은... 죽어 버리거나 살아도 죽게 되는 삶으로 살게 할 줄은, 미처 몰랐다. 벌을 주는 건 사실 도담의 역할이 아니었다. 그 영역은 신의 몫이었다. 신은 급류를 잉태한 끝에 누군가의 마지막을 급류 밖으로 형벌처럼 토해 버렸다.
사랑의 완성인지 사랑의 종말인지 알 수 없는 그 마지막 모습을 고스란히 껴안고 살아가야 하는 건 남겨진 도담과 해솔도 마찬가지였다.
그 후로 도담은 내내 '벌을 주려다 벌의 급류에 허우적거리며 사는 기분'으로 살아간다. 사랑을 나누던, 그리고 사랑에 빠졌던 그 둘은 이제 둘만의 이야기를 서로 나눌 수 없는 사이, 비극에 빠져 버린 사이가 되고 말았다. 격랑에 휩쓸리고 애증에 뒤덮인 둘의 서사는, 두 번의 재회로 세찬 파도를 맞닥뜨리며 뜨거운 만남과 이별을 반복한다.
우리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다시 만나더라도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https://youtu.be/mkPW8wxs3sE?si=K4ROAu4B9BPQ7dAY
둘은 자신들의 삶을 구조하기 위해 어떤 판단을 해야 할까, 휩쓸려야 할까, 맞서 싸워야 할까, 깊은 물로부터 계속 도망쳐야 할까, 아니면 물속에 더 깊숙이 들어가 봐야 할까. 두 사람, 이대로 서로의 손을 붙들고 마음을 붙들어 맨 채로 또다시 물속으로 뛰어들어도 될까. 그러나 두 사람이 결코 몰랐던 사실 한 가지.
급류는 두 사람을 벌한 것이 아니었다. 물속에 첨벙, 빠지고서야 도담은 자신의 몸이 본능적으로 기억하는 물의 형체와 색채와 몸체를 느낀다. 이 물은 어쩌면 그냥 단순히 흐르는 물이 아니다. 흘러가는 인생 전체의 굽이굽이를 나타내는지도 모른다. 삶의 골짜기마다 소용돌이에 휩쓸리며 안간힘을 썼던 그 흔적들이 그들의 몸에 세월이라는 이름으로 문신처럼 남아 있다. 급류에 휩쓸리고도 기어이 살아남아 이 모든 불안과 절망을 끌어안았던 시간을, 둘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품고 있었다.
도담과 해솔은 결국 서로가 서로에게 하나뿐인 급류가 되어 줄 수 있음을 뒤늦게 깨닫는다. 그 급류는 위태롭고 불안하다. 언제 다시 휩쓸릴지 모른다. 삶, 사람, 사랑, 관계, 불안, 소문... 도담과 해솔은 청춘 가운데서 다시 만나 서로의 마음에 기꺼이 휩쓸리기로 한다.
"한 번 깨진 관계는 다시 붙일 수 없다고 하는 건 비유일 뿐이야.
이렇게 생각해 봐. 우리는 깨진 게 아니라 조금 복잡하게 헝클어진 거야.
헝클어진 건 다시 풀 수 있어."(254)
급류에 휩쓸린 그 '매듭의 끝'에서 두 사람은 과연 어떤 시작과 끝을 준비하고 있을까. 이 소설은 '방향을 짐작하기 힘든 조난된 사랑의 급류'를 다루면서, 동시에 굽이굽이 '인생의 모든 변곡점에 관한 고통과 환희의 서사'를 이야기해 준다.
"(소용돌이에선) 어떻게 해야 되는데?"
"수면에서 나오려 하지 말고 숨 참고 밑바닥까지 잠수해서 빠져나와야 돼." (36)
*이 소설의 특별한 지점
1) 객관적 지점: 20만 부 역주행 소설
2) 주관적 지점: 처음 만나는 소설가. 앞으로 이 작가님 소설을 나도 모르게 기다리고 있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