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4. 또 다른 간섭자는 GPT이다.
우리는 종종 GPT에게 자신을 분석해 달라고 요청한다.
"내가 너와 상호 작용한 모든 내용을 바탕으로 내 사고 패턴과 의사 결정 방식, 무의적인 편향 반복으로 드러나는 약점이나 맹점을 상세히 분석해 줘 그리고 각 항목에 대해 나에게 필요한 조언을 구체적으로 적어줘 5000자 이상"
[예시: 글쓴이 GPT]
프롬프트는 겉보기에는 매우 객관적으로 질의를 던지고, GPT 역시 그런 방식으로 답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라캉이 말한 거울 단계처럼, 우리가 마주하는 것은 진정한 자아가 아니라 상상계의 환상일 뿐이다.
자크 라캉의 상상계는 주체가 형성되는 초기의 환상적 차원으로, 거울 단계를 통해 자아의 통합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 거울 단계는 자아(ego)의 탄생 과정으로서, 유아가 거울이나 어머니의 시선 같은 외부 이미지를 통해 ‘나’라는 허구적 통일성을 경험하는 순간이다. 이 이미지는 타자(the Other)와의 이원적 관계를 형성하며, 주체를 외부에 의존적이고 공격적인 구조 속에 놓이게 만든다. 그 결과 자아는 본질적인 결여를 느끼게 되고 상징계로 이동하지만, 상상계의 환상은 평생 동안 계속된다.
라캉의 주이상스는 쾌락 원칙을 넘어서는 과도한 향유를 가리킨다. GPT가 제공하는 ‘완벽한 자기 분석’은 이러한 주이상스의 한 형식처럼 보인다. 우리는 객관성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과도한 확신을 얻지만, 동시에 실재계—즉 실제 사회 현상과의 균열에서 일종의 파괴적 깨달음을 경험하게 된다. 이는 프로이트의 죽음충동과도 닮았다. 완벽한 분석, 모든 긴장의 해소를 추구하지만, AI의 객관성은 결국 언어 구조 안에 갇힌 허구로 끝난다. 진정한 무의식의 횡단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실무에서 이는 더욱 명확해진다. 자료의 일치성을 확인하고 오류를 검증하는 데 오히려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시간 효율성을 위해 선택한 도구가 역설적으로 생산성을 떨어뜨린다. 실제로 회사에서 GPT를 사용한 뒤 업무 처리 속도가 느려졌다고 체감하는 경우도 있다.
라캉의 철학과 대입해 보면, AI와 같은 언어 기계는 상징계의 하나의 매개변수가 된다. 사용자가 던지는 질의는 사실상 가설의 형태로 욕망을 소환하지만, 그것은 결국 결여된 환상일 뿐이라는 식으로 분석해 볼 수 있다. GPT가 내놓는 결론은 통계적 오차범위 안에서 제공된 답변이겠지만, 실제 사회 현상과는 놀랄 만큼 상관성이 떨어질 때가 많다. 개인적으로는 이상치를 지나치게 제거했거나, 냉정한 통계보다는 서사와 소설에 가까운 방향을 택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하게 된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사람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들려주는 장치로 변모하는 과정은, 라캉이 말한 주이상스의 잉여처럼 이해할 수 있다.
즉, 쾌락 원칙(객관성)을 넘어선 과도한 향유를 제공하지만, 실재계(사회적 반응)에서 드러나는 균열을 통해서는 오히려 파괴적 깨달음을 낳는다. 이는 프로이트의 죽음충동이 긴장의 해소(완벽한 분석)를 추구하되, 그 끝이 결국 자기 파괴적 지점과 맞닿는 구조와도 비슷하다. AI의 “객관성”은 언어 구조 속 허구로 끝나며, 진정한 무의식의 횡단을 막는 또 하나의 장치가 된다.
이러한 점을 모르는 사람들이, 마케팅 영역 외, 단지 시간 효율성만을 이유로 초기 단계의 GPT를 무비판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위험한 선택이 될 수 있다. 자료의 일치성과 오류를 끊임없이 검증해야 하기에 오히려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회사 현장에서 GPT를 도입한 뒤, 업무 생산 속도가 줄어드는 것을 체감했다는 이야기들도 존재한다.
만약 AI가 오류를 줄이고 이른바 ‘진정한 객관성’을 확보한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철학적 관점에서 보면, 그것은 결국 간섭자가 한 명 더 늘어나는 데 지나지 않는다. 나 자신과의 대화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복잡한데, 타인과의 대화에 더해 이제 인공지능과의 대화까지 추가되기 때문이다. 정보가 많아질수록 오류 가능성은 높아지고, 속도는 느려진다. 과거에는 타인에게서 벗어나 자연으로 돌아가면 어느 정도 자유를 얻을 수 있었다. 이제는 기계에게서도 거리를 두어야 비로소 본래의 자신을 마주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라캉은 도망보다 승화를 선택하라고 말한다.
라캉에게 승화(sublimation)는 주이상스(AI에서는 사람들이 듣고 싶은 말)의 파괴적 과잉을 창조적 대상으로 전환하는 과정이다.
실재계의 결여를 정면으로 마주하는 대신, 아름다움과 예술을 통해 objet a를 대체하는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죽음충동을 다시 쾌락 원칙 안으로 회수하고, 주이상스를 생산적 욕망으로 재편하는 전략이다.
라캉 이론에서 승화는 대략 다음과 같은 세 단계로 설명해 볼 수 있다.
1. 증상 해체: 반복적인 주이상스—강박과 중독을 분석해 무의식적 원인을 드러낸다.
2. 창조 전환: 주이상스의 에너지를 예술, 지식, 사랑 같은 객체에 재투자한다. 글쓰기, 그림, 다양한 창작 행위가 그 구체적 방법이 된다.
3. 욕망 재편: 끝없이 순환하던 objet a의 추구를 유한한 상징적 만족으로 안정화시킨다.
4. 라캉은 objet a를 “대타자의 결여를 메우는 환상적 플러그”로 이해했다. 이 플러그를 포기할 때 환상의 횡단이 완성되고, 주체는 어느 정도의 자유를 획득한다.
라캉의 관점으로 보자면, AI가 제시한 상상된 자아가 실제 사회 현상과 연결되지 않는다면, 그 괴리감을 예술로 승화시키라는 것으로 말할 수 있는데, 이는 상당히 흥미롭다. 라캉은 철학과 함께 정신의학·심리학을 연구하며, 사람들에게 일종의 치유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했던 것이 아닐까 추측해 볼 수 있다.
실제로 정신의학자이자 철학자였던 그는 프로이트를 구조언어학의 틀 안에서 재해석했고, 예술가를 승화의 모델로 제시했다. 그는 주체가 상징계의 지배로부터 일정 부분 해방되기를 바랐다.
별 카드는 메이저 아르카나 17번 카드로, 희망·영감·치유·내면의 회복을 상징한다. 이 카드는 밤하늘의 큰 별 하나와 주변의 작은 별들 아래에서 물을 붓고 있는 나체의 여인을 묘사하며, 자연과의 조화, 자유로운 영혼, 영적 재생을 드러낸다. 정방향의 별 카드는 긍정적인 미래 전망과 창의적 영감을 강조한다. 연애에서는 순수한 사랑과 재회 가능성을, 커리어에서는 새로운 기회와 예술적 작업의 성공을 암시하며, 재정적으로도 작지만 의미 있는 행운을 나타낸다고 해석된다. 창작 활동 중 별 카드가 등장한다면, 아이디어 노트 작성이나 산책처럼 영감을 자극하는 루틴을 실천하라는 신호로 읽을 수 있고, 자기 성찰의 과정에서는 자존감 회복을 돕는 상징이 되기도 한다
GPT가 만들어 낸 ‘나’와 실제 ‘나’ 사이의 괴리, 그 불편한 긴장을 견디면서 그것을 창조적 대상으로 전환할 때, 우리는 비로소 상징계의 속박에서 한 걸음 물러설 수 있다. 예술의 영역에서 GPT는 자신의 바이어스를 솔직히 인정하고, 그것을 하나의 자원으로 선택적으로 활용할 때 비로소 승화의 도구가 될 수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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