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오싱젠(Gao Xingjian, 1940~)의 그림 앞에 서면 먼저 느껴지는 것은 공허다. 캔버스 위에 텅 빈 원이 있고, 그 원 안에, 혹은 원 밖에 형체 하나가 놓여 있다. 어디론가 향하는 듯하지만 사실 그저 놓여 있을 뿐인 형체. 그 형체만이 가장 어둡다. 회색이 감도는 그 윤곽은 개인의 절망인지 세상의 냉담함인지 알 수 없게 만든다.
그의 수묵화는 "깊은 사유와 시의 가 융합되어 있으며, 심원하고도 초연한 내면세계를 표현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가오싱젠 : 중국계 프랑스인 소설가, 극작가, 화가, 2000년 노벨 문학상 수상
가오싱젠은 1940년 중국에서 태어나 문화 대혁명의 광풍을 온몸으로 견뎌냈다. 문화혁명으로 해방되기 전 그는 자신의 소설과 미학론 등 초기 작품들을 모두 파기해야만 했다. 자신의 작품을 직접 불태워야 했던 그 경험을, 그는 "스스로에게 테러를 가하는 것과 같은 쓰라린 고통"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더 어둡게, 더 잔인하게 그릴 수 있었다. 그의 소설은 실제로 그랬다. 『영혼의 산』은 지도에도 없는 영혼의 산을 찾아가는 여정을 그린 작품으로, 중국 남부 및 서남부 내륙 지방을 여행하면서 목격한 유혈 낭자한 전투, 산적과 홍위병들의 습격 등을 담았다. 여자들은 적군에게 잡혀가 몸을 바치거나, 산적의 첩이 되었고, 때로 사랑을 위해 칼부림을 했다. 참혹했다. 극적이었다. 치닫는 광기로 가득했다.
그림 속 사람의 형체가 가장 어둡다. 배경은 희미하고, 원은 텅 비어 있고, 공간은 무한하지만, 오직 사람만이 짙은 먹으로 그려져 있다.
수묵화는 중국 당나라 시기에 처음 개발되어 송나라 시기에 더 세련된 방식으로 발전했다. 수묵화는 정신적인 표현을 강조하고 여백과 선을 중시하며, 명암을 표현하지 않고 먹의 농담(濃淡)만으로 그려진다는 점에서 서양화와 구분된다.
*농담(濃淡) : 색깔이나 명암 따위의 짙음과 옅음. 또는 그런 정도
*농담(弄談): 실없이 놀리거나 장난으로 하는 말
가오싱젠은 공산주의 체제를 벗어나 프랑스로 망명했지만, 붓을 들 때는 가장 오래된 동양의 언어를 선택했다. 아크릴도, 유화도, 서양의 화려한 색채도 아닌, 먹과 물과 붓. 1987년 파리 망명 이후 화가로도 활동하며 유럽과 미국에서 극찬을 받았다.
그의 문학세계를 요약하면 초월과 은둔이다. 소설은 초월을 시도하고, 그림은 은둔을 실천한다. 소설에서 그는 '나' '당신' '그' 등 여러 인칭대명사로 주체를 분열시키며 광기 어린 삶의 극단을 배회한다. 하지만 그림에서는 그 모든 분열이 하나의 형체로 수렴된다. 이름도 없고, 성별도 없고, 국적도 없는 하나의 형체.
그림에서 개인 내면의 문제인지 세상의 문제인지는 여전히 아리송하다. 아마 둘 다일 것이다. 아니, 둘의 구분이 무의미한 지점. 개인의 어둠이 곧 세상의 어둠이고, 세상의 공허가 곧 개인의 공허인 지점이지 않을까 싶다.
또 다르게 개인이 세상의 어둠을 온전히 짊어지고 있다는 뜻일 수도 있다. 세상이 얼마나 밝든, 공간이 얼마나 넓든, 개인은 여전히 어둡다. 개인은 여전히 무겁고 여전히 홀로다. 그런데 그 어둠이 저항하지 않는다는 것이 가장 슬프다. 그림 속 형체는 주먹을 쥐지도, 소리를 지르지도, 도망치지도 않는다. 그저 있다. 공허한 원 속에, 혹은 원 밖에, 그저 있다.
소설이 끝난 가오싱젠은 더 이상 말하지 않는다.
붓을 들고 먹을 찍어 종이 위에 그릴뿐이다.
그림쟁이는 그림으로 말한다.
그리고 그것이 가오싱젠의 회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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