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함께
혼자만의 시간이 더 편안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 남들이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것들에 유독 마음이 쓰이거나, 어릴 때부터 '좀 예민하다'는 말을 자주 듣고 자란 사람들. 나도 그런 사람 중 하나였다.
나는 어릴 때부터 고상한 예술이 좋았다. 10대에는 서양화와 클래식을, 20대에는 서양화와 책, 그리고 에스테틱을, 30대에는 한국무용과 미술평론을 좋아했다. 앞으로 무엇을 좋아할지는 모르겠다.
사실, 처음 접하게 되면 어색했다. 내가 맞지 않는 느낌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불편해할까 봐 숨기기도 했다. 하지만 10년 정도 반복하다 보면, 이 취미를 선택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더 안락하고 평온하게 만들어주었기 때문이다.
나는 어릴 때부터 자폐증이냐는 말을 들을 만큼 말을 하지 않았다. 중학교 때 의도적으로 말을 어색하게 거칠게 하게 되어, 그나마 이 정도로 말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어릴 때부터 클래식을 들으며, 옷에 한 점 얼룩이라도 묻으면 입지 않았던 나를 생각해 보면, 굉장한 어린이였던 것 같다. 기준이 높고, 섬세했다.
네 살 때, 유치원에서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이 흘러나왔다. 그 선율을 듣는 순간 이유 없이 눈물이 났다. 선생님이 신기해할 정도였다. 아직까지 기억하는 건 내가 신기하다.
완전함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 아름다운 것에 대한 기준이 높다는 것은 때로는 고통스러운 일이기도 했다. 세상은 내가 원하는 만큼 완벽하지 않았고, 사람들은 내가 보는 아름다움을 함께 보지 못했다.
10대에 접어들면서 나는 서양화와 클래식이라는 두 개의 날개를 얻었다.
서양화는 라인보다는 붓터치를 살린다. 사실 나는 라인을 살리는 그림들도 좋아하긴 한다. 하지만 붓터치는 모호하게도 하고, 더 선명하게도 하는 면을 보여주었다. 모네의 '수련' 연작을 처음 봤을 때의 충격을 잊을 수 없다. 가까이서 보면 그저 색칠한 자국들일뿐인데, 멀리서 보면 살아 움직이는 연못이 되었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예술은 완성된 결과가 아니라 보는 이의 마음에서 완성되는 것이라는 걸.
그리고 뒤로 흐르는 클래식은 그림과 너무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었다. BGM이 아니라 또 다른 붓이었다. 라흐마니노프, 그의 음악을 들으며 그림을 그릴 때면, 붓 끝에서 흘러나오는 색들이 선율을 따라 춤추는 것 같았다.
서양화와 클래식, 이 둘은 완벽한 한 쌍이었다. 음악이 시간의 예술이라면, 회화는 공간의 예술이었다. 하지만 내게는 둘 다 언어였다. 붓터치 하나하나가 음표가 되고, 선율 하나하나가 색채가 되었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도 부담스러웠다. 고상한 척한다는 오해를 받을까 봐, 때로는 내 취향을 숨기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깨달았다. 진정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에 부끄러워할 이유는 없다는 것을.
그림은 내 안의 대화 소재거리가 되었다. 다른 사람과 대화하지 않아도 즐거울 만큼이었다. 설명 없는 작품이 내 안의 언어를 흔든다. 그것은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온몸으로 느끼는 것이었다.
예술은 나에게 세상을 보는 특별한 렌즈를 제공했다. 그 렌즈를 통해 나는 일상의 평범한 순간들에서도 특별함을 발견할 수 있게 되었다. 빗소리에서 리듬을 듣고, 구름의 움직임에서 무용을 보고, 사람들의 표정에서 그림을 읽는다.
20대에 들어서면서 나의 예술적 관심사는 더욱 다채롭게 되었다. 서양화는 여전히 내 삶의 중심에 있었지만, 이제 그것과 함께 책이라는 새로운 세계가 열렸다. 호기심과 외모에 대한 관심으로 에스테틱을 받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나는 내 몸과 화해하기 시작했다. 마음만이 아니라 몸도 내 것의 일부라는 것을 이해했다. 건강한 몸에서 건강한 정신이 나오고, 그런 정신에서의 삶이 더 건강하다는 것을. 하지만 이내 곧 잊어갔다.
30대를 지나며 에스테틱은 점점 의미 없는 일처럼 여겨졌다. 바쁜 일상에 치여 살면서 몸과 외모를 돌보는 일은 사치처럼 느껴졌고, 자연히 발길이 멀어졌다.
그렇게 십여 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런데 40대에 들어서며 허리가 너무 아프게 된 나머지, 여러 대안 중 하나로 다시 에스테틱을 찾게 되었다. 몸에 대한 관심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요가 되어 있었다. 에스테틱 선생님은 겉보기에는 털털하게 말해서 아무렇지 않을 줄 알았는데, 내 몸의 경직과 예민함을 정확히 읽어냈다.
"몸이 경직되고 굳은 것도,
지나치게 아파하는 것도
몸이 예민하고,
성격도 섬세해서 그렇다"라고 했다.
그 말은 내게 깨달음이었다. 내가 평생 짊어져온 예민함이 약점이 아니라 특별한 감각이었다는 것을. 세상을 더 섬세하게 느끼는 능력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깨달았다. 고상한 취미라는 것은 허영이 아니라 필요라는 것을. 내 영혼이 목말라하는 것을 채워주는 생명수와 같은 것이라는 것을. 마음이 향하는 곳에는 언제나 따뜻한 위로와 깊은 기쁨이 기다리고 있다. 그 길에서 진정한 자신을 만나게 되고, 각자만의 아름다운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그것이 삶이 주는 선물이자, 섬세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에게 주어진 축복이다.
30대에는 한국무용이라는 걸 좋아하게 되었다. 발끝이 돌아가는 자리에 몸의 곡선이 드러낼 때마다 빛에 비치는 치마가 눈부셨고, 천천히 움직이다 강렬하게 빨리 움직일 때면, 한이라는 게 풀어지는 느낌마저 들었다.
그전까지 나는 서양 예술 세계에서만 살았다. 서양화, 서양 음악, 서양 문학... 그것들이 내 예술적 취향의 전부였다. 하지만 한국무용을 보는 순간, 내 안에 있던 무언가가 깨어났다. 마치 고향에 돌아온 듯한, 그리운 감정이었다.
국립국악원에서 본 첫 번째 한국무용 공연의 유튜브 영상이 기억에 남는다. 승무였다. 흰 장삼이 허공에서 만드는 곡선들은 내가 서양화에서 추구했던 붓터치 같았다. 하지만 거기에는 서양 예술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독특한 정서가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아름다움을 넘어선, 깊은 슬픔과 그 슬픔을 승화시키는 힘이었다.
점점 한국무용에 빠져들면서 나는 다양한 무용가들의 공연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살풀이춤에서는 한국 여성의 정한을, 태평무에서는 궁중의 우아함을 발견했다. 각각의 춤사위마다 담긴 이야기가 있었고, 그 이야기들은 내가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정서를 일깨워주었다. 무용을 보며 나는 내 안에 잠들어 있던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발견했다.
그동안 서양 문화에 매료되어 있으면서 어딘가 채워지지 않았던 빈 공간이 있었는데, 한국무용이 그 공간을 채워주었다. 서양화를 그리면서도 항상 무언가 부족하다고 느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한국무용에 대한 관심이 깊어지면서 자연스럽게 미술평론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단순히 예술을 향유하는 것을 넘어, 그것을 분석하고 해석하고 싶었다. 내가 느끼는 감동을 언어로 표현하고,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었다. 특히 한국 전통 예술과 현대 예술 사이의 연결고리를 찾고 싶었다. 평론을 쓰며 나는 내 감정을 객관화하는 법을 배우고 싶었다.
아직 본격적으로 써보지는 못했지만, 주관적인 감동을 언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예술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동양화의 여백과 서양화의 공간감, 한국무용의 정적인 움직임과 서양 미술의 역동성... 이런 차이점들을 분석하고 비교하면서 예술의 본질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30대의 나에게 한국무용은 단순한 취미를 넘어서 자아 정체성을 찾아가는 여정이었다. 서양 예술로 시작된 내 예술적 여행이 동양으로, 그리고 우리 것으로 돌아오는 소중한 경험이었다.
푸르른 여름밤, 비가 내리는 이 순간에도 나는 행복하다. 예술이 있어서, 아름다움이 있어서, 그리고 그것들을 느낄 수 있는 마음이 있어서. 이것이 바로 고상한 취미가 내게 준 가장 큰 선물이다. 삶 자체를 예술로 만들어가는 능력. 예술 안에서 나를 치유하는 게 나에겐 기쁨이다.
돌이켜보면, 나의 각 예술 여정은 처음에는 모두 어색했다. 마치 나에게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듯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긴 세월 반복하다 보니, 이 취미를 선택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더 안락하고 평온하게 만들어주었다.
내가 추구해 온 고상한 취미들은 이제 더 이상 취미가 아니다. 그것들은 내 삶의 일부가 되었고, 내 정체성의 핵심이 되었다. 서양화의 붓터치에서 배운 모호함과 선명함의 조화, 클래식에서 얻은 깊은 감동과 위로, 독서를 통해 넓어진 사고의 지평, 에스테틱을 통해 발견한 몸과 마음의 연결, 한국무용에서 느낀 민족적 정서와 한의 미학, 미술평론을 통해 기른 분석적 사고 - 이 모든 것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지금 이 순간, 푸르른 여름밤에 비가 내리고 있다. 에어컨이 있는 덕분에 이 더위가 오히려 따뜻하게 느껴진다. 비는 첼로와 함께 어우러져 가을이 되어 온다. 이것이 바로 내가 오랫동안 기르고 가꾸어온 감성이다.
이제 나는 일상의 모든 순간에서 예술을 발견한다. 커피잔에 비치는 햇살의 각도에서 샤갈이거나 호크니이거나, 아침에 들리는 새소리에서 슈만의 첼로 솔로곡을, 출근길 지하철에서 팀랩 전시가 떠오른다. 세상 자체가 거대한 미술관이 되었고, 일상이 곧 예술이 되었다.
2025.08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