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정리한다. 남들이 봤을 때는 그리 좋지 않은 집 상태일 수도 있지만, 나름 계속해서 정리한다.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는 편이고, 만족하고 살고자 한다.
솔직히 이 낡은 집은 아무리 정돈해도 새집처럼 번듯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좁디좁은 거실도 나에겐 운동장만큼 넓게 느껴지고, 낡디 낡은 벽지도 그리 눈에 띄지 않는다. 마음가짐에 따라 같은 공간도 다르게 보인다는 걸 배웠다.
언젠가는 이사를 갈 수도 있겠지만, 지금 당장은 여기가 내 집이다. 낡아서 버릴 게 많고 수리할 게 많지만, 적어도 새집만큼 돈이 들지는 않는다. 어떤 이는 이런 내 태도를 어리석다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거주지가 싫다고 마음에 안 든다고 투덜대고 있는 것은 인생 자체를 거부하는 것처럼 들린다. 그렇다고 해서 내 마음까지 헌 집으로 둘 필요는 없는 것 같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날이 있다. 오늘이 그랬다. 브런치에 올려둔 몇 달 전의 글들을 들춰보다가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했구나' 싶기도 하고, '정말 내가 쓴 글이 맞나' 싶기도 했다. 분명히 내가 쓴 글인데, 시간이 흐르면 낯선 사람의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이런 경험, 다들 있지 않을까?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 사이에 생기는 자연스러운 거리감. 그때의 나는 지금의 나를 상상할 수 있었을까? 아마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의 나 역시 1년 후의 나를 정확히 예측할 수 없다. 시간이 만드는 이런 변화가 때로는 당황스럽지만, 성장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오전에는 병원에서 정기검진을 받았다. 피검사와 초음파 결과는 다행히 나빠지지 않았다는 말을 들었다. 더 나빠지지 않은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어야 하는 걸까. 나빠지지 않았다는 건 좋아지지도 않았다는 뜻이니, 그냥 현재 상태를 받아들이라는 의미로 들렸다.
의학적 진단에서 '변화 없음'이라는 말은 때로 실망스럽다. 우리는 항상 더 나아지기를 바라니까. 하지만 생각해 보면, 악화되지 않았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큰 일인가. 몸이 지금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열심히 일하고 있는지, 우리는 잘 모른다.
건강도 집과 비슷한 것 같다. 새로운 몸을 얻을 수는 없지만, 주어진 몸을 어떻게 돌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삶을 살 수 있다. 완벽한 건강보다는 지속 가능한 건강, 극적인 변화보다는 꾸준한 관리. 나이가 들면서 이런 게 더 중요하다는 걸 깨닫는다.
집에 돌아와서는 오랜만에 애즈원 플레이리스트를 틀었다. 그러다 미리 적어둔 글감들을 그냥 지나쳤다. 대신 유튜브에서 실업자 브이로그를 보거나 예술 영상을 찾아보다가, 결국 타로카드 해석 영상에 머물렀다. 타로카드를 뽑은 건 펜타클 6이다.
한때는 내가 직접 타로카드를 그려보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그냥 낙서가 아니라, 제대로 된 상징과 색깔을 담아서 나만의 카드를 만들고 싶었다. 그 마음이 사라진 줄 알았는데, 펜타클 6을 보는 순간 다시 살아났다.
창작에 대한 욕망은 참 신기하다. 완전히 사라졌다 싶다가도 어느 순간 갑자기 되살아난다. 마치 씨앗처럼, 적절한 때가 되면 언제든 싹을 틸 준비가 되어 있는 것 같다.
만약 내가 이 타로카드를 새로 만든다면 어떨까? 어떤 스타일의 사람과 사물의 모양이 나올까. 색상은 밝고 스토리라인은 제대로 갖추었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그 상상들이 자연스럽게 내 일상과 연결되었다.
펜타클 6이 내게 말하는 건 이런 거다. "공정한 교환. 균형을 지킨다는 것은 거창한 변화가 아니라, 기울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중심을 잡는 일이다." 이 말이 요즘 내게 딱 맞는 것 같다.
내게 집은 그 균형의 가장 큰 상징이 되었다. 낡았어도, 좁아도, 새집만큼 예쁘지 않아도, 나는 이곳에서 정리하며 균형을 배운다. 내가 집에 시간과 정성을 쏟으면 집은 편안함과 안정을 되돌려준다. 이게 바로 펜타클 6이 말하는 공정한 교환이 아닐까.
아침에 일어나서 침실을 정리하는 것, 설거지를 하며 찬장을 정돈하는 것, 책상 위를 깔끔하게 치우는 것. 이런 작은 일들이 모여서 균형감각을 만든다. 행복까지는 아니더라도 행복 전에 있어야 할 평온은 거창한 것들이 아니라 일상의 작은 실천들 속에서 진짜 평온이 피어오르는 것 같다.
집을 정리하는 것도 결국 균형 잡기다. 버릴 것과 남길 것, 고칠 것과 그대로 둘 것. 이런 선택들이 매일 반복되고, 그 과정에서 삶의 리듬을 찾아간다.
집에 대한 애착은 단순한 소유욕이 아니다. 주어진 조건에서 최선을 찾아가는 일상이고, 불완전함을 받아들이는 평온이며, 일상에서 균형을 찾아가는 연습이다.
나는 오늘도 이 낡은 집을 정리한다. 남들 눈에는 여전히 볼품없어 보일지 모르지만, 내게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공간이다. 여기서 나는 균형을 배우고, 받아들이는 법을 연습하고, 일상의 소소한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균형은 목적지가 아니라 과정이고, 완벽함은 목표가 아니라 매 순간의 최선이며, 집은 유행처럼 지나가는 장난감이 아니라 마음이 머무는 곳이다. 그리고 그 모든 게 가능한 이유는, 우리가 한 곳에 머물러 있으면서도 충분히 자유로울 수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 내가 직접 펜타클 6을 그려낸다면, 그것은 내가 하루를 버티고 균형을 회복한 상징일 것 같다.
2025.08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