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향은 공간보다 먼저 나를 비워낸다.
벽지보다 향이 방을 먼저 기억하게 만든다는 것은, 어쩌면 기억이 휘발되고 향이 남는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아침마다 피어오르는 커피 향처럼, 어떤 것들은 그 자리를 떠난 후에도 공간에 스며들어 남아있다. 그리고 그 향기를 통해 비로소 그곳이 우리의 공간이었음을 깨닫는다. 8월 초인데 벌써 가을 느낌이 난다. 달력은 여전히 여름을 가리키고 있지만, 공기 중에는 미묘한 변화가 감지된다. 여전히 뜨겁지만 해는 낮게 떠 있고, 그 햇살이 밖으로 나오라 유혹한다. 하지만 나가면 타죽을 것 같아 나가지는 않았다. 이런 모순적 상황이 8월 초 늦여름이다. 여름의 끝자락에서 가을을 맞이하는, 어정쩡한 시간. 그래서 에어컨을 틀고 집 안에 있는다. 식빵을 기름도 없이 굽고 커피물을 올렸다. 스타벅스에서 갈아온 커피가루를 준비한다. 피곤한 아침에 커피 한번 내려먹겠다고 벌서듯 꼳꼳하게 서서 커피 물을 내린다. 배운 적도 없이 어디서 본 느낌으로 주전자를 잡고, 드리퍼 여과지에 담긴 커피 가루에 주전자를 한 바퀴씩 돌리며 물을 따른다. 처음에는 핸드드립의 탄커피 향이 올라온다. 부족한 듯 한번 더 휘 돌릴 때마다, 한 방울씩 고소한 커피 향이 피어오른다. 커피를 내리며 식빵을 뒤집는다.
휴가를 가지 않아도 이리 누워있으니 천국이 따로 없다. 천국이라는 말이 과장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에어컨이 돌아가는 소리, 커피가 내려지는 소리, 식빵이 구워지는 냄새. 이 모든 것들이 만들어내는 평온함이 다를게 무엇일까. 그러다 문득, 세상은 이리 안정적이고 평안한데, 나는 누울 곳이 있어도 없는 듯 불안하고 들떠있다. 이 모순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어느 곳에도 소속되지 못하는 것만 같고, 가지고 싶지 않은 업무만 쥐어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이라는 안식처가 있음에도 마음 둘 곳이 없는 느낌. 이것이 현대인의 가장 큰 딜레마 중 하나가 아닐까.
작년에도 전달에도 똑같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작년 이전직장에 있을 때에도, 5년 전 또 다른 직장 때문에 서울에 거주하지 않았을 때에도, 상황은 다르지만 똑같은 생각을 했다. 장소와 사람들은 다르지만 같은 운명이라서 똑같은 생각을 하고 변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다. 그것이 운명인지, 성격인지, 삶을 바라보는 관점인지는 알 수 없지만, 환경이 바뀌어도, 사람이 바뀌어도, 나이가 들어도 변하지 않았다는 것에 실망감이 들었다. 같은 운명이더라도 좀 더 나은 긍정적인 생각은 못하는 걸까. 이 질문은 자기 자신에게 던지는 가장 솔직한 물음이다. 왜 우리는 같은 패턴을 반복하는가. 왜 상황이 달라져도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가. 그리고 그 안에서 조금이라도 더 긍정적인 면을 찾아낼 수는 없는가.
일을 하면서도 무섭게 변화하는 세상 때문에 사람들은 두려워만 한다. 내가 이런 일이나 이런 직장 말고 무얼 할 수 있겠느냐고 묻는다. 이것은 현대인이 마주한 가장 현실적인 고민이다. 기술의 발전, 산업의 변화, 사회 구조의 변화 속에서 개인이 느끼는 불안감. 하지만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이런 상황과 이런 직장은 벗어나는 게 맞다고. 다른 직장에 다녀도 운명처럼 같은 상황이라도 벗어나는 게 맞다고. 그리고 이런 일이나 이런 직장 말고 독립적으로 살 수 있다고 꿈꾼다. 물론 이런 생각에 대해 스스로 의구심이 들 때도 있다. 매번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이 단순히 도망을 현실화하는 것은 아닐까. 이기지 못한 것일까, 나만 불운한 것일까. 그런 회사밖에 못 다닌 게 내 실력이나 학력의 문제였을까 하며 자책하기도 한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선택지는 별로 없었다. 그때그때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했고, 그 안에서도 누군가는 나를 인정해 줬다. 들은 말이 있고 인정받은 시간이 많았다는 것은, 좋지 않은 환경에서도 내 안의 무언가를 발견하고 알아봐 준 사람들이 있었다는 뜻이다. 도망이라고 할 수도 없다. 선택지가 없었으면 그냥 생존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생존의 시간들이 쌓여서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계절이 변해도 세월이 흘러도 이렇게 생각하는 내가 나다. 이 인식은 중요하다. 변화를 추구하면서도 변하지 않는 핵심을 인정하는 것. 환경에 적응하면서도 본질을 잃지 않는 것. 가장 중요한 것은 독립적으로 살 수 있다는 믿음이다. 이것은 단순히 경제적 독립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정신적, 감정적 독립. 다른 사람이나 조직에 의존하지 않고도 자신만의 길을 찾아갈 수 있다는 확신. 어쩌면 이런 글이 반성보다는 자기 정당화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이미 마음의 결론을 내린 상태에서 그 결론을 뒷받침하는 논리를 찾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이런 상황은 벗어나는 게 맞다"라고 못 박듯이 말하면서, 그 생각이 틀렸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은 별로 다루지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충분히 고민했고, 선택지가 별로 없던 시절을 견뎠고, 그 속에서도 인정받은 경험들이 있었다. 이제는 반성보다 자기를 믿어보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과거의 경험들, 인정받았던 순간들, 그리고 무엇보다 자기 자신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한 선언. 이런 믿음이 어디서 오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어떤 핵심적인 무언가가 내 안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환경이 바뀌어도, 사람이 바뀌어도, 나이가 들어도 변하지 않는 그 무언가. 불안하고 들떠있는 마음과 독립에 대한 믿음. 이 두 가지가 공존하는 것이 인간의 복잡함이다. 완전히 안정된 상태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절망적이지도 않은. 어딘가에 소속되지 못하는 느낌이 들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자유로울 수 있는.
8월 초 계절처럼, 우리의 삶도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는다. 여름도 가을도 아닌 시간, 휴가를 가지 않아도 천국 같은 일상, 안정된 외부와 불안한 내부. 이 모든 모순들이 우리를 구성한다. 그 속에서 우리는 작은 의미들을 만들어낸다. 커피를 내리고, 식빵을 굽고, 향기를 맡는 것. 이런 행위들을 통해 우리는 우리만의 공간을 만들어간다. 향이 방을 기억하게 만드는 것처럼, 우리도 우리만의 방식으로 세상에 흔적을 남긴다.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여전히 그 자리에 있는 것, 독립적으로 살 수 있다고 믿으면서도 소속감을 갈망하는 것. 매번 같은 상황에서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이 도망일까 봐 걱정하면서도, 그때마다 선택지가 별로 없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이런 모순들이 바로 인간다운 것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이렇게 생각하는 내가 나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완벽하게 해결되지 않는 것들, 계속해서 질문을 던지게 하는 것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 그리고 이제는 과거의 생존 시간들을 바탕으로 자기를 믿어보는 것. 반성이라기보다는 선언에 가까운 이 마음. 계절이 바뀌어도, 환경이 달라져도,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핵심적인 무언가를 인정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이번에는 정말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살아보겠다는 다짐. 향이 공간을 기억하게 만드는 것처럼, 우리도 우리가 머무는 곳마다 무언가를 남긴다. 그것이 불안이든 평안이든, 의문이든 확신이든, 그 모든 것이 우리가 살아있다는 증거다. 그리고 그 증거들이 쌓여서 우리만의 향기가 된다. 그렇게 향기가 남다. 빨래를 바삭하게 익히기 위해 베란다에 옷을 걸어둔다. 집 안과 밖의 경계에서, 햇볕과 바람이 만나는 곳에서, 어제의 것들을 새롭게 만들어내어 또 다른 향기를 남기는 하나의 방법이다.
2025.08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