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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혼들의비행 Jul 21. 2023

[돌봄 1] 진짜 물만 줘요?

비혼들의비행_비혼여성공동체 비비로 살아가기

[2003년 비혼모임을 시작하여 자기 자신으로 잘살아오는 동안, 이 사회에서 안전한 둘레가 되고 버팀목이 되어준 비혼여성공동체 '비비'가 있었다. 나는 비비의 한 개인으로 어떻게 살아왔는지, 우리는 쌓아온 신뢰를 안고 어떻게 앞으로 한 발짝 나아가고 있는지, 개인과 공동체가 어떻게 조화롭게 지속할 수 있는지, 지난 20여 년간의 비혼생활과 공동체적 삶을 돌아보고자 한다. 비혼, 공부, 여행, 독립, 공간, 소설, 돌봄, 공동체, 글쓰기 등 주제를 잡아 한 주제당 3~4편 글을 쓸 계획이다.]


 

셋은 나란히 테이블에 앉았다.

주 업무는 사라지지 않고 언제나 그곳에 잘 있기.

어디선가 나타날 방문객을 위해.

우리는 이야기를 듣는 것으로 시작했다.

마을은 문제를 해결하고, 주얼은 무조건 수락하고, 나는 틈새를 파악했다.

공통점은 하나, 관심을 기울이기.

‘돌봄’은 일상 전반에 필요한 생활 기술이었다.

친구를 사귀고, 직장에 다니고, 모임에 참여하고, 공간을 만들어 사람들과 활동할 때, 이 모든 관계를 무엇으로 이어왔을까?    


      

[돌봄 1] #. 진짜 물만 줘요?     


12월 밤, 이듬해 열두 장 다이어리 속지를 갈고 월별로 생일을 적는다. 거기가 내가 관계 맺는 이들과의 시작점이자 연속점이다. 너의 생일을 기억하는 것. 조카들이 어렸을 때 케이크 촛불을 여러 번 껐다. 팀장이 되었을 때 팀원 생일을 챙겼다. 다른 지역에 사는 친구들에게는 생일을 핑계로 오래간만의 안부를 나눴다. 비비를 시작하고, 구성원 생일을 적었다. 매월 정기모임만큼 생일 축하의 날을 중요하게 여겼다. 카톡이 없던 시절, 나는 온라인 카페에 일정을 점검해 공지를 올렸다. 그건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살핌이었다. 나는 즐거웠다. 우리는 약속을 지켜 기쁨을 나눴다.

     

나는 소소한 것을 나눴다. 이과, 문과 두 반만 있는 고등학교에 다닐 때 문과반 친구를 쉬는 시간에 만나 메모지에 적은 쪽지를 접어 전했다. 친구는 ‘지란지교를 꿈꾸며’를 필사해서 줬다. 나는 단풍잎을 코팅해서 건넸다. 대학생이 되었을 때 직장인이 되어 먼 곳으로 발령 난 친구에게 긴 편지를 보냈다. 답장을 기다렸다. 다시 답장을 썼다. 서로 다른 상황에서 오고 가는 시간의 낙차, 곳곳에 스며든 다정. 그리고 각자 좌표에서 출발해 어느 한 점에서 만나는 한순간이 있었다. 동시성을 느끼는 짜릿함. 거기가 내가 찾은 연결점이다. 다른 것과 같은 것을 함께 하기.

     

비혼모임을 제안한 ‘마을’과 영화와 소설 이야기를 나눌 때 즐거웠다. 또래 ‘천영’과 있으면 무작정 편했다. ‘주얼’과 같은 집안사람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반가웠다. 최근 ‘푸른산’과 글쓰기 동료가 되어 설렌다. ‘반짝별’과 서로의 고지혈증 수치를 점검한다. 더 친한 사이가 있어 갈등이 일어났는지 질문받을 때마다 당황했다. 내가 누구랑 더 친했나? 그게 중요한가? 나는 군데군데 통할 구석을 찾았다. 그 연결점으로 나와 비비를 엮어갔다. 마치 그들에게 건네는 ‘실뜨기’처럼. 이것을 나의 ‘마음 쓺’이라고 해두자.

      

“자의 반 타의 반. 오전에는 요가, 오후에는 걷기 합니다.”    

 

나는 몸을 잘 쓰지 못한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목이 돌아가지 않는다. 이구동성으로 요가를 하라는 조언이 떨어졌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몸, ‘주얼’이 지도하는 요가 수업에 수강생 곁에 누웠다. 오전 10시, 눈을 부릅떠도 눈이 감긴다. 입을 앙다물어도 하품이 난다. 손은 연신 눈물을 훔치느라 바쁘다. 주얼의 동작을 힐끗거린다. 무릎을 펴시고, 안 펴진다. 총총 나에게로 다가오는 발소리, 주얼의 살짝 건드리기만 하는 손, 무릎이 펴진다. 으흐흐. 어떻게 한 거지? 몸이 찢어질 것만 같다가 몸이 쫙 펴진다. 이것은 고통인가, 통증인가. 주얼이 나에게 건네는 마법의 손인가? 고통과 통증이 끝 간 데 없이 몰아치던 그때, ‘손과 발을 열어 사바사나로 긴장을 풀고 휴식을 취합니다.’ 아름다운 문장이 온몸을 휘감는다. 이대로 딱 한숨만 잠들었으면.     


고지혈증 치수가 떨어지지 않는다. 의사는 커피믹스와 밀가루를 끊고, 저녁을 간소하게 먹고, 숨이 차게 걸어야 한다고 처방했다. 오후 5시, 구운 달걀 두 개, 아몬드 열 알, 바나나 한 개를 먹는다. 배가 고프다. 6시 ‘마을’과 걷기를 나간다. 공간비비를 나오자마자 숨이 차다. 역시 시작점이 다른 몸. 아직 천변으로 들어가지도 않았다. 도로 위를 성큼성큼 걸어가는 마을과 그 뒤를 뛰다시피 걷는 나.

“hurry up! hurry up!”

나에게 건네는 특훈의 목소리가 들린다. 돌다리를 건너고 다시 직진한다.

“잠깐만요! 헉헉헉. 다리 건너고 나서 나를 기다려주세요. 같이 시작하면 좋겠어요.”

“오케이.”

“같이 걷기만 해도 이렇게 숨이 차네요.”     


저녁 7시, 마을은 요가실로 들어가고, 나는 집으로 온다. 나는 이제 집에서 글을 쓰다가 막히면 구르기를 스무 번 하고, 무릎을 펴서 반쟁기자세에 도전한다. 주말에는 혼자 천변에 나간다. 목표는 다섯 사람 따라잡기. 나를 지나쳐 가는 사람들을, 지금은 내가, 그들을 지나쳐 앞으로 나아간다. 헉헉헉. 숨이 차다. 숨이 차. 마주 오는 사람이 없으면 냅다 뛴다. 신호등에서도 절대 뛰지 않던 내가. 천변에는 바람 쐬러 나오던 내가. 주얼과 마을이 나에게 건넨 실뜨기에 응답한 결과이다. 돌봄의 시작점, 자기돌봄의 실현 말이다.     


돌봄은 주고받는 행위에서, 오고 가는 시간 속에 이루어진다. 돌아보면 비비가 서로에게 전한 그 숱한 마음이 돌봄이었다는 것을. 자기돌봄 없이 상호돌봄이 불가능하고, 타인을 위한 마음 없이 관계가 지속되는 일 없고, 누군가의 손길 없이 공동체가 유지되는 일 없을 터. 우리는 어떻게 돌봄을 나누었을까?     


비비가 한 명씩 1인 가구로 주거 독립하면서 품앗이처럼 손을 보탰다. 가장 나중에 아파트에 입성한 나는 걱정이 없었다. 이사할 때 필요한 내용을 고스란히 전해 들었다. 입주 전 청소는 날을 잡아 함께, 구역은 따로따로 맡아 신속하게 끝냈다. 비비 공금에서 독립기념 자금을 받았다. 나는 그 돈으로 밥솥을 장만했다.      


너와 나의 관계는 일대일로 연결점을 찾고, 우리의 돌봄은 일대다로 각자 고민을 풀어놓고 함께 해결점을 찾아냈다. 주얼이 비혼여성공동체를 주제로 기말 과제를 써야 했을 때, 나와 주얼이 직장을 그만두기로 마음먹었을 때, 반짝별이 캐나다행 연수를 기획했을 때, 푸른산이 채식전문 농가레스토랑을 열었을 때, 반짝별이 질병을 만났을 때, 우리는 인생의 큰 물길, 작은 물길을 헤치며 나아갔다. 요즘 반짝별이 가족여행 갈 때, 주얼이 반짝별의 반려 고양이를 만나러 간다. 푸른산의 마당을 지키던 강아지가 떠났을 때 함께 장례를 치렀다. 내가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은 주고, 나에게 없는 것은 비비로부터 도움을 받았다. 우리가 나눈 돌봄은 서로의 자원이 되었다.    

 

여행에서 나눔은 다른 방식으로 나타났다. 우리는 논의한 바 없었다. 계획하는 사람, 숙소를 알아보는 사람, 장을 보고 부식 거리를 챙기는 사람, 운전을 담당하는 사람, 요리를 해내는 사람, 설거지와 청소를 하는 사람, 각자 역할을 찾아 움직였다. 아침이면 일찌감치 산책하러 나간 이가 있고, 여전히 자는 이가 있다. 아침을 준비하는 이가 있고, 커피를 타는 이가 있고, 상을 펼치는 이가 있고, 이불을 개는 이가 있다. 착착착, 아귀가 맞아 들어가는 상황, 마치 퍼즐 조각을 맞춰가듯 적절히 분배된 자유와 책임은 돌봄의 또 다른 모습이었다.     


공간비비에 오래간만에 회원이 찾아왔다. 공간을 개소했을 때 누군가 들고 온 아이비 넝쿨이 벽을 타고 뻗어가고 있었다. 떨어지지 말고 무사히 올라가라고 줄기에 투명테이프를 붙여놓았다. 멀리서 보면 보이지 않는다.


“여기는 진짜 식물이 잘 자라네요. 영양제 주는 거예요? 진짜 물만 줘요?”

띠띠띠, 3초간 침묵하다가, 우리는 엉거주춤 같은 단어를 날렸다.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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