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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혼들의비행 Jul 21. 2023

[돌봄 2] 여집합의 힘

비혼들의비행_비혼여성공동체 비비로 살아가기

[2003년 비혼모임을 시작하여 자기 자신으로 잘살아오는 동안, 이 사회에서 안전한 둘레가 되고 버팀목이 되어준 비혼여성공동체 '비비'가 있었다. 나는 비비의 한 개인으로 어떻게 살아왔는지, 우리는 쌓아온 신뢰를 안고 어떻게 앞으로 한 발짝 나아가고 있는지, 개인과 공동체가 어떻게 조화롭게 지속할 수 있는지, 지난 20여 년간의 비혼생활과 공동체적 삶을 돌아보고자 한다. 비혼, 공부, 여행, 독립, 공간, 소설, 돌봄, 공동체, 글쓰기 등 주제를 잡아 한 주제당 3~4편 글을 쓸 계획이다.]



[돌봄 2] #. 여집합의 힘  

   

도형을 그렸다. 가장 작은 원을 그리고 그 안에 ‘비비’라고 적는다. 작은 원을 포함하여 그린 두 번째 원에 ‘조합원’이라고 적는다. ‘비비’가 들어가 있는 ‘조합원’을 포함하여 세 번째 원을 그리고 ‘회원’이라고 적는다. 점점 커지는 세 원을 포함하여 네 번째 원을 그리고 ‘공간비비’라고 적는다.     


나는 잘 설명하고 싶었다. 우리의 관계가 어떻게 겹겹이 둘러싸여 있는지를. 비비가 변화의 시기마다 어떻게, 부분집합(비비, 조합원, 회원)에 속하지 않는 그 ‘여집합’의 도움으로 하나의 둘레 ‘공간비비’에 안착하게 되었는지를. 그리고 그 옆에 겹겹의 공간비비를 가로지르며 만든 교집합을 포함한 ‘아파트 주민모임’까지.     


비비는 공간비비를 만들고, 상근자들은 비비 공금을 가져다 쓰며 빚 없이 자력으로 5년을 지냈다. 그건 프리랜서로 일하는 비비 구성원의 신뢰 덕분이었다. 그들은 ‘영어읽기’ ‘산희당쿠킹클래스’ 프로그램을 만들어 공간비비와의 접점을 찾았다. 마을은 늘 먼저 아이디어를 냈고, 주얼과 나는 ‘좋아요.’를 연발했다. 우리는 이대로 여기서 쭉 지낼 수, 아니 버틸 수 있을까? 나는 ‘지금 나쁘지는 않은데’를 머금은 침묵과 ‘변화가 두려운데’를 품고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로 방어하다가 ‘그래요. 뭐든 해봅시다.’ 동참했다. 새로운 발상이 필요했다. 고착된 틀을 깨야 했다. 비비는 비비에 갇히고 싶지 않았으니까.     


확장 이전하지 않았다면 여전히 책상을 옮기고 전원 네 명의 꽉 찬 요가를 하고 있겠지. 너른 요가실에서 상근자인 내가 굳어버린 목을 부여잡고 수강생 곁에 누울 기회는 없겠지. 협동조합을 설립하지 않았다면 공간비비 활동의 공신력을 얻기 어려웠겠지. 조합원을 늘리지 않았다면 ‘비혼여성아카데미’를 열어 익명의 다양한 세대별 비혼을 만나는 행운은 없었겠지. 지역에서 여성주의 배움터 ‘페미야학’을 꾸준히 열기는 어려웠겠지. 비비는 조합원 영입에 심혈을 기울였다. 5년간 적극적으로 활동한 ‘비혼여성 1인 가구’ 다섯 명을 엄선했다. 그들은 공간비비 운영을 지속할 수 있게 도움을 주었고, 비혼 이슈를 생산해 내는 데 자극이 되었다.     


공간비비는 11명 조합원이 운영에 참여하고, 50여 명 회원이 이용한다. 비혼여성들은 쉽사리 나타나지 않았다. 실질적 도움을 준 이들은 비비를 좋아하는 기혼여성들이었다. 거의 매일 열리는 ‘주얼의 생활요가’, 격주로 진행하는 ‘봄봄의 소설읽기’, 월 1회 떠나는 ‘마을의 걷기여행’ 등 일상 프로그램 참여자는 대부분 기혼여성이었다.     


“여긴 나의 아지트야!”

주얼은 옛 지인을 만났다. 어떻게 지내? 친구들과 공간을 만들었어요. 놀러 오세요. 지인은 바로 요가를 등록했다. 다음날, 소개받고 와봤어요. 소설읽기 참여할게요. 회비 지금 낼게요. 13년째 우리는 언니들과 공간에서 일상을 함께 하고 있다. 참 묘연한 일이다. 누구보다 공간을 채우고, 공간을 빛내는 사람들, 언니들이 없었다면 우린 조금 심심했을 거예요. 나와 다른 정체성의 사람을 만나면서 넓어지는 경계. 나의 비혼 삶은 공간비비에서 안전했고, 그곳에서 기혼여성과의 만남은 우리에게 우정을 선사했다. 갑자기 깊은 ‘땡큐’를 전하고 싶은 이 마음은 뭐지.

“이곳이 당신의 아지트가 되어서 우리도 기쁩니다.”     


비비는 2010년 나의 아파트 입주를 마지막으로 ‘1인가구 네크워크’ 생활공동체를 이루었다. 아파트 공고가 날 때마다 비혼여성들에게 알렸다. 2017년 아파트 전 세대 2%가 되었을 때 ‘아파트 주민모임’ 단톡방을 개설했다. 23명 중 2/3가 공간비비 회원이다. 단톡방을 만들었을 때 뭔가를 모색해보고자 했다. 바로 깨달았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조금 더 적극적인 활동을 원하는 사람은 공간비비를 마을회관처럼 드나들었다. 이사한 후에 단톡방에 남아 있는 이도 있다.  

   

23명 모두 한자리에 모인 적은 없다. 규칙, 회비, 의무가 없다. 모두가 아는 사람이라고 말하기에는 일면식이 없는 경우가 많다. 다만 비비가 그들을 알고 있다. 우리가 연결했으니까. 우리가 응답했으니까. 나는 연락처를 모르는 주민이 있다. 나 말고 마을이나 주얼이 알고 있다. 나는 동과 호수를 확인한다. 나눔이 있어 우편함에 전달할 때 필요하다. 그 주민이 공간비비 회원이면 회원가입서에 적힌 전화번호를 저장한다. 월 회비 납부에 대한 감사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 회원이 조합원이면 생일날 조합원 단톡방에 공유한다.   

  

각각 커뮤니티는 여러 모양새로 존재했다. 공통점이 적을수록, 공유가 적을수록 연결과 교차를 존중해야 했다. 아파트 주민모임의 공통점은 단 하나, 비혼여성 1인 가구. 그들이 원한 것은 무언가를 항상 함께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무슨 일이 일어났을 때 도움을 요청할, 아는 사람이 같은 아파트에 이웃으로 있다는 것, 사회적 안전과 심리적 안정을 얻는 것.     


오늘은 마을 생일이다. 출근하자마자 조합원 단톡방에 생일 축하 메시지를 올렸다. 축하 이모티콘이 이어졌다. 이어 하반기 페미야학 논의 일정을 공유했다. 오전에는 기혼 언니들과 요가를 하고, 점심에는 비비랑 외식했다. 오후에는 주얼에게 펫시터를 부탁했던 주민이 방문했다.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며 감사의 빵을 가져왔다. 셋은 나란히 테이블에 앉았다.     


다시, 도형을 떠올렸다. 아홉 개 부분으로 나뉘었다. 주민이 어느 부분에 해당하는지 무슨 상관이겠는가. 나는 하나 더 그려야 할 큰 동그라미를 어떻게 그려야 할지 몰라 허공에서 손을 멈추었다. 교집합이 복잡하다. 공간비비와 아파트 주민모임을 가로지르며,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또 다른 여집합이 존재했다. 2022년 여성주거공동체를 위해 별도 설립한 '비비 사회적협동조합'은 이제 발걸음을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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