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비혼모임을 시작하여 자기 자신으로 잘살아오는 동안, 이 사회에서 안전한 둘레가 되고 버팀목이 되어준 비혼여성공동체 '비비'가 있었다. 나는 비비의 한 개인으로 어떻게 살아왔는지, 우리는 쌓아온 신뢰를 안고 어떻게 앞으로 한 발짝 나아가고 있는지, 개인과 공동체가 어떻게 조화롭게 지속할 수 있는지, 지난 20여 년간의 비혼생활과 공동체적 삶을 돌아보고자 한다. 비혼, 공부, 여행, 독립, 공간, 소설, 돌봄, 공동체, 글쓰기 등 주제를 잡아 한 주제당 3~4편 글을 쓸 계획이다.]
[돌봄 3] #. 로맨틱한 격리 생활
우정의 밥차가 도착하고 있네요.
마을 604동 〇〇〇〇호.
주얼 605동 〇〇〇〇호.
봄봄 606동 〇〇〇〇호.
우리는 못 나가요.
알아. 그렇지 않아도 물어보려고 했음.
2022년 4월 5일 화요일, 마을은 코로나19 양성 결과를 받았다. 이틀 뒤 반짝별의 6차 항암을 마치고 마지막 결과를 보러 가기로 일정을 잡아놓은 상태였다. 무사히 지나간다 했는데, 나까지 걸러야 끝난다는 말이 있어, 누군가의 전언이 들리면서 올 것이 왔다는 기시감이 들었다. 반짝별한테 연락해야겠네요, 그래야지. 반짝별은 모처럼 새벽 기차를 타고 간다고, 이참에 언니도 쉬라며 ‘비비 단톡방’에 씩씩한 카톡을 올렸다.
밀접 접촉자인 주얼과 나는 신속항원검사를 하러 내과로 향했다. 증상이 어때요? 확진자 밀접 접촉해서요. 증상은 없어요. 증상도 없는데, 왔어요? 허허, 의사는 헛웃음을 내며 그래요, 걱정되니까 해봅시다. 애들은 밥 따로 주고, 집에서도 각자 생활하면 됩니다. 나는 1인 가구입니다, 라고 말하면 되는데, 나도 모르게, 저희가 내일 수업 나가야 해서요, 힘주어 말했다. 순간 독거인보다는 강사 위치를 부각하는 것으로 내 신상정보를 일축했다. 의사는 바로, 사모님, 이쪽으로 오세요. 나는 사모님이 되어 코 깊숙이 들어오는 따끔함을 견디며 눈을 질끈 감았다. 우리는 음성 결과를 받았다. 나는 수요일 엄마 병원 동행 일정을 취소하고, 목요일 소설읽기 모임을 한 주 뒤로 미뤘다.
금요일 아침, 주얼은 목 통증을 느끼고 내과로 향했다. 양성이네요. 너도 빨리 가 봐. 자가격리 중인 마을이 걱정했다. 나는 여전히 증상이 없는데, 뭔가 불안했다. 우리는 식구처럼 같이 밥을 먹지 않았나. 예상을 빗나가지 않고, 양성입니다. 셋 다 자가격리에 들어가고, 푸른산은 김밥을 들고 완주에서 전주로 출발한다는 소식을 알렸다. 띵동, 봄봄! 김밥 놓고 간다! 복도에 우렁찬 소리가 들린다. 건강한 김밥 두 줄, 오렌지 하나, 참외 하나. 와병의 엄마를 돌보면서 바쁜 마음으로 김밥을 쌌을 모습이 눈에 선하다. 우리는 기쁨과 배부름을 나눴다. 역시 요리사의 김밥이야. 한 줄이었으면 어쩔뻔했나. 공무원 천영에게 일요일 비비 모임 불가, 셋 다 자가격리. 나는 지난주에 걸림. 서로 전보를 교환했다.
일요일, ‘공간비비 조합원 단톡방’에 생일자 축하 인사를 올렸다. 상근자들의 격리생활이 전해졌다. 미각은 어떠냐고, 우리는 끼니마다 단톡방에 뭐 먹을 건가 토의함. 답답하지 않냐고, 우리는 집콕 스타일. 많이 아프지 않냐고, 우리는 덕분에 휴가 중. 그날 저녁 조합원이 샘, 딸기를 문 앞에 놨어요. 땡큐! 소리도 없이 왔다 갔네. 딸기가 없어! 어디다 놨어? 샘, 603동 아니에요? 난 606동임. 샘, 다시 갖다 놓음. 땡큐! 그날 밤 우리는 1인 1박스 딸기를 먹게 되었다. 다음날도 같은 동에 사는 ‘공간비비 회원’이 어디서 들었는지 딸기 사다 드릴까요? 다른 언니들, 동 호수 알려주세요. 딸기 다 먹었어? 나는 ‘상근자 단톡방’에 딸기 소식을 전했다. 남았지만 저는 다 먹을 수 있어요. 오케이. 딸기 땡큐! 연이은 딸기와 연이은 ‘땡큐’의 나날이었다.
과일을 부러 찾지 않는 마을과 엥겔지수 높은 주얼과 부지런히 딸기를 먹으며, 딸기를 이렇게 포식하다니, 이 무슨 호강인가 싶을 때, 시골에서 보낸 고구마 한 상자가 도착했다. 엄마는 모르는데. 그러고 보니 딸기 배달꾼들은 공간비비 소모임 비혼 3040 커뮤니티 ‘삼한사온’과 ‘비혼여성 부모돌봄 자조모임’ 참여자들이었다.
이레를 어떻게 밖에 나가지 않고 집에 있으려나 싶었다. 날마다 어디선가 나타난 배달꾼들이 놓고 가는 것을 받으러 현관문을 열 때, 훅 들어오는 차가운 공기를 들이마시며 흠칫 놀란다. 삼시 세끼 약을 먹는 일은 삼시 세끼 밥을 차리는 일과 같았다. 1인 가구라서 자가격리가 집에서는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은 일, 방 하나에 갇히는 형국은 아니니 그것도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베란다 독서를 잠깐 하다가, 저 멀리 아파트 단지 내 난분분하게 흩날리는 벚꽃을 카메라 줌으로 가져온다. 찰칵, 찰칵, 찰칵. 봄 다 가네. 덕분에 로맨틱한 격리 생활도 아쉽게 끝나간다. 새벽녘 적요를 깨는 고달픈 기침 소리, 저건 분명 코로난데.
반짝별은 병원 잘 갔다 왔나 모르겠네요. 서울 비 많이 오는데. 익산까지 차 가지고 가서 SRT 타고 간다고 했어. 컨디션이 아직은 괜찮아서 혼자 가보겠다고 했어. 마을이 주변의 속출하는 민원 해결로 정신없을 때, 반짝별이 한 말이 떠오른다. 아니, 저도 부탁해도 되는데요, 부탁할 수 있는데요, 마을 언니가 힘들어도 기꺼이 도와줄 거 아는데요, 이번에는 저까지 보태지는 말아야겠다 싶었어요.
물리적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한 사람에게, 선의에 기댄 돌봄이 아닌, 마음의 빚 없이 도움을 받고 때론 도움을 줄 수 있는 관계는 어떻게 만들어질까? 그런 시스템은 가능할까? 돌봄 애티튜드를 만들어가는 과정은 20년 넘게 공동체 테두리 안에서 살아온 비비에게도 쉽지 않은 주제였다. 셋은 자가격리를 해제하고 출근했다. 모처럼 사실적 안녕을 나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