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혼들의비행_비혼여성공동체로 비비로 살아가기
[2003년 비혼모임을 시작하여 자기 자신으로 잘살아오는 동안, 이 사회에서 안전한 둘레가 되고 버팀목이 되어준 비혼여성공동체 '비비'가 있었다. 나는 비비의 한 개인으로 어떻게 살아왔는지, 우리는 쌓아온 신뢰를 안고 어떻게 앞으로 한 발짝 나아가고 있는지, 개인과 공동체가 어떻게 조화롭게 지속할 수 있는지, 지난 20여 년간의 비혼생활과 공동체적 삶을 돌아보고자 한다. 비혼, 공부, 여행, 독립, 공간, 소설, 돌봄, 공동체, 글쓰기 등 주제를 잡아 한 주제당 3~4편 글을 쓸 계획이다.]
비혼을 결심한 계기가 뭔가요?
50에 들어서니 이런 질문은 사라졌다.
나는 어쩌다 비혼, 알고 보니 비혼. 물 흐르듯 여기까지 흘러왔다.
하지만 몰랐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건만, 어떤 물길을 만나 어디로 흘러갈지 어찌 알겠는가. 나는 다만 일상과 돌봄을 나누고 소속감을 느낄 작은 집단이 필요했다.
그 자리에 나가고 싶지 않았다.
산에 가면 딱 좋은 날씨다. 친구에게서 갑자기 레스토랑에서 만나자고 연락이 왔다. 분식집이 아니라 무슨 레스토랑일까. 감이 왔지만, 그 감을 거부하듯 점퍼를 입었다. 친구는 정장을 입고 있었다. 낯선 남자가 보였다. 뭐야, 둘이 소개팅하는 건가. 나는 입구에 서서, 30초 동안 생각했다. 그냥 돌아설까. 재킷이라도 입고 올 걸 그랬나. 후줄근한 주황색 점퍼를 자꾸 내려다보았다. 나는 이방인처럼 멈칫거렸다. 어색한 건 견디기 힘들다. 삶이 자연스러워야 하는데. 연극 무대에 선 초보 연기자처럼 친구와 멋쩍게 눈인사를 나눴다. 그래, 난 아무것도 모르고 나온 것은 아니야. 감은 있었지. 설마 했지. 친구는 할 일을 마쳤다는 듯 간다고 한다. 아, 나도 격렬하게 집에 가고 싶다.
서른을 앞두고 있었다. 친구들은 결혼했고, 나는 직장생활에 전념했다. 소개팅을 거절하는 나를 위해 엄마와 친구는 언제부터 어떻게 이 만남을 계획했을까. ‘애타는 엄마’와 ‘다정한 친구’의 첩보 작전이라니. 지나친 애정이 나를 힘들게 한다. 어떤 관계든 애정도 알맞게 주고받으면 얼마나 좋을까. 상대가 스스로 잘 설 수 있을 만큼 딱 그만큼. 어렵다. 친구가 무슨 말을 남기고 그 자리에서 떠났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가시내. 또 30초 생각했다. 죄송하다고 말하고 집에 갈까. 아니다. 사람을 앞에 두고 그럴 수는 없지. 이건 영화가 아니니까.
나는 소개팅을 시작했다. 어느 타임에, 나는 지금 결혼할 생각이 별로 없다, 오늘 이 자리가 소개팅 자리인 줄 모르고 나왔다고 말해야 하나, 진심을 전하기 어려웠다. 언제까지 앉아 있다가 헤어지면 예의에 벗어나지 않을까. 드라마에서 본 질문과 대답을 나누고, 밥을 먹고, 큰맘을 먹고 수목원에 갔다. 밖에 나오니 한결 낫다. 역시 자연만큼 나를 들뜨게 하는 것이 없구나. 그런데, 아직 겨울이다. 초록 하나, 꽃 하나 없는 수목원. 회색빛 땅에 뿌린 큼큼한 거름 냄새가 대화 소리를 무색하게 한다. 들리지 않아, 들리지 않아. 난 연기 체질은 아니구나. 얼굴에 다 쓰여 있잖아. 집에 가고 싶다고.
집에서 도보로 15분 거리 직장, 보안장치를 풀고 사무실로 들어간다. 전 직원 50여 명, 아무도 출근하지 않은 적막이 좋다. 어제도 당직 업무를 하느라고 보안장치를 걸고 마지막으로 퇴근했다. 아침을 깨고 매킨토시 컴퓨터 켜지는 소리가 좋다. 한 달 지나면 나오는 월급이 좋다. 오늘은 또 어떤, 아무도 모를 변화를 줄까, 잠깐 설렌다. 생활정보신문 편집이 뭐 얼마나 디자인이 달라질까 싶지만, 그게 무슨 상관인가. 작업자가 변화를 시도했다는 것이 중요하지. 마우스를 잡기 전, 의식처럼 커피믹스가 절실하다. 그때, 파티션 앞에서 불쑥 목소리가 나타났다.
팀장님! 커피 타 드릴까요?
아니요. 괜찮아요.
나는 성급히 거절한다. 나는 일찌감치 팀장이 되었다. 10명 팀장 중에서 나는 가장 작고, 가장 어리다. 시간이 갈수록 남녀불문 결혼하지 않은 팀장은 나뿐이다. 광고를 수주해오는 15명 남직원 영업팀과 그 광고를 작업하는 5명 여직원 편집팀이 서로 밀접한 관계라는 것을 나는 서둘러 파악했다. 신입 영업 남 사원도 그런 거 같다. 하필, 일찍 출근하여 나의 작은 기쁨의 순간을 깨다니. 커피는 나도 타 먹을 줄 안다. 커피 타 주고 또 얼마나 부탁할까 싶다. 업무 특성상 팀 간에 정한 마감 시간 규칙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시간 넘겨 광고 수정 요청은 다반사다. 더군다나 남직원들은 나이 어린 여직원들을 편하게, 때로는 함부로 대한다. 동료 의식은 보이지 않는다. 나의 이런 리더 생활의 애로 사항을 거품 품고 정신없이 토로할 때, 이런 목소리가 들린다.
네가 남직원들에게 선을 확실하게 그었구나.
사람들은 일과 연애를 어떻게 그렇게 동시에 잘하는 걸까? 스물넷, 내가 입사했을 때 있던 팀원들은 하나둘씩 결혼과 동시에 퇴사했다. 내가 팀장이 되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내 뒤로 입사한 팀원들도 때를 찾아 결혼했다. 나는 팀장 회의에서 출산휴가 요청을 줄기차게 외쳤다. 팀원들은 사직이 아닌 휴직을 하기 시작했다. 결혼하지 않은 나는 팀원들의 출산휴가를 조정하기에 이르렀다. 대체인력은 없고, 공백은 팀에서 해결했다. 나는 나를 지켜야 했다. 동시에 팀원들을 지켜야 했다. 나는 3년마다 차곡차곡 승진했다. 영업 실적 좋은 남직원은 나와 나이가 같다며, 말 놓고 지내도 되겠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나는 그 뒤로 특별히 그 남직원에게는 더 꼬박꼬박 존대했다. 구렁이 담 넘어가듯 남직원들은 팀원들에게 마감 시간을 넘겨 작업물을 들이밀었다. 얼렁뚱땅, 딱 싫다.
얼렁뚱땅 결혼할 건 아니지 않나. 결혼보다는 경제적 독립이 삶의 우선순위였다. 빨리 돈을 벌어서 내가 읽고 싶은 책을 사고, 보고 싶은 영화를 보고, 전세금을 모아서 더 좋은 자취방을 얻고, 경력을 쌓아서 어엿한 직장인이 되고 싶었다. 결혼은 나에게 중요한 사안이 아니었다. 결혼하고 싶을 만큼 좋아하는 상대는 나타나지 않았다. 애써 찾으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나는 눈이 높은 걸로 해야겠다. 마음을 열어볼까 하면, 그들은 벌써, 곧 다른 사람과의 결혼식을 알렸다. 뭐 그렇게 빨리들 결혼하나. 사람을 만나고, 알아가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나로서는 도저히 따라갈 속도가 아니었다. 결혼이라는 제도에 마땅히 나도 발맞춰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나에게 결혼은 계속 밀리는 선택지, 유예되는 선택지였다. 그 유예가 다른 방식으로의 선택을 가져왔다.
내가 결혼을 안 해서 힘든 것은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이었다. 가족이거나, 결혼한 친구이거나, 세상 사람들이거나. 결혼하지 않고 있음이 정상성에서 멀어지는 시선임을 자각할 즈음, 나는 ‘마을’로부터 제안받았다. 2003년 2월, 비혼모임 ‘비혼非婚들의 비행飛行’(이하 ‘비비’)을 시작했다. 결혼 말고 다른 이야기를 나눌 친구들을 만났다. ‘비혼’보다는 ‘미혼’이 익숙할 때였다. 난 연애보다는 죽어라 일하는 노처녀 팀장이었다. 아직 결혼하지 못한, 과제를 수행하지 못한 미혼보다는 ‘결혼하지 않은 상태’를 뜻하는 ‘비혼’이라는 단어가 주는 자유로움, 규정하지 않음, 결혼할 수 있다는 여지, 결혼 또한 개인 선택에 달려 있다는 의미가 좋았다. 내심 미혼의 비정상성을 커버해주는 것에 안도했다. 나는 정상인이 되고 싶었다.
사람들은 비혼을 결심한 계기를 물어온다. 당시 결혼하지 않기로 마음먹은 사람은 모임을 제안한 ‘마을’ 정도이지 않았을까 싶다. 마을 제안에 예스를 날린 이들의 공통점은 결혼을 선택하지 않고도 주체적으로 잘 살아갈, 자기 고민에 충실한 사람들이라는 것 정도. 나는 비혼을 결심하지는 않았다. 다만, 모임을 결심했을 뿐. 내 삶을 고민했고, 결혼을 유예했다. 그때 내가 비혼모임을 하지 않았다면 그 유예가 끝나지 않았을지 모른다. 아니면 다른 모임을 계속 찾았을 것이다. 비비 구성원으로서 자유로움과 소속감을 느꼈다. 나는 내 방식의 안전한 삶의 테두리가 필요했다. 내가 원한 바는 그것이다. 2006년 7월, 비비는 정관을 만들고, 우리를 스스로 ‘비혼여성공동체’라고 명명했다. 나는 비혼이다, 라고 말하는 시점, 나의 유예가 끝났다.
결혼 전에 비비를 만났다면 결혼하지 않았을 거라는 기혼자들 이야기를 듣는다. 우리는 농담을 나눈다.
나는 결혼생활을 너무 잘할까 싶어 결혼 안 했잖아.
저는 결혼했으면 바로 이혼했을지도 몰라요.
나는 생각한다. 나는 이혼하지 않고 애쓰며 살까 싶어 결혼하지 않은 것으로 해야겠다. 가지 않은 길을 내 어찌 알겠는가. 나도 내가 이렇게 평범하지 않은 삶을 살 줄은 몰랐으니까. 본의 아니게 비정상성 카테고리에 묶여 소수성을 부여받게 될 줄은 몰랐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