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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혼들의비행 Jan 06. 2023

[비혼 2] 시작은 거절하지 않을 사람과 함께

비혼들의비행_비혼여성공동체로 비비로 살아가기

[2003년 비혼모임을 시작하여 자기 자신으로 잘살아오는 동안, 이 사회에서 안전한 둘레가 되고 버팀목이 되어준 비혼여성공동체 '비비'가 있었다. 나는 비비의 한 개인으로 어떻게 살아왔는지, 우리는 쌓아온 신뢰를 안고 어떻게 앞으로 한 발짝 나아가고 있는지, 개인과 공동체가 어떻게 조화롭게 지속할 수 있는지, 지난 20여 년간의 비혼생활과 공동체적 삶을 돌아보고자 한다. 비혼, 공부, 여행, 독립, 공간, 소설, 돌봄, 공동체, 글쓰기 등 주제별로 한 주제당 3~4편 글을 쓸 계획이다.]



[비혼 2] #. 시작은 거절하지 않을 사람과 함께


아무리 생각해도 확실하게 답할 수 있는 것은 이것뿐이다.      


2003년 첫 모임 후 구성원 변동이 거의 없이 지금까지 비비 모임을, 아니 비혼여성공동체 비비를 유지한 비결이 무엇이냐고 여러 차례 질문받았다.  

    

1998년 6월, ‘마을’을 처음 만났다. 스물일곱, 나는 이십 대 초반 방황을 접고 그나마 월급이 제때 나오는 직장에 안착한 지 3년이 되어가고 있었다. 경제적 독립이란 이런 걸까. 욕망에 가장 충실한 시기, 나는 무엇이든 배움을 찾아 나섰다. 전주에서 처음 열린 영화강좌에 서슴없이 등록했다. 3개월 강좌가 끝나고 여전히 목마른 자들은 모임을 결성했고, 함께 영화를 보고, 밤새 영화를 이야기했다. 3년이 되어갈 즈음 그들은 모두 떠났고, 마을과 나만 남아서 모임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 후 2000년대에도 영화는 계속 개봉했고, 우리는 종종 영화를 보러 다녔다.     


영화를 보고 나서 마을은 할 이야기가 있다고 말했다. 나는 긴장감을 느꼈다. 영화 이야기 말고 무슨 얘기일까. 우리는 21세기와 더불어 30대에 진입했다. 마을은 여성단체에서 활동하며 ‘비혼모임’을 구상했다. 30대 직장여성, 결혼이 아닌 다른 선택지를 함께 고민할 친구들을 섭외 중이라고, 너에게 처음 말하는 거라고,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나는 나 말고 누가 더 참여하는지, 얼마 만에 한 번 모일 것인지, 모여서 뭘 할 건지 정도 물어봤다. 그리고, 일단 예스라고 답했다. 난 웬만하면 동의하려고 애쓰는 사람이니까. 나 말고 다른 구성원들은 뭐라고 말하면서 섭외에 거절하지 않고 수락했을까?      


비비가 2012년 ‘비정상 가족들의 비범한 미래기획’에 참여하면서 우리는 각자 첫 만남을 떠올렸다.  

   

‘주얼’은 이렇게 말했다.

“마을에게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좀 부정적이었어요. 나 결혼할 거라고. 나를 비혼의 카테고리에 묶지 말라면서. 그 당시에는 친구도 없고 외롭고 쓸쓸할 때라서 비비 모임을 통해서 친구 관계를 넓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반짝별’이 말했다.

“당시에 제가 27살이었어요. 마을 언니에게 왜 나에게 비비 모임을 제안했냐고 물어보니까 너에게 뭔가 새로운 게 필요한 것 같았다고. 그때부터 언니들의 막내가 되었죠.”     


‘푸른산’이 말했다.

“특별히 거부감은 없었어요. 마을에 대한 신뢰가 있었고, 다른 목적이나 목표가 있을 거라는 생각은 안 했어요. 지금처럼 10년을 넘기는 모임이 될지도 몰랐죠. 그때는 NGO에서 하는 소모임 정도로만 생각했어요.”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저의 경우에는 스스로 경제적 자립을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삶의 이유였어요. 비혼의 정체성을 크게 생각하지는 않았고, 삶에서 다른 부분에 대한 열망이 많았기 때문에 모임을 꾸준히 한다는 것이 재미있게 느껴졌어요.”     


모임 내용은 ‘비혼’인데, 제안받은 이들은 그것보다 마을과의 ‘관계’를 더 중요시했다. 비혼에 대한 각자 관심만큼 다양한 제스처로 참여했다. 비비의 시작은, 리더가 모임 구성원을 섭외했다는 점에서 여타 모임과 달랐다. 마을은 비비 구성원 모두를 개별적으로 알고 있었고, 비비 구성원 개인은 서로 모르는 사이인 거나 다름없었다. 우리는 점차 알게 되었다. 우리가 자신만의 세계가 있는 특이한 개인들이지만, 거절보다는 동의하려고 애쓰는 사람이라는 것을. ‘이타성’이 모임을 유지하고 성장하는 데 얼마나 중요한가를. 개인의 욕망과 집단의 가치가 어떻게 폭발하지 않고 함께 나아갈 수 있는지를. 이것은 비비가 ‘비비 2기’, ‘비비 3기’를 만들고, 2기, 3기의 실패를 경험하면서 알게 된 지점이다.   

 

우리는 월 1회 정기모임 때마다 학습 도서를 정하고 공부했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를 핑계 삼아 서울 나들이에 나섰다. 명절에는 해외여행을 떠났다. 계절마다 MT를 가서 밤이 새도록 개인의 역사를 풀어냈다. 서로에게 보내는 지지와 격려면 충분했다. 비비 안에서만큼은 안전함을 느꼈다. 비비가 각자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다. 우리는 서로에 대한 신뢰를 켜켜이 쌓아갔다.     


주변의 결혼하지 않은 친구들은 우리를 좀 부러워했다. 비비에 들어오고 싶은 친구들이 있었다. 우리는 모임 구성원을 더 늘리고, 모임 규모를 확장하는 데 관심이 없었다. 비비와 같은 다른 모임이 많아지고 그들과 연대하기를 바랐다. 비비 구성원이 각자 주변에 비혼모임을 하면 좋겠는 친구들을 추천했다. 2004년 10월 비비 2기를 결성했다. 구성원들은 비비와 개별로 연결되어 있을 뿐, 그들 모두를 유기적으로 연결할 리더가 없었다. 비비 2기는 2005년 12월 해체했다. 해체 이후 남은 ‘미르’가 비비에 결합했다. 그들이 거의 결혼을 선택했다는 소식을 나중에 들었다.     


2009년 8월 비비 3기 첫 모임을 했다. 지속해서 비비에 관심 보인 친구 여덟 명을 모았다. 적어도 그들은 이른 시일 안에 결혼을 선택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모임 초반에는 마을이 함께 참여했다. 비비 3기는 개인 성향이 독특하고, 비혼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그 정도 공통감각으로는 부족했을까. 모임은 선물처럼 주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1년 후 흩어졌다. 해체 이후 남은 ‘이청’이 비비에 결합했다. 흩어진 이들은 ‘여성생활문화공간비비협동조합’(이하 ‘공간비비’) 조합원이거나, 공간비비 회원이거나, 동네 주민이거나, 비비의 친구이거나 하면서 비비 곁에서 안부를 전하고 있다.     


비비 4기는 없다. 더는 ‘비비’ 이름으로 모임을 만드는 것은 의미가 없었다. 우리는 2010년 모임이 아닌 ‘여성생활문화공간비비’를 개소했다. 공간을 만들고, 그곳에서 비혼여성들과 만나기를 바랐다. 공간에서 다양한 키워드로 각종 모임을 만들었지만, 수명은 1년을 넘지 않았다. 당신이 모임을 시작하려거든 ‘무엇을 할 것인가?’ 만큼 ‘누구와 함께 할 것인가?’를 곰곰이 타진해보길 바란다. 리더 책임과 개인의 성숙함이 균형을 이룰 때 적어도 모임을 유지할 수 있지 않을까.     


비비 첫 만남을 떠올리며 마을은 이렇게 말했다.     

“우선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어야 하고, 30대 이상이면서 직장이 있어야 했고, 이른 시일 안에 결혼 계획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그다음에는 결혼이나 연애 관계만이 아닌 다른 욕망이 있는 사람,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고민하는 사람들이었던 것 같아요. 결혼하지 않고 살 건데 어쨌든 동료들이 있어야 할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동료들이라. 모임은 신념만큼 우정이 필요한 공동체구나. 이 까다로운 조건을 우리가 통과했다니 그것도 놀라울 따름이다. 모임의 시작과 유지는 모임이 추구하는 가치보다 구성원 태도가 최종심급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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