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
“잠깐 차 한 잔 괜찮아?”
“네. 어디세요?”
“너 집이지? 내가 그쪽으로 갈게.”
그의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재현은 이미 마음에서 치료가 일어나고 있는 것을 느꼈다. 오랜만에 만난 그들은 보이는 대로 커피숍에 들어가 남들의 시선이 미치지 못하는 구석 자리에 앉았다.
“오랜만이야 재현.”
“어떻게 지내셨어요?”
“결혼하고는 인생이 더 서바이벌이던데. 살고 싶어서 일하는 중.”
“아.. 그렇군요. 성찬이 형.”
그는 그의 이름을 부르며 자신의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는 자신의 인생의 미래가 없어 보였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답이 없어 보여요. 아버지는 늘 저녁까지 술을 마시고 다른 일을 하시는 것 같진 않으세요. 어머님은 김밥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시고요. 저는 밥값이라도 조금 벌어 보겠다고 열심히 버는데 우리 집 사정은 나아지지 않는 것 같아요. 취업을 해도 집 사는 건 불가능하고 평생 빚에 쫓겨 살아야 하는 것 같아 막막해요.”
“음... 그래. 우리 시절이 참 그렇다.”
성찬이 형은 난데없이 세대 타령을 했다. 아닌 게 아니라, 정말 자신만의 탓이 아닌 이 세대, 사회 구조 때문에 우리의 처지가 그렇다는 말을 들으니 기분이 조금 나아지고 있었다. 비난의 화살을 국가에게 돌리니 차라리 잘 되었다.
“하지만!”
“네?”
“그렇다고 너의 상황이 아예 못 벗어난다는 건 아니야. 넌 이 가난을 벗어날 수 있고 벗어나야만 해.”
“어떻게요?”
“일단 첫 번째, 생각을 개조해야지.”
“생각… 이요?”
뭔가 번뜩이는 구체적인 실마리가 나올 줄 알았는데… 생각이라니? 재현은 다소 실망했다. 생각이야 늘 ‘빚을 갚겠노라’고 매일 다짐하지만 그의 생각은 순진하고 어리석으며 헛되다고 비웃기라도 하는 듯 상황은 더 악해지기만 했다. 하지만 마음 가짐 따위 안해본 거 아니지 않은가?
“너… 빚 갚으려고 생각했지?”
“네.”
“거기서 틀렸어. 빚 갚으려고 하지 말고… 성공하려고 생각해.”
재현이 잠시 의아한 얼굴을 지어 보이자 성찬 선배는 피식 웃으며 설명을 이어나갔다.
“빚 갚는 건 빚이라는 부정적인 단어가 들어있고, 성공하겠다는 문장 안에는 긍정적인 시선이 담겨있어.”
재현은 조금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살짝 끄덕였지만 그의 말 뜻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정말 돈을 가져다 주지 않는 이상 형의 이상적인 헛소리는 그에게 아무 위로가 되지 않았다.
'한 대 때릴 수도 없고...' 이상하게 헛웃음이 나오려는걸 간신히 참고 있었다.
“세상이 이러니 저러니 해도…. 성공해. 넌 할 수 있어. 가난이 널 가두게 하지 마.”
성찬 선배가 재현의 어깨를 격려하듯 두드렸다. 재현은 그의 손길이 지나자 그제야 그가 말하는 것의 의미를 조금은 알것 같았다. 이상하게 마지막 그 말 만큼은 나의 마음을 안심시켰다. 그의 다정한 손길은 교만이 그득한 크리스문의 손길과 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