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아빠는 루저 (2)

by 봄남

재현은 지지리 궁상인 집안 분위기, 회복될 수 없을 것 같은 아버지의 우울감이 저며 있는 집에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집에서는 맘 놓고 쉴 수도 없었다. 아버지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전쟁과 침묵의 긴장감이 팽팽하게 자리 잡고 있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결혼해서 나가 사는 누나가 차라리 나았다.


그 무능력하고 우울증에 빠진 아버지의 뒷모습을 누나는 보면 안 되었다. 레아와 황홀한 시간을 보내고 집 앞에 다다르자 좋았던 기분은 안개처럼 사라지고 손끝으로 전해 오는 긴장감만 느껴졌다. 몰려오는 긴장과 우울의 기분을 억지로 밀어내려 그는 한숨을 크게 쉬었다. 매일 만나는 아버지인데 아버지의 얼굴이 기억이 나지 않았다.


띠띠띠띠띠띠…


도어록 풀리는 소리가 나고 재현이 성큼 들어왔다. 아버지는 여전히 소파에 계셨고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의 모습이 꼴 보기 싫었는지 방에 들어가 계신 것 같았다. 재현이 방문을 열고 들어가려고 하자 난데없이 아버지가 버럭 성질을 내셨다.


“미친놈. 또 또 술 처 마셨구먼. 작작 좀 마셔라!”


아버지는 몸을 들썩거릴 정도로 힘을 주어 티브이에 대고 고함치셨다.


재현은 아버지의 뒤통수에 대고 조용히 네. 할 뿐이었다. 더 이상의 대화는 섞고 싶지 않아서 말한 긍정이었다. ‘아버지 제가 술을 마시 다니요. 술은 먹지도 않았어요. 그렇게 날 잡고 싶어서 안달이셔서 어떡하죠. 그만 좀 하세요. 아버지.’라고 덧붙이고 싶었지만 관두기로 했다.


더 이상 억울하지도 않았다.


‘아버지의 고함은 누굴 위해서였을까.’


“술 마시지 말고 취업 준비 하라니까. 정신 못 차리고 어딜 싸 돌아다니냐. 나는 네 나이 때…”

“아버지!”


재현이 참지 못하고 아버지의 말을 가로챘다. 이제 아버지가 입만 벌리기만 해도 그 잔소리의 허용치는 이미 기준을 너머 서 있었다. 더 이상 들어줄 수가 없었다.


“아버지는! 제가 번 돈으로 소주 마시는 거예요?”

“뭐 이 녀석아!”


아버지가 빛바랜 소파를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잡고 일어나려고 하시길래 아버지와 눈빛이 마주칠까 봐 재현은 다시 급히 집을 나왔다.


쾅!


물건 하나 깨지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아버지의 폭력성이 시작되면 비행 물체가 집안에 돌아다니고 추락하기를 반복했다.


그가 집을 탈출한 뒤 목적 없이 길을 걷고 얼마 되지 않아 오랜만에 선배에게 전화가 왔다. 성찬이 형은 무려 9살이나 차이나는 선배로 재현이 좋아하고 의지하고 있는 사람 중에 한 명이다. 그는 그보다 앞서 산 사람의 모범을 보여주기라도 하는 듯 재현의 인생 질문에 통쾌하게 답해주곤 했다. 재현은 그가 잠시 그의 피난처가 되어 줄 수 있을 것 같아 옳다구나 전화를 받았다.

이전 21화여기, 키스